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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장 말씀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우리 마음과 눈을 사로잡는 말씀, 아멘이라는 고백이 절로 나오는 말씀은 뒷부분인 12-13절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얼마나 은혜 되고 힘이 되고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온 마음으로 주를 구하면 주를 찾고 만나게 된다는 이 약속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만 딱 떼 가지고 내가 붙들게 되면 말씀의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게 되기 쉽습니다. 분명히 기도가 응답이 되는데 내 방식과 나의 때에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놓치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No와 Not Yet의 차이를 망각하게 되어,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을 놓치면 우리는 기다리라는 Not Yet을 자꾸 기도 응답 안 해주시는 No 라고 여기기 쉬운 겁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도 응답 안 하신다고 포기하고 뒤돌아서는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을 마음의 확신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게 너무나 귀한데 이 약속이 언제 누구에게 주어진 말씀인가라는 것을 잊지 않고 말씀에 큰 그림을 붙드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분명히 너희의 그 간절한 기도를 내가 듣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하고 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할 거라는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약속을 주신 건 분명한데 문제는 그 때가 언제냐는 겁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은 백성들이 처한 삶의 자리는 바벨론 포로 생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바벨론이라는 곳,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억지로 위협을 받으며 끌려간 곳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그들에게 절망이자 죽지 못해 살아가는 포로의 삶이었으니,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제목은 한 가지였습니다. 주님 속히 우리를 이 포로된 바벨론에서 돌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이 지옥과 같은 포로 생활을 끝내고 속히 돌아가게 도와 주옵소서...그게 간절한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문제는 분명히 돌아오게 하시고 약속대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올 날이 있을 텐데 그 때가 지금 당장이 아니라는 데 있는 겁니다. 두 달 후에 돌아가는 것도, 2년 후에 돌아 가는 것도 아닌, 자그마치 70년이 지나고 나서 돌아오게 된다는 응답을 주신 겁니다. 당장 내일 해방되어 돌아가면 좋겠는데 그래도 하나님도 바쁘시고 일이 있으시니까, 정말 크게 양보해서 통큰 양보로 2년을 드린 겁니다. 2년 안에만 돌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응답은 2년이 아니라 70년이 지나야 돌아간다는데 갈등과 고민이 있는 것이고, 솔직히 기가 막힌 일인 겁니다. 더 나아가 그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에서 잠시 있다 나오는 게 아니니까 너희는 여행 가듯이 있지 말고 거기에 정착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집을 짓고 살고 텃밭 만들고 결혼을 하고 그래서 거기에 뿌리내리고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명하시는가 하면 살아가야 할 땅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라는 겁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뿐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예루살렘만 위해 기도하지 말고 너희가 살고 있는 땅인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죠. 지금 매일매일 포로 생활로 바벨론에서 신음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방법이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나는 것은 거의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 없는 것 같은 고통과 절망인 겁니다. 특별히 우리가 삶의 어려움과 위기 상황에 있을 때, 간절함 가운데 힘들어하며 주님께 부르짖으며 은혜를 구할 때 우리 기도 제목은 언제나 지금 당장 내 방식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게 우리의 간절함 입니다. 우리의 그 간절함대로 지금 당장 이루어지는 기도가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많은 경우에 우리의 간절한 기도 제목은 항상 어디를 통과하는가 하면 기다림의 의자에 앉아 주님을 신뢰하는 시간이 꼭 있더라는 겁니다. 그 기다림의 의자에 앉아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인내로 기다림이란 정말 불가능 할 정도로 힘들기에,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가짜 선지자들과 점쟁이들을 찾고, 내 꿈 같은 것을 자꾸 가져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우면 점쟁이를 찾아가고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말에 미혹 되며 꿈 같은 것을 가져오는가 하면, 고통과 어려움 중에 내 희망사항, 내가 원하는 소리를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대신 내가 듣고 싶은 소리, 내가 원하는 소리, 내 희망 사항을 반영해지는 얘기에 끊임없이 내 귀와 마음이 빼앗기고 미혹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인생의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면서 무엇을 자꾸 구하게 되냐면 지금 당장 내 기도가 응답되는 길인 거짓 선지자와 점쟁이의 소리를, 나의 희망 사항을 반영하는 소리를 끊임없이 찾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엄중히 경고하시는 겁니다. 힘들고 어렵고 간절할 때일 수록 그런 미혹의 소리에 빠지지 말라는 겁니다. 그 말이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으로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임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구약 성경을 보게 되면 이곳 저곳에서 No와 Not Yet 사이에 갈등하며 기다림의 의자에 앉아있는 믿음의 선조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아브라함이 그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기까지 끊임없이 기다렸습니다. 분명히 약속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태어났지만, 아브라함은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Plan B를 만들어 이스마엘이 태어나게 했고 그로 인해 평생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삭도 그 쌍둥이 아들들 낳을 때 자녀를 오랫동안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요셉도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 가서 그가 하나님의 손길로 총리가 될 때까지 수많은 시간을 기다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초대 사울왕도 그 짧은 시간, 제사를 드리기 대기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임의로 제사를 드리다가 망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지금 이 시간도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고 승천하신 그대로 다시 오심을 우리가 믿으며 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이죠. 그래서 성도로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일하심을 인내와 순종으로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상황과 환경이 꼬이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 같은 내 삶의 자리에서 분명히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그 응답을 약속으로 주심을 믿는데 그게 내 때와 내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주심을 믿으며 마침내 주시는 약속을 취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 약속을 들어 주시고 이루어 주시고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시며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근데 2년이 아니라 70년이고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이고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약속으로 응답하시는데, 우리의 때와 방법이 아닌 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짐을 신뢰하기가 참 어렵다는 겁니다. 성경 속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계속 마음에 담아 읽는 이유는 이렇게 우리가 이론적으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따라가지 않고 조바심이 나고 기다림의 의자에 앉아 힘들고 어려움을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 이 말씀 안으로 우리가 들어가야만 살기 때문입니다. 내 희망사항과 듣고 싶은 말들을 반영하는 거짓 선지자들과 점쟁이들과 꿈에 미혹되지 말고,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때와 방법이 이루어질 때 마침내 주시는 응답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충만한 은혜로 고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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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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