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남 유다의 가장 악한 왕 중의 하나인 아하스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 않았을 때 공동체 전체에 나타나는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금 남 유다가 처한 상황은 북 이스라엘과 아람군대가 연합해 쳐들어오는 위기 가운데,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 굉장히 두려워하며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두려워 떨고 있는 아하스와 남유다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친히 손을 내미시며 하나님만을 믿고 구하기를 명령하십니다. 깊은데 있던, 높은데 있던 하나님의 백성을 외면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겉으로 봐서는 굉장히 믿음이 있어 보이고 굉장히 영적으로 겸손해 보입니다. 하나님 바쁘시고 하실 일도 많으 신데 저 말고도 도우실 사람 많이 계시니 저까지 도와 주실 필요 없습니다. 매일 들어 주셔야 될 기도 제목도 너무 많으신데 굳이 제 기도까지 들으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구하지 않겠고, 기도 제목 내지 않겠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이것이 겸손해 보이고 믿음이 있어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네가 지금 하나님께 구하지 않겠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라 딱 잘라 말씀하십니다. 아하스 왕의 진짜 속마음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이 어려움과 위기 상황에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는 더 확실해 보이고 분명해 보이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구하고 붙들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믿고 살아가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믿음과 상관없이 살아가면서 아무런 위기 의식을 가지고 살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내 인생에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도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는 대신 계속 눈에 보이는 것만 구하려고 머리를 굴리는 불신앙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생활 할 때 늘 구하는 기도에 집중하는 것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미성숙하고 어린아이 같은 신앙, 늘 나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를 넘어서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감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누리며 하나님에게 나아가야지 맨날 도움이 필요할 때만 나와서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들어 주세요 그러는 게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 보다 더 큰 문제는, 거룩한 척 성숙한 척 얘기하면서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는 겁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삶은 결국 하나님을 실제로 나의 도움이라고 믿고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교회는 나오는데 신앙생활을 하는데 하나님께 내가 기대고 의지하지 않는 삶은 결국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기대로 의지하는 삶일 뿐입니다. 신앙 생활 하면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지 않는 것만큼 심각한 게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인생은 하나님대신 의지할 게 많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진짜 믿지 않으면서 믿는 척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실제로는 나의 도움으로 의지하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도음으로 의지하는 불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나오면서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고 기대는 자들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왕이 되고, 지도자 위치에 올라가고, 가장의 위치에 올라가면 그 가정과 그 공동체와 그 나라가 굉장히 어려워지고 결국 멸망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하는 아하스 왕,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붙들지 않는 남 유다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동시에 주십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심판이 뭡니까? 그게 오늘 말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차 너희가 당해보지 않는 그날이 온다는 겁니다. 앗수르 왕 왕이 오는 그 날이자 바로 심판이 임하는 날입니다. 그 날은 애굽의 파리와 앗수르의 벌을 부르시는 심판의 날이고, 내 백성의 머리털과 털을 미시고 수염도 미는 수치와 모멸을 당하는 날입니다. 그 날은 엉긴 젓과 꿀을 먹는 날이고 찔레와 가시가 나는 심판의 날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내미신 손을 거절하는 아하스 왕과 남유다, 끝까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그들, 끝까지 눈에 보이는 것만 붙들고 저울질하며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질주하는 남유다의 끝은 멸망 밖에 없고 심판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게 정확하게 저번 주일 요한복음을 통해 주신 예수님의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향한 결론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계속 손을 내미시고 스스로를 계시하시며 가르치시고, 놀라운 표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시는데, 끝까지 예수님의 손을 거절하고 믿기를 거절하고 말씀 듣기를 거절한다면, 그 끝에 남는 것은 심판 밖에 없다는 말씀과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끝까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지하는 하나님 백성들을 향해 심판의 메시지메 함께 한줄기 빛과 같은 구원과 소망의 메시지도 동시에 주십니다. 그 구원의 말씀이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는 말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성탄절에 가장 많이 읽혀지는 말씀 중에 하나로 이 말씀을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둠과 그 불순종으로 질주하며 심판과 멸망 밖에 남지 않은 그 남 유다 백성 가운데, 약속의 독생자 메시야를 보내 주심으로 새로운 회복과 구원의 메세지를 주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괜찮고 잘 믿어서 오신 게 아니라, 하나님 백성들이 어둠 가운데 헤매기에, 심판과 멸망 외에는 답이 없기에, 옛 언약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길이 없기에 오신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망 없이 끝까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며, 옛 언약으로 구원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어둠과 거절 가운데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새로운 언약을 통하여 약속의 메시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구원의 징조를 주신 겁니다.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며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면서 끝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리라 그게 바로 구원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배려하는 척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아하스 왕과 남유다의 불신앙을 처절하게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내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제발 기억하고 제발 정신차리고 하나님을 구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배려한다고 기도 제목도 안 내고 신경 안 쓰셔도 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 자이며,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하는 자입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구하고 의지 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삶 속에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고, 나의 의지할 분이심을 선명히 붙들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는 자이고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믿고 신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 어둠의 시대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하는 시대에, 모든 구원의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 절망의 시대에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며 약속의 아들 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음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나의 인생이 높은데 있을 때나 나의 인생이 낮은데 있을 때나, 나의 인생이 평탄할 때나 나의 인생이 어려울 때나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의지하고 믿는 대신, 오직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께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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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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