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통해 다윗왕의 사울 가문의 남은 자들을 향한 영적 반응을 은혜로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에서 두 번이나 다윗왕은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왕이 두번이나 묻는 이 말은 굉장히 무서운 말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한 게 사울왕의 사람들을 모두 처단하고 씨를 말려야 새로운 왕조에 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사극들을 보게 되면 그 전에 있었던 왕가의 모든 사람들은 삼족을 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어떤 씨앗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기 위해 삼족을 멸하는 것이 아주 끔찍한 방법이 아니라 일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게 왕조가 바뀌게 되면 일어나는 대표적인 일들이었습니다. 사울왕이 전사한 후에 다윗은 바로 통일 왕국의 왕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유다의 왕으로 7년 넘게 있으면서 북쪽은 사울의 아들 한 사람을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미완성 왕국으로 있다가 마침내 통일 왕국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남은 사람이 있다면 허수아비 왕이라도 세우며 반역할 수 있기에 그 불씨를 없애는게 당연했기에 사울의 남아 있는 자들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들은 죽은 목숨인 것처럼 알고 이곳저곳에 숨죽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윗왕의 질문, 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라고 물어본 이유가 육적 이유가 아니라 영적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그 남아 있는 사람들의 씨를 말리고 처단하고 다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요나단을 기억하고 은총을 베풀기 위해 찾는 것입니다. 사울의 남은 사람들을 찾는데 그 동기와 이유가 전혀 달랐던 다윗왕의 모습이 바로 영적인 반응을 보이는 그의 신앙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이 안정된 인생의 정점에 있고 모든 사람에게 칭송 받는 왕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자신을 생각하는 대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될까를 제일 먼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순전한 마음이 하나님께 합한 자가 되는 비결이었습니다. 동시에 다윗은 그 인생의 정점에서 왕으로 부러울 것이 없는 그 최고의 자리에서 예전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은총을 갚기 위해 사울 가문의 남은 자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전에 있었던 요나단과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은혜 베푸려고 한다….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는 것이 다윗왕의 위대한 점이었습니다. 알아보니까 누가 죽지 않고 남아 있었냐면 요나단의 아들 중 한 사람, 다리 저는 자인 므비보셋 이었습니다. 육적 반응을 하는 신하들은 다윗왕에게 뭐라고 계속 조언했겠습니까? 저 자는 결코 살려두면 안되옵나이다….장애인이어서 싸울 수 없는 자였지만, 허수아비 왕은 충분히 될 수 있으니 결코 살려두면 안됩니다….다 처단해야 합니다…그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그래야만 다윗의 왕가가 흔들리지 않고 든든할 거라고 얘기했을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모든 것을 거절하고 영적인 반응을 하려고 그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궁으로 데리고 옵니다. 다윗왕을 통해 왕궁으로 호출을 받은 므비보셋의 느낌은 어땠을 것 같습니까? 두려움에 압도되어 나는 이제 죽었구나…이제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끌려 왔을 겁니다. 이게 다윗 궁에 들어가면 처단당하고 나의 인생은 끝이다. 아마 인생을 다 정리하고 가족과 이별의 인사를 하고 왔을 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므비보셋 자신도 당연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려고 들어갔는데 다윗왕으로부터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내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내게 은총을 베풀리라.” 놀랍게도 무서워하지 말라는 거죠. 죽이는 대신 반드시 내가 은총을 베풀 거라는 겁니다. 죽으러 온 자리이고 죽어야 마땅한 므비보셋을 다윗왕은 목숨을 살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은총을 베풀어 주는 것이죠. 그 기적과 같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요나단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은총을 베푼다는 것은 단순히 목숨만 살려주는 것을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므비보셋의 입장에서는 죽지 않고 목숨만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푸는 은총은 단순히 목숨만 살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할아버지 사울이 가지고 있었던 밭을 다 돌려주겠다는 겁니다. 또한 죽어 마땅한 자인 그를 왕자처럼 대해 주겠다는 겁니다.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게 초대한 것입니다. 이 다윗왕의 영적 반응과 므비보셋을 향한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게 되는 은총이 무엇인가를 그대로 알려주는 복음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죽어야 당연한 죄인이에요.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죄인의 괴수가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느냐? 당연히 죽어야 되는 나에게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선포해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들 입니다. 당연히 죽어야 되고 죽는 게 당연한 나, 죽음의 자리에 있어야 될 나를, 누구 때문에 살려주는 겁니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으로 인하여 저와 여러분들을 살려 주시고 은총 주신 분이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인 걸 철저하게 믿는 게, 우리가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 받음입니다. 더 나아가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푼 다윗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가 뭐냐면 단순히 우리를 죽지 않도록 건져 주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시며 하나님의 상에서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고, 마치 죄가 없는 의인처럼 하나님의 왕자처럼 여겨 주시며 우리에게 회복의 은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이 놀라운 은총에 엎드려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고백합니다. 철저히 자격 없음, 철저히 나에게 공로 없음 철저히 나에게는 원인이 없음을 고백하며 전적인 왕의 은총입니다…엎드리는 겁니다. 이 므비보셋의 고백,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임을 마음 다해 고백하는 게 십자가 은혜를 경험한 성도들의 고백입니다. 만약에 내가 구원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원인이나 조건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총이 뭔지를 모르는 자가 되는 겁니다. 나에게는 아무런 원인도 이유도 조건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철저히 고백하며 므비보셋과 같이 주님의 은총에 감격함이 엎드리는 것만이 이 한량없는 은혜를 받아 내 마음에 품는 있는 비결입니다. 나는 죽어야 마땅한 자인데 반드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하여 내게 은총을 베풀리라 말씀 하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 시간 손을 내미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붙드는 것만이 저와 여러분들이 살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왕의 므비보셋을 향한 영적인 반응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 시간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주시는 놀라운 십자가 은총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실 때 늘 식사를 하실 때 자격 없어 보이는 자들을 초대하셨습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고 그런 자격 없는 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셨습니다. 철저히 자격 없음을 인정하고 엎드린 탕자와 같은 자들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고 왕의 식사 자리에 함께 참여하게 해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가 부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이 시간 우리에게 회복되야 할 십자가 사랑이며 십자가 은혜입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너는 항상 나의 상에서 함께 먹을지니라.. 너는 더 이상 죄의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자가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은 나의 아들이고 나의 딸이다… 그 은총을 붙들고 살아갈 때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한 소망을 붙들고 천국을 바라보는 은혜의 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자격 없는 나, 죽어 마땅한 나를 구원하신 그 예수님 안에 머물며 그 은총을 기뻐하고 감격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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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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