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 바울은 7장 말씀을 통하여 그 시대와 상황 가운데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결혼과 이혼, 불신자와 함께 살아가는 문제와 같은 실천적인 문제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들을 토대로 성도의 삶 두 가지의 큰 주제를 결론으로 권면하고 있는데 첫번째는 부르심 대로 살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먼저 나눠 주신 그대로, 부르신 그대로 행하고 살라는 겁니다. 부르심 그대로…라는 부분이 오늘 말씀에 세번이나 반복될 정도로 사도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보편적이고 핵심적 삶의 원칙이 있다면 바로 그건 하나님이 각각에게 나눠 주신 그대로, 부르신 그대로 살고 행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 땅을 잠시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곳, 숨 쉬고 살아가는 문화적 상황 가운데 우리가 태어나 자라가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살게 하신 곳, 상황과 환경과 우리가 주어진 자리가 우리에게 부르심을 받은 곳입니다. 그 부르심을 받은 곳에서, 부르신 대로 살고 부르신 대로 행하며 살아가되, 그것을 고집하지 않고 절대화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붙들고 살아가지 않으면 내가 익숙하고 편한 내 스타일과 내 방식이 절대화되어 그것을 고집하게 됩니다. 나에게 절대화된 내 스타일과 방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고집을 부리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 그게 고린도 교회가 직면한 유대인 회심자들과 이방인 회심자들 사이의 도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봤을 때는 자신들의 스타일과 방식대로 따라오지 않는 이방인들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게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할례의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을 이방인들과 멀리하고 교제도 하지 않는데 그래도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고 마음을 열고 이방인들과 교제하고 밥 먹고 같이 섞어서 지내는 것도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한 것이라고 여긴 유대인 회심자들에게, 이방 회심자들이 할례를 받지 것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유대교 배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할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구별되지 않았다는 것과 똑 같은 것이었기에 이방인들이 할례도 받지 않고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림돌이 되었고 불편한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 방식으로, 유대인 스타일로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할례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만드는 일이 교회 안에 벌어진 겁니다. 이방인들은 할례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식으로 몰아간 겁니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비슷한 도전과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기도할 때 통성 기도를 해야 됩니까? 아니면 조용히 침묵 기도를 해야 됩니까? 찬양을 할 때 두 손 들고 열정적으로 찬양을 해야 됩니까? 아니면 너무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찬양을 해야 됩니까? 나에게 편한 스타일이 있고 나에게 맞는 스타일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손들고 찬양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게 지나쳐서 손들고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제대로 찬양하지 않는다고 여긴다거나 심지어 영적이지 않다고 규정한다면 그건 내 스타일과 성량을 절대화하고 고집하는 우를 범하는 겁니다. 내 방식과 내 스타일을 절대화하기 시작하며 고집을 부리는 자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권면이 무엇입니까?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내 방식대로, 내 스타일대로 가는 게 나에게는 중요할지 모르나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내 방식과 내 스타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절대화 할 필요도 강요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방식이나, 내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주의 계명을 잘 지키며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부르신 그대로, 하나님이 맡겨 주신 내 식과 내 스타일대로 자유롭게 신앙생활 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내 문화와 성향에 맞는 내 스타일과 나만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것을 서로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것을 절대화하고 고집하는 순간, 억지로 짐을 지우는 강요가 일어나며, 내 주변 사람들을 부르심이 아닌 얽매임으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겁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내 식대로, 내 스타일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고 여긴다면 이거 다 십자가 앞에 내려 놓기 원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방식과 스타일을 강요하지도, 그것을 절대화 하지도 말고 오직 부르심에 따라 충성 다하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두 번째는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 십자가에서 죽으신 핏값으로 건짐 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면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사람의 종이 되면 안 되고 상황과 환경의 종이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만일 유대인들의 하례를 이방인 회심자들이 보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본받고 싶은 전통이 되어 내가 할례를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자원하는 마음이 들면 전혀 문제가 안되는데, 이 할례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며 억지로 짐을 지우게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게 메이게 하는 것이며 사람의 종이 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삶, 육안으로만 살아갑니다. 육안으로만 바라보기에, 이 땅만 바라보고, 처한 상황과 환경만 바라보고, 내 주변 사람들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물론 처한 상황과 환경이 중요하고, 물질과 이 땅의 필요도 중요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눈에 보이는 것 전부라면, 육안으로만 살아가게 되면, 결국 상황과 환경의 종이 되며 사람들의 종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결국 종의 멘탈로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종의 멘탈로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돈과 물질만을 의식하며, 사람들만 의식하며 상황과 환경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종의 멘탈로 사람들은 자발성이 없는 강요로 자유함이 없는 억지로 살아갑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사람들 신경 쓰고 사람들 눈치 보며 사람에게 메여 살아가고, 상황과 환경에 매어 살아가는 겁니다. 영적 신앙 생활이란 종의 멘탈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지 말고 강요하지도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마음을 담아 사는 겁니다. 의식적으로 마음을 담아 진심과 전심으로 하는 게 중요함을 알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열망으로 하는 것이 영적인 신앙 생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기 위해, 억지로 하고 강요해서 하는 삶을 넘어 자발적인 마음으로 전심으로 살기 위해 예수님이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각각 나누어 주신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부르심 대로 살지 아니하면 이렇게 사람의 종이 되며 상황과 환경의 종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마음을 담지 않은 곳에서는 자원하는 마음과 자발성이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기가 어렵습니다. 억지와 강요로는 영적인 일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또한 하늘 소속이 분명한 성도로서, 내가 육안으로만 바라보고 살아가지 말고, 육안과 함께 영안으로 동시에 바라보고 살아가기를 사모하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에 묶이지 말고, 사람들에게 묶이지 말고, 처한 상황과 환경에 묶이지 않는 비결은 육안을 넘어 영안으로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그럴 때 보이는 것을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며, 내 신앙생활은 마음을 담아 드리는 전심과 진심이 되며, 자발성과 열망이 이끄는 영적인 일이 될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부르심 그대로 살아가며, 종으로 살아가지 않는 자유함을 누리며, 이 두 가지를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취하며 내 삶의 기준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April 2026
카테고리 |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