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강조되는 건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오늘 말씀은 세 가지로 하나님께 돌아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첫번째 의미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인데, 오늘 말씀은 그 타이밍이 있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가 있다는 것이고, 그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는 바로 하나님이 가까이 계실 때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하나님은 언젠가는 멀리 계시고, 하나님은 언젠가는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구나….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가 있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때가 있구나…이렇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만 만날 수 있는 분이고,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고 나와 가까이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의 한계가 있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늘 갈대와 같이 흔들리기 때문에 내 생각과 내 느낌에 하나님이 멀리 계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느끼기에 하나님이 멀리 계신 거 같은 겁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게 아니라 내가 느끼고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이 나와 멀리 계신 거 같을 때가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내가 하나님과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누구 문제냐 하면 나의 문제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것 같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거 같은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내마음에 느낌과 느낌을 가지고 하나님을 재단하는 착각입니다. 내가 마음에서 멀게 느껴질 뿐이지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며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만나 주시며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내 느낌과 내 생각이 하나님이 멀리 계신 거 같고 심지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질 뿐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고 나와 가까이 계신 것을 인정하는 게 내 경험과 느낌이 아닌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나의 생각과 느낌을 내려놓고 지금 나와 가까이 함께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들며,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때에 주님을 바라보고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여호와께 돌아온다는 건 내 길과 내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인생은 끊임없이 나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삶인데 그 삶은 바로 내 길과 생각을 버리고, 내 시간표와 내 뜻을 버리는 삶입니다. 내 길과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내 시간표와 내 뜻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악인이자 불의한 자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와 불의, 선과 악은 악과 전적으로 하나님의 시선과 관점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불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이지 않는 상태가 불의입니다. 악은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중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찾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이 땅이 전부인 줄 살고 알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불의한 자이며 악인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없기 무관하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내 길과 내 생각을 주장하고, 내 시간표와 내 뜻을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내 생각과 내 길에 조율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이 내 시간표와 내 뜻에 묶이기를 오늘도 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인생은 내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인생이자, 하나님을 찾지도 부르지도 않는 인생이고, 내 길과 내 생각을 끊임없이 나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돌아옴은 반드시 회개를 전제하는데 회개라는 것은 내가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져 있고 악이며 불한 자인지를 고백하고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방향과 삶의 방식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각과 나의 길이 악한 길이고 불의한 길이었음을 자복하는 겁니다. 여호와께 돌아온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악인이 하나님 앞에 불의한 자이며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정하는 자 주의 긍휼과 은혜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나의 길을 갖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중심의 길을 가지고 나의 길을 가고 나의 생각을 갔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버리고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건 바로 하나님의 길과 생각에 조율되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은 다르고 하나님의 길과 내 길은 다르다는 겁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겁니다. 차원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높이가 다른 겁니다. 하나님의 길과 생각은 내 생각에 담길 수 없는 크고 높은 차원이라는 겁니다. 내 생각과 길에 하나님을 담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생각에 내가 조율되어 살아가는 게 여호와께 돌아오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뜻에 내가 조율되는 게 바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겁니다. 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내가 받아드리기 어렵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옳다 언제나 훨씬 더 높고 크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그 주님의 길과 생각에 나를 의탁하며 던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뜻이 모두 내 생각에 수용된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생각은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며 차원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높이가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불안하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그분의 뜻에 그분의 길에 나의 인생을 맡기고 던지는 것,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나아가는 신앙생활인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함께 돌아오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두 가지 축복이 주어지는데 첫번째로, 긍휼과 용서하심, 두 번째는 형통함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돌아오는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절실이 필요한 자이며 하나님의 용서가 절실히 필요한 자들입니다. 아버지가 탕자를 꼭 안아 주시며 묻지도 따지지도 아니하시며 먼저 긍휼히 여기시며 용서하시는 그 하나님의 풍성한 불쌍히 여겨 주심에 그 은혜 가운데 거하는 복, 바로 하나님께 돌아올 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형통하심을 부어 주십니다. 그 형통함의 복을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형통한 인생이란 아무 문제 없이 평탄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뜻하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가까이 계시고 함께 계심이 형통함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형통함을 누린다는 것은 나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하심이 나에게 형통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돌아올 때 우리에게 누려지는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가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초대하시며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으며 주님을 찾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바로 여호와께 돌아오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내 길과 내 생각을 버리는 것이며 내 시간표와 내 뜻을 버리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 생각에 하나님을 묶어 놓으려 하지 마십시오. 내 시간표과 내 뜻에 하나님을 묶어 놓으려 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생각에 묶이고, 내가 하나님의 뜻과 시간표에 묶여 조율되어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내 길 대신 하나님의 길을 따르고, 내 생각 대신 하나님 생각에 조율되어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 믿고 변화하는 것은 예수님 말씀을 듣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내 길과 내 생각을 다 무너뜨리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이 이끄시는 길과 주님의 생각이 나를 지배하며 나를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길과 생각은 언제나 옳고 훨씬 더 크고 높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에게 조율 받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용서하심을 누리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형통함의 은혜를 저와 여러분들이 풍성히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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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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