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나단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명령을 다윗왕에게 전하는 말씀과 그 말씀을 받고 나서 다윗 왕이 반응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은 권력과 힘이 있는 자들에게 듣기 싫은 올바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로서 그 당시 최고 권력자 다윗 왕에게 왕의 생각이 잘못됐고 왕의 방법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 입장에서 왕의 생각과 뜻과 반하는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사실 목을 내놓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항상 건강한 나라에는 선지자와 왕 사이에 창조적 긴장이 있었습니다. 왕의 주변에 늘 듣기 좋은 이야기들만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기에, 쓴소리 없는 왕은 영혼에 당뇨병이 걸려 본인도 국가도 어렵게 한다는 것을 하나님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왕일지라도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들만 취하는 게 아니라, 듣기 싫은 쓴 소리라도 선지자를 통해 그것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으로 깨닫고 취할 때, 그가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는 왕이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왕의 뜻과 반하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나단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 선지자 본인의 생각도 틀렸다는 것을 고백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다윗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왕의 좋은 뜻대로 하라고 나단 선지자도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생각해도 이것은 1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속히 왕의 생각대로 모든 일을 추진하기를 나단 자신도 원했던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임하여 주신 말씀은 다윗 왕도 틀렸고 나단 선지자도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 의도와 생각은 굉장히 귀했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일하실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왕이 가진 귀한 의도와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웅크리고 기다려야 되는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의 메세지, 하나님의 때와 방법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지금은 아님을 인정하고 기다리라 말씀을 들은 다윗왕의 반응을 주목하기 원합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다윗이 화를 내거나 마음에 상심하거나 어떻게 내가 이렇게 좋은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이 이러실 수 있냐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나단 선지자가 가져온 하나님의 말씀에 다윗 왕은 아멘으로 엎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다윗이 스스로를 종이라고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왕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교정되고 변화되는 하나님의 종일 뿐임을 진정으로 고백하였습니다. 내 좋은 의도와 뜻이 하나님 앞에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심하거나 분을 내지 않고, 그 당시 최고 실세인 왕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쓴소리를 아멘으로 받아 순종하고 엎드리는 영적 겸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했을 때 하나님이 언제나 옳으심을, 내 때와 하나님의 때가 충돌했을 때 언제나 하나님의 때가 옳으심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삶, 인생의 정점에 있고 나라의 정점에 있었던 다윗 왕의 영적 현주소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거나 혹시 성경 말씀을 마음에 담아 읽을 때 언제부턴가 우리는 우리가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생각하는 바를 들으면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은 게 내 심령 골수를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내가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다시 한번 반복되어 말씀을 통해 설교자를 통해 들려지게 되면 은혜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생각과 반하거나 내게 듣기 싫은 말씀을 듣게 되면, 은혜가 떠났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강단에서 점점 옳은 소리와 바른 소리 대신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하려는 유혹과 도전 가운데 우리가 서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왕과 선지자 사이에 창조적 긴장관계가 없게 되면 어떻게 되냐 하면 왕은 적절하게 선지자들을 잘 돌보고 음식 잘 먹이고 그러면서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왕의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만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굽어지고 하나님의 계획이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이야기를 왕이 들어야 될 불편한 얘기들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쓴 소리 없이 내 귀에 듣기 좋은 달달한 소리만 듣게 되면 영혼의 당뇨병에 걸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듣고 싶지 않은 말씀과 내 뜻이 거절되는 말씀이라도, 결국 그 하나님의 쓴소리가 내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고 싱싱하게 만드는 약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쓴 소리를 아멘으로 들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되며 선지자들은 주신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며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뜻과 생각이 거절된 후 다윗왕이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종의 집에 하늘의 복을 주며 하나님 앞에 영원히 있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눈에 보이는 복이 아니라 신령한 복 하늘의 복을 다윗은 정말 사모했고 정말 최우선으로 구했다는 것이죠. 내가 제대로 되기 위해 내 인생이 제대로 살기 위해, 이 나라가 든든히 서기 위해 정말 필요한 복은 보이지 않는 복인 하늘의 복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붙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영원히 서 있는 나라가 될 때 이스라엘은 복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왕으로서 다윗의 이런 태도와 자세를 하나님께서는 매우 귀하게 보시고 놀랍게 쓰셨습니다. 인생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엎드리고 높은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의 종으로 철저하게 고백하며 엎드리는 이런 다윗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고 그 마음을 들어 풍성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엎드리고 말씀 앞에 굴복되는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다윗 왕가가 스스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워 주시는 왕,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나라,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는 왕국이 될 수 있도록 그를 놀랍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생밖에 없습니다. 내 스스로 내 인생을 세우려고 발버둥치는 인생, 하나님이 세워 주시며 영원히 견고한 인생…여러분들은 어느 쪽에 서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인생을 사십니까? 인생의 정점에서 사람들이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들만 쏟아 낼때, 쓴 소리를 들을 귀를 닫지 않고, 그 쓴 소리가 내 영혼의 당뇨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양약임을 아는 자가 복이 머무는 인생입니다. 인생의 정점에 있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이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복이 나를 세우고 계시고 나를 든든하게 지켜 주심을 철저히 믿는 자가 복이 머무는 인생입니다. 인생의 정점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심을 철저히 인식하고 그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태도,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이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다는 말씀 중심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며 말씀이 지적하게 하시며 말씀이 나를 교정하게 하시며 말씀이 나를 이끌게 하심을 믿으며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들으며 그 말씀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판단하고 말씀이 우리를 교정하고 말씀이 우리를 이끄는 이 분명한 태도와 자세를 가질 때 말씀을 통하여 하늘의 복이 우리 가운데 머무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는 영원히 견고한 인생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이 세우시는 인생을 맛보며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십시오.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용기, 말씀을 그대로 듣는 용기가 가득하고, 말씀이 나를 지적하고 교정하는 역사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복, 영원한 복이 저와 여러분들 가운데 머물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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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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