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반복적 경고 문구가 운전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상하지 않는 일이 앞에 벌어지기 때문에 미리 반복적 경고 안내를 통해 미리 대비하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내판을 무시하고 달리다 보면 결국 길을 돌아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큰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사야서 5장 앞부분에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영적 상태를 들포도 열매를 맺은 모습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시고 가장 좋은 열매가 나오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먹을 수도 없고 악취나는 들포도를 맺게 된 것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하나님을 안 섬긴 건 아니고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는 정기적으로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담긴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 되심을 고백하며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고 의지하는 것들이 생겨, 하나님을 그런 것들과 겸하여 섬기면서, 결국 오늘 말씀과 같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경시하고 율법을 버리고 말씀을 멸시하는 병든 신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악취나는 들포도 열매를 그들의 인생에서 주렁주렁 맺은 것입니다. 그렇게 병든 신앙, 먹을 수도 없고 악취나는 들포도 열매를 주렁주렁 맺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세 번이나 “화 있을 진저…”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반복적인 경고 문구인 “화 있을 진저…” 는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저주의 말씀을 하실 때 관용구와 같이 쓰셨던 말씀입니다. 이사야도 예수님도 “화 있을진저” 라는 반복적 경고 문구를 통해 심판과 멸망이 임박하고 있음을 엄중히 선포하셨습니다.
첫 번째,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 진저…. 끈이라는 것은 무엇을 묶는데 쓰는 도구입니다. 어떤 끈으로 내 인생을 묶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리의 하나님 말씀으로 그들을 묶어야 되는데, 들포도와 같이 그들은 거짓의 끈으로 그들의 인생을 묶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거짓에 묶여 살아가니까 죄악을 끌고 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거룩하게 구별 받은 그들이 거짓의 끈에 인생이 묶여 죄악을 끌고 가는 참담한 현실을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 나를 묶고 죄악을 끄는 인생, 그리고는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 드리고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는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에게 “화 있을진저” 하나님은 경고하신다는 겁니다. 이 안타까운 이사야의 경고는 예수님 시대에도 반복되는 경고 문구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예배 잘 드리고 기도 잘하는 사람들이었을지 모르나, 하늘의 시각으로는 영적 관점으로는 그들은 거짓의 끈에 묶여 죄악을 끌고 가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종교 의식이 화려할지 모르나 속은 썩은 악취가 나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예수님이 경고하셨고 그들에게 동일하게 화 있을진저…저주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내 삶에 적용하여 말씀으로 비춰 보지 않으면 오늘 하나님께서도 동일하게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끄는 인생인 우리들에게 “화 있을진저 …” 경고 하실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뇌물을 받아 선과 악을 왜곡시키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변질시키는 겁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뇌물로 말미암아… 유다와 예루살렘은 거짓의 끈에 인생이 묶여 살았기에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 공의를 빼앗는 악취나는 불의를 일삼았습니다. 거짓에 묶여 살아가는 인생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부당한 뇌물을 통해 취하는 자들이고, 그 뇌물은 반드시 정의와 진리를 내 입맛에 맡게 고무줄과 같이 늘렸다 줄였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무줄 같이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을 넘어, 뻔뻔하게 선한 것을 악하다고 말하고, 흑암을 광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뇌물은 이렇게 내 욕심을 채우는 부당한 도구가 되어 내 눈과 마음을 가리게 되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정의와 공의를 나의 유익과 욕심의 도구로 삼으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철저하게 죄악을 끌고 가는 인생이 되며 무너지는 겁니다. 항상 시대가 악하고 어두울수록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의 절대 기준이 사라지며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를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스스로 기준이 되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에 내가 조율되지 않으면 내 이익과 욕심을 위해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를 고무줄과 같이 내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이 거짓의 끈에 묶여 사는 인생의 특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무너뜨리며 내 유익과 욕심을 붙들고 영적으로 황폐해지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결국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에 내가 조율되는 인생이 아니라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면 내가 기준이 되어 스스로 지혜롭고 잘나고 교만하다 뻐기며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 지혜가 기준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지 않는 인생은 거짓의 끈에 묶여 살아가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를 왜곡과 변질시키는 죄악에 물들어 사는 자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반복적 경고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채 멸망을 향해 질주하면서도 스스로 지혜롭다 착각하며 교만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악취나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에서 어둠의 세력으로 대표되는 자들은 빛과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기를 거절하고 충돌하고 부딪히는 것을 넘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이 진리냐 거짓이냐에 그들은 관심이 없었고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예수님이 나에게 유익한가 유익하지 않은가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에게 불이익이 되며 나의 기득권을 흔들게 되면 의인을 악인으로 만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꾸미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지혜 있다 착각하며 스스로 교만하여 주변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공의의 정의 대신 거짓의 끈에 묶여 살아가는 자들의 특징이며, 뇌물을 받아 정의를 왜곡시키는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렇게 자기 중심적으로 나아가 욕심을 위해 살아가면 결국 끝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증언되는 먹을 수 없고 악취 나는 들포도를 맺은 자들을 향한 세가지의 “화 있을 진저…”의 경고 문구를 마음에 새기 원합니다. 화 있을 진저 거짓의 끈에 묶여 죄악을 끄는 자들이여….화 있을 진저 뇌물을 받아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를 왜곡 시키는 자들이여….화 있을 진저 스스로 지혜롭다는 자기 교만에 빠진 자들이어….지금 이 시간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나는 어떤 끈으로 나의 인생을 묶고 살아가는지…..내가 무엇에 묶여 살아가는지…이걸 모르고 살아간다면 동일한 실수를 범하고 죄악을 끌고가는 참담한 삶을 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사람들은 거짓에 묶여 죄악을 끌고 살아가다가 망합니다. 각자 자기 소견대로 스스로 지혜롭다 스스로 명철하다 착각하며 살아가다가 망하게 됩니다. 나의 인생은 어떤 끈을 가지고 내 인생을 묶고 있는지 주님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 반복되는 나의 습관이 결국 내 인생이 거짓에 묶여 살아가는지, 진리에 묶여 살아가는지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진리의 하나님 말씀을 끈으로 삼아 나를 묶는 일이 내 일상의 신앙 생활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며 기도와 말씀을 내면화 시키는 습관은 거짓의 끈에 묶이기 쉬운 나를 진리의 말씀의 끈으로 단단히 묶는 거룩한 영적 생활로 나아가십시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며 주님이 주시는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먹을 수 없고 악취나는 들포도 같은 열매를 맺는 인생 대신, 맛있고 향기나는 열매 맺는 인생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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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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