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이사야의 사명장으로 불리는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먼저 찾아 오셔서 하늘의 놀라운 일과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에게 회개하게 하셔서 하늘의 불을 통하여 정결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사명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부르심…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사도”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하나님께 이방인들을 구원하는데 보냄을 받은 사도라는 것을 선명히 인식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적 삶을 견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이고, 선교사는 아니지만 선교적 삶을 견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사도적 삶을 견지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면 내가 이 세상에 우연히 어쩌다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어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선명히 믿는 삶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그 기준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내 선택으로 내 뜻과 계획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하나님의 선택해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라는 분명한 믿음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보내신 분의 계획과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내신 분이 돌아오라 하시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결정과 선택이 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믿는 것, 이게 보냄을 받은 자의 삶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은 사명을 위해 보낼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룰 도구로 쓰임받은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 때 이사야는 놀라운 믿음의 반응으로 주님께 고백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내 인생의 분명한 부르심과 보내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목회자만 보내심과 부르심이 있는 게 아니라 특별한 사도적 삶을 살았던 사람만 보내심 부르심이 있는 게 하나님의 백 성에게는 이 분명한 부르심과 보내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먼저 찾아 오셔서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맡겨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소리가 있으며, 주님께서 누구를 보낼까…나를 깨우시는 보내심의 사명을 주신다는 것을 이사야의 소명을 통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나에게 찾아오시고 부르시며, 나를 보내시기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사야와 같이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가 될 때 그때 하나님이 나에게 일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될 겁니다. 이 믿음을 분명히 가지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계획하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며 열매는 맺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심과 보내심에 분명한 고백 가운데 내 마음을 드리고 내가 믿음으로 반응하는 삶, 그 삶으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과 보내신 사명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바로 불순종과 반역 우상숭배로 지금 멸망 직전에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우는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는데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 자들과 같이 마음이 교만하고 완악해졌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고 찌르는 말씀을 계속 듣게 하셨지만, 그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고 보고도 알지 못하는 우매함이 반복되면서 임계점을 넘어간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의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고 둔해져서 깨닫지 못하게 될 지경이 된 겁니다. 이제는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봐 걱정된다…반어적 말씀을 하실 정도로 절망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소망 없어 보이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보냄을 받는 겁니다. 그들은 결국 어느 때까지 그들이 안 돌아오냐….언제 두 손들고 돌아오게 되느냐는 것이죠. 완전히 망하고 무너져야만 돌아온다는 것을 전하는 겁니다.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예루살렘은 완전히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모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때가 되어야 정신 차린다는 겁니다. 완전히 황폐해질 때까지 완전히 망할 때까지 끝을 보는 때가 되야 돌아올 정도로 그들의 현재 영적 상태는 절망이라는 겁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소망의 메시지도 함께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다 황폐해지고 멸망하고 무너지지만, 그 가운데 그루터기와 같이 남겨두신 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다 망하고 무너져도 그루터기는 남아 거룩한 씨가 이 땅에 남아 있게 하시겠다는 소망의 메세지입니다. 그 남겨진 믿음의 사람들은 바알에 무릎 꿇지 않는 7000명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모두 불신앙과 우상숭배로 자빠지고 무너진 것 같은 그 어둠의 때에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남겨두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망하게 하시고 그 남은 자들과 함께 다시 새 출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망하고 무너지고 황폐하게 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 남은 자들을 통하여 새롭게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쓰신다, 다시 일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하나님이 나를 그의 뜻에 따라 일하도록 부르신다…이것이 성도의 분명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내가 조율 받으며 그 보내심에 맞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하도록 부르시는구나…그 부르심과 보내심을 분명히 깨닫기 원합니다. 내가 살아나는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이자 하나님의 보내심의 자리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부르시고 하나님은 사명을 위해 보내시고 계심을 분명히 믿으며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질 줄 믿습니다. 부르심의 자리와 보내심의 자리의 모든 것이 내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리임을 고백하며 살아가게 되기 원합니다. 그게 그분께 믿음으로 반응하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이 성도인 내가 살아가는 방식인 줄 믿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같이 이 세상에 부르심의 자리와 보내심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살아가는 주님의 성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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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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