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자유를 강조하면서 율법과 언약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언약의 보조적 수단이고 언약은 메인 도구라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합니다. 이렇게 언약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얘기하면 꼭 어떤 질문이 나오냐면 그러면 율법은 하나님이 왜 주셨느냐?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이냐?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질문에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첫 번째는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드러나게 하신다는 것, 두 번째는 나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하게 한다는 것, 세 번째는 그리스도 구원자를 기다리게 한다는 것, 이 세 가지의 역할이 있다는 겁니다. 첫 번째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죄를 깨닫고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라는 입니다. 지금도 법률 책들을 한번 보시게 되면 어떤 조항들이 굉장히 많고 자세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총기에 대한 법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고 하면 그걸 통해 이 나라에는 총으로 관련된 범죄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겁니다. 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법을 지키지 않고 죄를 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조항이 많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사도신경을 보더라도 가장 많은 부분을 고백하는 것이 성자 예수님에 대한 부분입니다. 왜 성자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그렇게 많은가 하면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변질과 왜곡이 초대교회에 굉장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몰라서 많은 문제가 생겼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주신 이유는 죄를 많이 지으니까 법이 계속 더해진 것입니다. 율법의 조항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걸 통해 죄가 이렇게 많이 있어서 생긴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는 이런 게 죄인 줄 몰랐다는 것이죠. 총기 규제나 총기에 대한 법이 없다고 생각해 보면 내가 총으로 하는 많은 게 죄인 줄 모르고 그냥 남용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총기 규제에 대한 법이 딱 생기고 나면 어떤 게 드러나는가 하면 이게 죄이고, 이게 잘못된 거구나 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이처럼 율법의 기능은 죄가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드러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가 이렇게 많음을 깨닫게 되는 것을 통하여 우리 죄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이것이 바로 언약의 보조 도구로서의 율법의 역할입니다. 그렇기에 율법과 하나님의 약속인 언약은 반대되는 게 아니라 상호 보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상호보완적으로 율법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에게 있는 죄가 보이게 되며 이 세상에 죄가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아주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율법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율법은 나에 대해서 철저하게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나게 하고 진단은 하지만 능히 살게 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이룰 수 없는 이유는 그 율법들은 살리게 하는 율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죄에 대해서 깨닫고 죄를 드러나기는 하는데 죄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겁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요즘에 CT 촬영이나 MRI 촬영이랑 똑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촬영을 하게 되면 내 몸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도구가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술이 발전해서 내 몸에 어떤 세포가 자라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런 CT나 MRI입니다. 그런데 CT나 MRI를 100번 찍어도 병을 진단은 하지만 병을 치료할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진단 후에는 약을 먹든 수술을 하든 뭐를 하든 해야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의 기능은 영적으로 내 영혼의 CT나 MRI 촬영을 하는 것과 똑같이, 그동안은 몰랐던 죄가 발견되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은 죄를 3D로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알려 주지만, 그것에 대한 치료 능력은 없는 겁니다. 내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 지겠다는 착각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죄가 많이 있구나…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은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이 아니라 진단하는 보조 도구이며, 율법을 통해 나를 바라보면서 나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하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세번째, 나에 대한 철저한 절망을 통해 구원자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는 겁니다. 죄가 철저히 드러난 나에 대한 절망을 통해 구원자를 기다리게 하는 겁니다. 나에 대한 철저한 절망을 통해 내가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구나… 약속하신 구원자가 오시지 않으면 안되는 인생이구나…철저히 인정하며 율법은 자동적으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붙들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가지만 유용한 유효기간이 있는 보조 도구입니다. 율법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고, 그리스도가 오시게 되면 율법이 아닌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율법의 역할은 약속하신 자손,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 되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도구입니다. 나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하면 할 수록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율법 자체는 생명을 주는 능력도, 인간을 의롭게 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둔다”고 증언합니다. 율법을 붙들면 붙을수록 우리를 죄 안에 가는 역할만 한다라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CT나 MRI를 보면 볼 수록 내 죄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 동시에 그에 대한 치유나 회복은 없다는 것을 발견하는 겁니다. 그걸 통해 나의 죄를 해결하시고 건지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철저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율법은 유통 기한이 있는 보조도구일 뿐임을 잊지 마십시오. 율법은 죄를 선명히 보여주는 보조 도구입니다. 그러나 능히 살게 하는 능력은 없는 보조도구 입니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나에 대해 철저하게 절망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들고 언약을 붙들게 만드는 것이 율법의 기능인데 율법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나를 바라보게 만들고 내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붙들어 의로워지고 발버둥 치게 만든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능히 살게 하는 법은 율법이 아니라 언약입니다. 능히 살게 하는 법은 내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는 오는 선물임을 선명히 믿는 것이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오늘도 율법을 통해 죄가 드러나고 깨달아 지며, 나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하며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붙드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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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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