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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심판을 바라보시는 마음이 통쾌하거나 기뻐하는 마음이 아니라 슬퍼하며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셨음을 배웠습니다. 그 심판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는 우상숭배를 멀리해야 살고, 바벨론을 살아가지만 그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빠져나오고 도망 나오는 것만 사는 길이라는 것을 구구 절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은 바벨론으로부터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고 곧 멸망시키는 자가 바벨론에 이르렀음을 선언하시며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처참하게 폐허가 되고 무너지게 되고 심판을 당해 멸망하게 될 것인가를 선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선포하는 시대적인 상황과 때는 언제냐 하면 시드기야 왕 제 4년입니다. 아직 남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이자 바벨론은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 초강대국이 되었던 시점에 장차 있을 바벨론의 심판을 예언으로 주시는 겁니다. 남유다의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된 후, 바벨론이 믿어지지 않는 방법으로 심판 당하고 멸망하게 된다는 말씀을 주신 겁니다. 이 말씀을 직접 듣는 수많은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다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만 들리는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의 계속으로만 여겨지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주신 그 말씀을 계속 전하는 겁니다. 주신 말씀을 하나도 빼거나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52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역사적 서술을 증언하기에 사실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을 예언하는 오늘 말씀이 어떻게 보면 예레미야 모든 예언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수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남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전했을 때,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매국과 애국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가 친 바벨론적인 이야기를 하니까 너는 매국이라면서 몰아세웠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때리기도 하고,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도 보게 되면 바벨론 또한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이 망한다는 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런 예언의 말씀을 전하면 누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바벨론과 바벨론을 따르는 친 바벨론 세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뻔합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살 거라고 그렇게 전하다가 마지막에는 바벨론도 심판을 당한다고 하니….예레미야를 향해서 변절자라고 몰아세울 겁니다. 사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친애굽 주의자도 아니고 친바벨론 주의자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 붙들고 하나님 편에서 말했고 하나님 편에서 행동한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사람들은 프레임을 씌우고 오해하며 그걸 통해 예레미야의 말씀을 오해하고 변질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명에 목숨 다했을 뿐입니다. 너희가 망해서 포로로 잡혀가게 된 때에도 말씀대로 그 때가 임하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멸망하게 하시고 그것이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는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가 되어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을 주시는 겁니다. 전혀 이해되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씀들을 계속 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에게는 믿기 어려운 이 예언의 말씀들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붙들지 말고 이 세상 가치에 흔들리지 말고 여호와를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게 여호와께만 충성하는 믿음입니다. 남유다가 멸망하기도 전에 장차 있을 바벨론의 심판과 멸망을 예언으로 주심으로 이 세상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 없지만 머지 않아 반드시 심판의 때가 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믿음으로 그것을 견디며 말씀이 이루어지는 그 날을 바라보고 살아가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주의 권면입니다. 그렇기에 말씀 마지막을 보게 되면 주신 이 말씀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게 해서 그 말씀을 다 읽고 돌에 메어서 유브라데 강에 던지라는 것을 명하심으로써 끝나게 됩니다. 그 모든 말씀을 상징적으로 유브라데 강에 던짐으로 말씀이 이루어지게 될 것을 모두 감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을 굳이 바벨론까지 가서 유브라데 강에 돌을 묶어 던지게 하셨을까요? 유브라데 강은 바벨론에게는 생명수와 같은 강입니다. 애굽에는 나일강이 있었고 바벨론에는 유브라데 강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강은 생명을 유지하는 신성한 곳으로 여겼던 곳입니다. 바벨론의 생명을 유지하고 신성하게 여긴 유브라데 강에 이 말씀을 던진 겁니다. 바벨론을 잠시 몽둥이로 쓰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그 바벨론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심판을 당해 정말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멸망하게 하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또한 돌과 함께 물에 빠진 책은 다시 건질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번복되지 않고 수정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 강에 빠진 돌과 함께 있는 말씀 같이 바벨론이 유브라데 강물에 가라앉듯이 결국 멸망하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될 것을 분명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오늘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에 갇히고 넓은 시야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이지도 수용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젖어 들고 동화되며 사람들에게 충성하는 것이 살 길인 줄 알고 이리 줄 서고 저리 줄 서고 눈치 보며 뛰어 다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며 그 말씀의 때를 믿고 믿음으로 견디며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만 충성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서 여호와를 생각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예루살렘을 마음에 품고, 천국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며 그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분명히 믿으며 그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식을 믿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을 잠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은 이 때에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단단히 붙들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것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한 해를 주와 함께 마무리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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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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