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다 아하스 왕은 역사적으로 가장 악한 왕으로 증언되고 있는데 그는 하나님을 떠나고 바알을 섬기고 우상으로 모든 것을 채우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는 그의 악함은 하나님 없는 형통, 하나님 없는 보호, 하나님 없는 만족을 추구하는 모든 삶을 대표하는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악한 행동은 결과이고 본질적으로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배제하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나아가는 모든 삶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북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이 쳐들어오고 있어서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남유다와 아스 왕에게 하나님을 구하고 붙들라 명하셨는데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구하지도 의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보다 더 크게 구하고 의지할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눈에 보이는 힘과 군사력의 대표인 앗수르였습니다. 그런 악한 왕 아하스,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며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이 쳐들어오는 두려움에 압도당하며 벌벌 떨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그 선언이 바로 발음하기도 어려운 단어인 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그 뜻은 노략이 속히 오리라….라는 의미로 마헬살랄하스바스는 이사야 선지자의 둘째 아들의 이름입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바로 전 장인 7장에 등장하는데 바로 스알야숩,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아들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도록 명하시는 것을 통하여 그 당시에 남유다의 영적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스알야숩 (남은 자들이 돌아오리라), 마헬살랄하스바스 (노략이 임박했다)…두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이 나라를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생각하며 진리를 선포하게 하신 겁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게 왜 마헬살렐하스바스…라는 선언을 그렇게 강조하신 것입니까? 거기에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너희가 그렇게 두려워하고 벌벌 떠는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합군에게 노략과 심판이 임박했다는 선언입니다. 아하스 왕은 눈에 보이는 연합군을 너무 두려워하고 거기에 몰입되어 압도 당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렇게 두려워하고 벌벌 떠는 골리앗과 같은 거인, 북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이 실제로는 조만간 사라질 작은 것들임을 알려주시는 말씀이 바로 마헬살랄하스바스 (노략이 임박했다)입니다.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이고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다메섹과 북 이스라엘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날이 임박했음을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그렇게 두렵고 벌벌 떨고 있는 아람과 북 이스라엘의 연합군을 두려워하지 말라, 곧 노략이 임박했다 선언하시면서, 그 두려움이 얼마나 허상인지, 그 두려움이 얼마나 왜곡되고 과장된 것인지를 분명히 알게 하시는 겁니다. 둘 다 곧 망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라… 이것을 알려주시는 선언이 바로 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찾아오는 큰 도전 두 가지는 바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에 너무 두려워하여 압도당하는 도전, 또 하나는 그렇게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하나님을 구하고 바라보지 않는 도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며 두려움에 압도 당하며 벌벌 떨고 살게 된다는 것이 바로 예언서가 주시는 일관적인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붙들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이 세상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에 압도당하며 왜곡되고 과장되어 거기에 벌벌 떨고 무너지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사노라면 두려워할 것들 투성입니다. 내가 두려움에 집중하고 곱씹을수록, 두려움은 왜곡되고 과장되고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망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이 압도당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소망의 말씀 마헬살랄하스바스…를 마음에 담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그 두려움 들은 다 지나갈 것들이고 다 부지갱이에 불과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진짜 두려워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라 권면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두번째, 너희가 하나님을 구하며 돌아오지 않으면 너희도 이렇게 노략과 심판이 곧 임박했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선언합니다. 아람과 북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지 않을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아하스는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봤어 되는데 아하스 왕의 악한 삶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그 두려운 존재에 압도당하는 것이고, 의지 말아야 할 존재를 의지하고 구하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하스 왕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와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는 악을 범한 겁니다.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이란 예루살렘 바로 옆에 흐르는 물이라고 합니다. 이 실로아 물은 흐르는지 안 흐르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잔잔하고 조용히 흐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일하심을 대표하는 겁니다. 그런데 두려움에 사로 잡히고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하심은 이렇게 천천히 흐르는 물이 아니고, 눈에 확 보이고 빨리 쉽게 편하게 움직이는 물입니다. 그러니까 아하스 왕과 남유다는 이렇게 잔잔히 흐르는 듯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고 그것을 원하지 않으니까 실로아 물을 버린 겁니다. 대신 눈에 보이게 화려하고 막 시선을 끌고 지금 당장 뭐가 일어날 것 같은 앗수르가 주는 물을 좋아하고 붙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쉽고 빠르고 당장 응답해주는 것 같은 앗수르의 힘을 구하고 의지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게 천천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되는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빨리 쉽게 편하게 눈에 보이게 응답할 거 같은 앗수르를 붙드는 것, 이것이 바로 남유다가 직면하게 된 마헬살랄하스바스, 임박한 노략입니다. 하나님 대신 의지한 앗수르로 말미암아 그들이 너희를 더욱 더 크게 넘어뜨리고, 완전히 노략하게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정말 두려워할 분을 두려워하며, 정말 의지할 분을 의지하며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의 두려움에 압도당하여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는데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면 그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 때문에 나의 인생이 어려움을 당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마헬살랄하스바스…하나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너희가 천천히 보이지 않게 흐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대단한 거 같은 앗수르를 붙들고 의지했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이 뭔지 제대로 보여줄께….확 몰아치는 홍수 같은 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해 줄께…바로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 대신 우리를 건질 거 같았던 앗수르가 결국 남유다에 찾아와 홍수와 같이 모두 뒤덮어 버리고 노략해 버릴 날이 임박했다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 대신 구하고 의지하는 것들 때문에 우리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거라는 것, 이것이 바로 남유다를 향한 경고이고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보이던 보이지 않던, 감각으로 느끼던 느끼지 않던,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 분명히 역사하시고 일하십니다. 천천히 흐르는 물과 같지만 분명히 확실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역사하심을 신뢰하고 붙들며,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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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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