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부터 5장까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에 계속 무서운 멸망과 심판의 경고의 메세지를 주시다가 오늘 6장에서는 빛과 같이 이사야에게 소명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의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이 그 모든 것들을 덮고 넘는 차고도 넘치는 은혜와 같이 놀라운 역사의 한 순간으로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부르시고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먼저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때가 언젠가 하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는 남유다 역사에서 장히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습니다. 웃시야 왕은 굉장히 선한 왕이었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고 정직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든든해지고 주변 나라들이 벌벌 떨 정도로 부강하게 하나님이 복을 주셨는데 또 그렇게 위로 올라가고 하나님이 놀라운 축복을 주시니까 왕이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본인이 하지 말아야 할 제사장 역할도 감당하려 하다가 병이 와서 그만 죽게 되던 때, 즉 국가적으로는 큰 위기의 전초가 되던 때였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이 이사야를 부르심으로 모든 것이 시작합니다. 웃시아 왕이 죽던 때, 국가적으로는 큰 위기가 찾아올 전환점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영어로 하면 God’s initiation이라 하는데,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 겁니다.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내가 쓰임 받고 싶습니다…그러면서 먼저 나아간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이사야를 부르시고 만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시고 먼저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이 먼저 떨기 나무 가운데 찾아가셨고, 기드온도 하나님이 먼저 찾아가셨습니다. 이사야를 부르시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먼저 저와 여러분들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부르시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Initiation과 주도권 아래 하나님의 뜻을 나누시며 하나님을 나를 통하여 일하시는 현장으로 보내시는 것이죠. 그게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하늘의 역사, 그 영적 원리의 순서인 것입니다. 두번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먼저 찾아오셨고, 먼저 하늘의 일을 보여주시고 들려주십니다. 땅의 일에 몰두하고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하늘의 일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땅만 바라보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임을, 눈에 보이는 땅의 일에만 몰두하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일을 주목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하늘의 것을 보여주셨는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함께 있는 스랍들 천사들을 통하여 하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천사들의 옷자락은 하나님의 위엄을, 연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그림 언어입니다. 거룩, 거룩, 거룩, 세번을 찬양하는데, 성부 성자 성령님 하나님을 온전한 찬양을 들은 것입니다. 하늘의 가득한 영광이 가득했던 세번의 거룩함의 찬양이, 보좌 주변을 메아리 치고 문지방의 터가 요동할 정도였습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을 이사야가 보고 들은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썼으나 부분적으로만 표현되는 하늘의 놀라운 위엄과 영광을 보여 주신 겁니다. 땅만 본 사람들은 하늘의 것을 알 수 없고, 땅의 영광만 보고 사는 사람들은 하늘의 영광이 뭔지 모르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사야를 부르시고 하늘을 열려 놀라운 하늘의 역사를 먼저 보여주신 것입니다. 보이는 유다의 왕이 아닌 보이지 않는 만유의 왕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넘어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선명히 알게 하신 겁니다. 세번째, 이사야의 처절한 회개와 하나님 용서입니다.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역사와 영광을 보고 들은 이사야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니까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자복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나는 큰일났구나 망했구나 죽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왜냐면 나는 더럽고 죄인이고 하나님의 그 영광 가운데 내가 얼마나 죄인이고 얼마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게 되면 나에 대한 절망과 포기, 나에 대한 소망 없음을 철저하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과 거룩 가운데 내 존재가 얼마나 가벼운지,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진짜 알고 나서 그가 했던 첫 번째 반응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나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소서…고백하는 것과 똑 같은 이치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놀라운 하늘 보좌와 임재를 놀랍게 체험하면서 발견한 나라는 존재의 가벼움,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며 나는 죄인이라는 고백이 터져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고개를 뻣뻣이 들 수 없고, 하나님 앞에 내가 한 일을 자랑할 수가 없으며 하나님 앞에 철저히 소망 없음을, 가능성 없음을 고백하며 엎드리는 겁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는 나의 존재감입니다. 입술이 부정한 자라는 회개의 고백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간의 많은 죄악이 마음에 쌓아둔 것이 입으로 나오는 것이기에 입술이 부정하다 고백한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사야가 입술이 부정한 죄인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찾아옵니다. 천사가 죄로 말미암아 부정해진 이사야의 입술을 하늘의 숯으로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죄악의 본질인 내 입술에 하늘의 숯이 닿게 하니까 바로 내 죄가 해지고 악이 사해진 것입니다. 회개하며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나를 깨끗게 하시고 나를 정하게 하시며 내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겁니다. 나의 부정함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만나면 나의 부정함이 정해지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셨던 놀라운 역사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일어나는 놀라운 축복들이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며 예수님을 만나면 부정했던 나병환자가 병이 치유를 받고 깨끗해지는 역사가 예수님을 대면한 자들에게 주신 하늘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 철저하고 진정한 회개 가운데 주님의 거룩하심에 내가 닿을 때 내 붉은 죄가 눈과 같이 희어지며 불순물이 모두 태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사야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하늘의 복이며 이사야에게 보여주던 놀라운 하늘의 영광입니다. 이게 하나님을 진정으로 대면한 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심을 믿는 게 복음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시고 나의 마음을 노크하시며 깨우시는 분임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깨우시고 부르시는 그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저 오늘을 위해 오늘만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을 넘어 그날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자는 바로 하늘의 문이 열리며 하늘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는 자입니다. 진정한 회개란 내가 하나님의 거룩함 가운데 엎드리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정한 자이며 얼마나 소망이 없는 자이며 얼마나 가능성이 없는 자인지를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겁니다. 그냥 나는 죄인이고 죽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며 두 손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 모든 건 주님이 다 해결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그 하늘의 은혜를 맛보는 것뿐입니다. 땅을 밟고 살아가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 오늘을 살아가지만 그 날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 그 모든 다른 삶의 비결은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믿고 하늘의 영광을 보는 데 있는 겁니다. 나에게도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 하나님의 역사와 일이 보여지는 기적이 열리기를 사모하며 오늘을 살아 가십시오. 땅의 영광과 사람들의 영광을 넘어 하늘의 영광,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기를,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믿음의 현실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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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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