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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영적인 것에 민감하면 육적인 것에 둔감하다는 것을 영적 원리로 알려주셨습니다. 영적으로도 민감하고 육적으로도 민감한 건 불가능하기에 민감한 것에 민감하고 둔감한 것에 둔감해야 하는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민감할 것에 둔감하고 둔감할 것에 민감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것이 아닌 육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에, 내 이익과 유익을 지키는 것에 모든 것을 쏟는 민감한 백성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민감했냐 하면 세상 법정에 나가 고소와 고발을 해서라도 내 유익과 이익을 지키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백성이었습니다. 반대로 얼마나 영적으로는 둔감했냐면 세상에서도 짓지 않는 음행을 짓고도 회개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그런 사람을 교회에서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이런 둔감함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렇기에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와 어려움에 직면했고, 그들은 영적인 것을 구하는 백성이라고 자부했지만 실상은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노출되어 있었던 영적이지 못한 교회, 영적 미성숙이 가득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런 교린도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이 영적 생활에 얼마나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몸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오늘 말씀은 아주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는 세속적인 타락의 문화와 함께 이원론의 영지주의가 굉장히 발달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화학 작용을 일으키니까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면 내가 영적인 삶을 산다 하면서 몸을 함부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내 몸은 내 거니까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제한 없이 나를 즐기면 된다는 이런 생각이 팽배했습니다. 이 몸에 소망을 두지 않고 몸은 썩어질 거니까 나는 영적인 것만 구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내 몸은 버려질 것 쓸데 없는 것이라는 여기고, 이것이 좀 더 지나쳐 지니까 내 몸으로 짓는 죄는 내 영적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으로 왜곡 변질되었습니다. 나는 영으로 구원받고 영적인 것을 구하니까 내 몸으로 짓는 죄나 내 몸을 함부로 하는 것은 상관없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 가운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이 경고하는 메시지는 육과 영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네 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 알수록 음행은 피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한 몸과 한 영을 나누고 구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성경적 의미로 한 몸이 된다는 건 한 영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영과 육이 나누어지고 상관 없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영과 육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내 몸을 어떻게 하느냐가 나의 영적 건강과 영적 상태와 밀접하고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영과 육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상관 없이 작동하는 게 아니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음행을 사고 파는 물건과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그게 영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을 향하여 음행을 피하라고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음행은 내 몸 안에 짓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이라는 의미가 뭐냐? 그건 바로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동거나 합방이 아니고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한 영이 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결혼을 동거나 합방 정도로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결혼은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내가 만나는 배우자와 합하여 한 몸이 되고 한 영이 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결혼을 통해 그리스도와 내가 한 영과 한 몸이 되는 신비를 알게 하시는 영적 모델이라고 정확하게 증언합니다.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합하여 한 몸이 되며 한 지체가 되어 한 영으로 살아가는 게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성도의 신비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주신 겁니다. 그렇기에 음행을 한다는 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돼야 될 나를 세상과 합하여 창녀와 한 몸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 몸이 창녀와 한 몸이 되며 세상과 합하는 자가 되게 만드는 게 음행이기에, 바로 음행이기 때문에 음행을 결코 가벼운 문제로 여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창녀의 지체가 된다는 건 창녀와 몸이 합쳐지는 것이자, 창녀와 한 몸과 한 영이 되는 겁니다. 이걸 본능과 육이 주도하는 인생, 고깃덩어리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타락하여 영적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본능이 주도하는 고등 동물과 다름 없는 고깃 덩어리가 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음행은 별 죄도 아니고, 그건 합법이자 당연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며,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데 누가 상관하느냐며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너희는 그럴 수 없다는 거죠. 우리는 창녀의 지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합한 자며 그리스도와 한 몸되고 한 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며, 내 몸은 음행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몸은 누구와 합하는가에 따라 고깃덩어리가 될 수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내 몸이 누구와 합하는가에 따라 내가 세상과 합하여 세상과 한 몸이 되며 세상의 지체로 살아가느냐? 그리스도와 합하며 그리스도의 지체로 한 몸이 되는가가 결정되는 겁니다. 우리가 나의 몸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고, 내가 거룩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은 내 몸이 누구와 합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지체가 된다=몸이 합쳐진다=한 몸이 된다=한 영이 된다….이 명확한 그림을 마음에 새겨야 음행을 결코 가벼운 문제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음행이란 내 몸 안에 죄를 짓는 것임을, 내 몸을 창녀와 세상과 합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음행은 세상과 한 몸이 되는 것이며, 창녀와 한 육체가 되어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 몸이 내게 아니니까 빌려 주신 하나님의 뜻을 맞춰 잘 관리하고 쓰는 게 성도의 거룩한 의무이자 음행을 피해야 할 분명한 이유입니다. 내 몸을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한 영으로 살아가는 삶이 성도의 거룩한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음행을 가볍게 여기며 돈으로 사고 팔면서 합법이라 여길 때, 내 몸은 내 것이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여길 때, 몸으로 짓는 죄는 영적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길 때, 음행을 피하며 단호이 그것을 거부하며 세상을 거스는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자들이 성도입니다. 내 몸은 고깃덩어리가 아니고, 그저 고등 동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주의 몸이다… 분명히 고백하며 내 몸의 소유권을 주께 드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통하여 우리의 영적 질서와 영적 건강과 영적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나의 귀한 몸을 그저 고깃덩어리로 전락시키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귀한 그릇으로,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과 한 영이 되는 귀한 그릇으로 선명히 사용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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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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