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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는 52장까지 되어 있는 말씀으로 오늘이 마지막 장입니다. 실제로 예레미야가 했던 예언은 51장으로 다 끝났습니다. 남유다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방 나라들도 몽둥이로 사용하신 바벨론도 결국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말씀으로 모든 예언은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52장은 예레미야에게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2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인 1-11절은 시드기아 왕 바로 남유다의 마지막 왕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2-30절까지는 처참하게 불타고 폐허가 되는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34절은 또 다른 왕인 여호야긴 왕에 대한 회복을 결론으로 맺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남유다가 이렇게 처참하게 멸망하게 되는데 그 끝과 결론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예레미야서를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드기아의 왕의 길이 있고 또 하나의 길은 여호야긴의 길이 있다는 것이죠. 시드기아는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유다는 지금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마지막 남은 카드인 시드기아가 결국 그 나라 전체를 어떻게 만든 겁니까? 파국과 멸망으로 이끌며 마지막 카드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겁니다. 한 개인도 공동체도 나라도 결국 하나님 앞에 이렇게 끝에 가서 마지막 평가를 받는데 그 끝이 시드기아의 길로 끝날 것인지 여호야긴의 길로 끝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선택지를 내밀면서 끝나는 것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왕에 대한 평가는 한 개인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그 나라 전체를 보여주는 대표 선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의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예언이 안타깝게도 결국 이루어지는 모습, 가지 말라고 그렇게 외쳤고 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외쳤던 불신앙과 불순종의 길을 결국 가게 되는 남유다, 그 남유다가 직면한 참담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드기아의 길로 끝나는 인생과 나라의 결론이 무엇인가? 오늘 말씀은 시드기야의 길을 세 가지로 요약해 선명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악한 사람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입니다. 본받았다는 것은 그 모습을 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누구를 본받을까가 너무나 중요한데 그 이유는 무엇을 보고 따라가는가에 따라 인생의 우선순위와 방향성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아 왕은 하나님 말씀을 본받거나 믿음의 사람들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악한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았습니다. 주의 뜻과 말씀을 본받는 대신에 악에 쩔어 사는 사람의 모든 행위를 본받고 살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악한 왕을 모델로 본받아 따랐던 것이죠. 그게 그의 비참함의 결과의 첫 번째였습니다. 두 번째, 시드기야 왕을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악을 행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말씀은 여호와 보시기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시드기야는 악한 왕을 본받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시드기야 생각에는 선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옳은 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로 갔다는 겁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안타까운 시드기아의 비극, 남유다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았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안 된다 그러시는데 상관없다 그러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질주한 왕과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내 생각에 옳은 대로 가는 것 이게 악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이 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일을 하면 선한 사람이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하면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부분적으로만 맞고 단편적으로만 맞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인생에 정말 중요한 선악을 분별하는 기준은 바로 “여호와 보시기에…”입니다. 내 눈에, 내 생각에 옳은 대로 가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옳고 바른 길을 가는 게 중요합니다. 신자로 성도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내가 그냥 잘 살고 주변 사람보다 좀 나은 삶을 사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보시기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가 누군가를 알고 그분이 바라보시는 선과 악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세번째로 시드기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배반하니라.” 입니다. 바벨론 왕을 배반했고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배반했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을 개인적으로 배반한 것 뿐 아니라, 예레미야의 예언을 배반함으로 결국 하나님을 배반한 자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끊임없이 시드기아 왕에게 주었던 예언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길이 사는 길이라는 것이죠. 싸우지 말고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적어도 나라가 불타서 쑥대밭은 되지 않으니, 말씀대로 곧 회복이 될 것이니 싸우지 말고 항복하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아 왕은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는 대신에 자기 개인의 생각과 판단을 신뢰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세계 정세를 보니까 지금 애굽에게 붙으면 살 거 같고, 바벨론과 싸우면 이길 것 같다는 자기 판단을 가지고 말씀을 배반하며 그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된 결정으로 온 나라를 구렁텅이와 불바다로 만들어 폐허가 되게 한 시드기아 왕의 끝은 어떠했습니까? 시드기아의 끝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3년을 버티다 성벽이 무너지니 왕이 도망갔고, 도망가다가 잡혀서 끌려왔습니다. 그의 눈앞에서 모든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거를 보고 그 다음에 그 눈이 뽑히고 사슬로 결박되어 죽는 날까지 옥에 갇혀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시드기야 왕의 눈을 빼버렸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상징인데, 왜 그의 눈을 빼버릴수 밖에 없었습니까? 왕의 눈이 그렇게 멀었고 그 잘못된 눈으로 말미암아 본인도 망하게 하고 나라도 망하게 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고 미래가 없이 두눈이 뽑히게 되었고 평생을 결박되어 사슬에 매어 감옥에 살다 죽는 것. 이것이 시드기야의 길의 결론이자 남유다 전체의 영적 상태였던 것입니다. 한해가 마무리되는 이때에 우리도 끝이 있고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의 결론이 시드기아로 끝이 날 것인지 여호야긴으로 끝이 날 것인지를 마음에 새기며 한해를 끝내기 원합니다. 우리 인생도 언젠가 마무리되며 하나님 앞에 분명히 평가받는 날이 있을 텐데 그 끝에 서서 어떤 평가를 받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시드기아의 길로 끝나지 않기를 소망하며 이 말씀을 우리에게 비춰보기 원합니다. 시드기아는 의도적으로 우리 나라를 망하게 해야지…백성들을 비참하게 해야지 그렇게 결단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자기 나름으로는 내 생각에 옳은 대로 간다고 했는데 그게 뭡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이자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이었다는 겁니다. 시드기야의 길을 따라가서 마지막이 비극으로 끝나는 그런 안타까운 결론이 되지 않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본받고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인생인지를 돌아보며,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기를 사모하십시오. 이 시드기아의 길에서 돌이키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임을 잊지 않고 주의 말씀이 반드시, 결국 이루어짐을 믿으며 주 앞에서 끝까지 신실하게 살다 내 인생이 선명히 주의 은혜 가운데 축복으로 마무리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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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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