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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8장 말씀은 남유다와 아하스왕이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는 대신 강대국 앗수르를 구하고 의지하는 것 때문에 노략과 멸망이 속히 올 것을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선언으로 경고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오늘 말씀은 여호와께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남 유다를 깨우시며 세 가지 진리의 바른 길로 돌아오기를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 우리를 깨우시고 경고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성도로서 붙들어야 할 세가지 진리, 성도로서 돌아와야 할 세 가지 바른 길에 대해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붙들어야 할 세 가지 진리, 돌아와야 할 세 가지 바른 길이란 끝을 볼 수 있는 영적 시야를 갖는 것, 하나님을 전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 자기 하나님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성도로서 붙들어야 할 진리는 끝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9-10절에 계속 반복되는 말은 뭐냐면 “끝내” 라는 말입니다. 끝내 패망하리라…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구하고 의지하는 자들, 눈에 보이는 것을 부지런히 붙드는 자들은 처음에는 잠깐 되는 거 같지만 결국 끝은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다 망하고 이루지 못하고 시행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남유다와 아하스 왕은 끝을 바라보는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아하스를 구하고 의지하다가 그들은 끝내 패망하고, 끝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끝이 어떻게 될 줄을 보고 결정하는 자입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배웠지만 아주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같이 때로는 보이지 않는 거 같이 하나님이 역사하시지만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믿으며 마침내 우리는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가게 됨을 믿으며 하나님께 붙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시야가 눈에 보이는 바로 앞에 있는 것만 보면 안되고, 저 멀리를 볼 수 있고, 끝내…를 볼 수 있는 넓은 영적 시야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은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구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끝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고 붙들고 구하면 처음에는 괜찮아 보이고 잘 되는 것 같이 보이나 끝내 망하게 되는 인생임을, 내 인생이 단맛나는 포도를 내는 대신 신포도와 악취나는 포도를 내는 인생이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새벽 기도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는 영적 유익은 바로 모든 것을 멈추고 십자가 앞에 나를 둠으로서 마지막과 끝을 볼 수 있는 영적 시야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찾아오는 수 많은 선택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끝이 좋은 인생을 택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붙들어야 할 진리, 돌아와야 할 바른 길의 두번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두러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하나님을 전적으로 두려워하는 게 성도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성도와 세상의 결정적인 차이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들이 있고 성도가 무서하고 두려워 해야 할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을 두려워하며 그 두려움에 압도 당하여 살아가는 되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과 같이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연합군이 쳐들어오는 두려움에 압도 당하여 벌벌 떨고 있는 아하스 왕의 본질적 문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바람과 같이 사라질 존재들에 벌벌 떨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똑같이 두려워하고, 세상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똑같이 무서워 한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옆에 사람들 두려워하는 거 똑같이 두려워하고 옆에 사람이 놀라는 거 똑같이 놀라며, 옆에 사람들이 벌벌 떠는 것에 똑같이 벌벌 떨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주변이 두려워 할 것 투성이고, 무서워 할 것 투성이지만, 그것이 힘들고 어려울지 언정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내가 압도 당하지 않고 넘어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경외함 있을 때 이 세상 두려움에 압도당하지 않으며, 무서워하지 않으며 이 세상을 이기는 삶, 바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이자, 이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성도의 특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가르친 잠언의 놀라운 약속입니다. 붙들어야 할 진리, 돌아와야 할 바른 길 세번째는 자기 하나님에게 마땅히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하나님에게 마땅히 구하는 자들이 성도라는 것입니다. 자기 하나님이 있는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놔두고 놔 두고 주변에 용하다는 신접한 자와 용하다는 마술사에게 기웃 거리며 쫓아다니면 이게 어려운 인생입니다. 자기 교회가 있는 성도가 자꾸 다른 교회 기웃 거리고 다른 종교 기웃 거리면 이게 어렵습니다. 자기 집을 놔두고 자꾸 남의 집을 기웃기웃 거리면 어려운 인생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않으면 자기 하나님 놔두고 눈에 보이는 것에 기웃거리며 주변에 기웃거리며 다른데 구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찌르는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는 거죠.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하나님에게 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께 먼저 구하십시오. 자기 하나님을 먼저 찾아가십시오. 자기 하나님에게 먼저 눈물을 쏟아 내십시오. 나는 붙들고 의지하고 구할 자기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있는 존재다/ 신약의 말씀을 빌리면 나의 아빠 나의 아버지가 있는 존재다. 이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허우적거리고 세상의 신접한 자와 마술사들에게 기웃거리는 인생이 아니라 마땅히 자기 하나님에게 구하며 살아 계신 여호와를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 바로 성도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진리가 결핍된 성도, 이 세 가지 진리로 돌아오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며, 함정과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 백성임에도 마지막과 끝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끝이 좋은 것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임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대신 세상을 두려워하고 벌벌 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백성임에도 자기 하나님에게 구하는 대신에 신접한 자와 마술사와 주변의 강대국에 기웃기웃 거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이 그들에게는 다 함정과 올무가 되고, 걸림돌이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성도로서 우리는 마지막과 끝을 볼 수 있는 영안을 갖기를 원합니다. 현재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끝이 좋은 것을 바라보며 선택하는 인생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두려워하고 경외하기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넘어서는 기적을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을 전적으로 두려워한다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세상에 기웃대지 말고 마땅히 자기 하나님께 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의 두려움과 무서움에 압도 당하는 대신, 오직 주님을 두려워하고 자기 하나님에게 구하여, 하늘에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담대하게 나아가는 삶이 내 인생에 구체적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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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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