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말씀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의 말씀을 계속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그들이 풍전 등화 같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깊은 어둠 가운데 이제 남은 것은 심판 밖에 없는 것 같은 있는 상황입니다. 고통받는 시대, 사망에 그늘진 시대, 흑암이 가득한 시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처한 삶의 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도 풍전 등화같이 언제 망할지 모르는 시대, 깊은 고통과 어둠가운데 있는 삶의 자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소망의 메세지는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앞뒤 좌우에 모든 것이 막혀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이는 절망과 답답함…그런데 메시아가 오심으로써 이것이 모두 다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부터 메시야가 오심으로 구원의 길이 열리며 어둠이 물러가고 새로운 빛이 임한다…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에 주신 소망의 메시지이며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복음의 메세지입니다.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은 해변길과 요단 저쪽의 갈릴리, 즉 이스라엘 땅의 북쪽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남유다, 사마리아, 갈릴리로 되어 있는데, 북쪽 갈릴리는 늘 외세의 침략이 많고 전쟁이 나면 제일 총알 받이로 황폐해지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은 항상 멸시를 당하고 항상 힘들고 어려우며, 황폐함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이 메시야가 오심으로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라시고 유년의 시기를 보내신 곳이 바로 갈릴리 나사렛입니다. 그렇게 멸시를 당하고 흑암이 가득한 그 땅에 메시야 예수님이 오심으로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흑암에 빛이 임하고, 영화롭게 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시는 게 바로 갈릴리에서 성장하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시간에 딱 맞추어 이 세상에 오신 겁니다. 이것을 이사야서는 오래 전에 이렇게 약속으로 우리에게 주셨고 이 약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약속으로 성취될 메시아가 오시는 방식입니다. 그 메시아가 어떻게 오시는가 하면 사람들이 기대하고 상상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당장 큰 용사 같은 메시아가 딱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상상하는데,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시는 방법은 너무 달랐다는 겁니다. 바로 한 아기를 보내시는 겁니다. 놀라운 역사의 반전은 아주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과 같이 아기가 태어나는 거라는 예언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메시아가 오셔서 용사로 오늘 당장 모든 걸 해결해 주셔야 될 거 같은데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역사는 아기를 보내시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로 오신 아기는 너무나 힘없고 작고 연약해 보이기에, 사람들의 기대와는 너무 다른 파격이었습니다. 동시에 그 아기가 실제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라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찬찬히 흐르는 물과 같이 하나님의 때를 인내로 기다려야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재물로 바쳐지는 장면이 장차 오실 예수님의 그림자라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삭도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면 기다리다 기다리다 인간적인 모든 가능성이 다 끊어진 상태에서 마침내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게 이삭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도 그가 아기로 태어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리고도 40세도 아니고 80세 되어서야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출애굽을 위한 지도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어 가시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약속대로 오시는 메시아는 어떤 분이십니까? 바로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십니다. 기묘자란 Wonderful입니다. 경이롭고 놀라움이 가득한 분이십니다.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놀라운 일들이 우리 삶에서 이렇게 가득해지게 된다는 것을 선포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풍성하게 내 삶에 설명되지 않는 놀라운 일들을 가득하게 해주시는 기묘자 이십니다. 모사란 counselor, 상담자입니다. 자기 하나님에게 마땅히 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 힘들고 어렵고 눈물 날 때, 사람들 찾아가기 전에 제일 먼저 내 삶의 베스트 카운셀러이신 메시야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를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어떤 결정을 해야 될지 모르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 인생에 길, 진리 생명이신 주님과 상담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뒤따라가는 그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하시는 겁니다. 내 마음의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 내 인생을 상담하며 조언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란 영원히 존재하는 아버지입니다. 영존이란 단순히 하나님이 죽지 않고 그냥 영원히 존재하고 사신다는 시간 개념을 훨씬 넘어서,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하나님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고 구원 하시겠다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 작정하신 자들을 반드시 구원으로 이끄시고 완성하시고 결말을 내신다, 이것이 바로 영존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시간표와 방법대로 반드시 이루심을 믿는 것, 그 고백이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일을 이루심을 믿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의 열심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은 내 공로나 열심이 이루는 게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공로와 열심이 이루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일이십니다. 내 일상의 많은 축복들은 누가 이루시는 겁니까? 겉보기에는 내 열심이 이루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것들은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 언약인 구약과 새 언약인 신약을 통해 그 하나님의 작정하신 구원 계획을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시는 구속사의 이야기들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주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나의 열심이 아닌 주님의 열심이 일하시도록 점점 나를 드리는 것이 주님을 바라보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나의 신앙은 오직 주님을 기준으로 붙들고 주님을 두려워함으로 살아가며, 주님을 나의 힘으로 모시고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어 가시는 존재로 드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늘 고통받았고, 늘 멸시를 당했습니다. 흑암과 사망이 가득한 땅입니다.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 속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신 놀라운 역사입니다. 복음은 하루하루 나아지고 좋아지는 개선이 아닙니다. 외부의 구원자로부터 우리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심으로 모든 흑암과 사망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내 기대와 상상대로 오시지 않지만, 아기와 같이 오신 메시아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언제나 한치에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바라보십시오. 내 머리와 계산, 내 시간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획,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한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 가심을 믿는 겁니다. 내 계획과 시간표를 내려놓고, 그 하나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방법에 우리가 순종하는 것이 믿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모든 것을 이루는 그 놀라운 역사가 내 삶 속에서도, 우리 교회 공동체 속에서도 선명히 경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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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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