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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영적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애곡과 심판에 대한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라 명하셨습니다. 입으로 전하는 것을 넘어 말씀을 담은 상징의 행위를 온몸으로 담아 백성들을 깨우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진흙으로 예루살렘 성을 만들고 성벽에 언덕을 만들어서 그 성이 머지 않아 망할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옆으로 돌아눕는 390일을 통해 하나님을 등지고 고집 부리는 그들의 영적 교만을 보이시고, 떡을 인분으로 구워 먹는 것을 통해 예루살렘이 어떤 모습으로 망하게 될 것을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상징은 칼로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는 것인데, 패역한 백성들을 깨우고 돌아오라고 알려 주시는 상징이 아니라 그 때가 결국은 차서 이 일이 결국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보여 주시는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칼로 그의 머리털과 수염을 깍으라 명하셨습니다. 사실 요즘에 남자들은 정기적으로 이발과 면도를 하니까 머리 자르고 수염 깎는 게 큰 일 아니지만, 이 당시에는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는 것은 굉장히 큰 일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사극을 보게 되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수염을 자르지 않는 것 조상이 주신 것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지키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였기에 머리칼이나 수염을 자르는 걸 목숨 걸고 막았던 장면들이 기억납니다. 마찬가지로 이 당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머리나 수염 같은 건 함부로 자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에스겔은 제사장 집안이었는데, 제사장은 절대 몸에 삭도를 대면 안 되었습니다.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다는 거는 제사장으로서의 자격이 모두 박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충격적인 일을 하라 명하신 이유는, 극도의 슬픔과 애곡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주 특별한 상황, 예를 들면 사별을 한다거나 참을 수 없는 통곡과 애도를 할 때 바로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머리와 수염을 깎으라고 한 날을 주목해야 하는데, 바로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입니다. 그 성읍이란 바로 예루살렘 아니겠습니까? 그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에워싸는 날이 차면 이렇게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저울로 달라 명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자른 걸 세 등분으로 나눠서 1/3은 성읍 안에서 그 머리털과 수염을 불사르고 나머지 1/3은 칼로 치고 나머지 1은 바람의 흩으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뿌리를 뽑아 어떤 사람들은 성읍 안에서 불 타서 죽고 어떤 사람들은 성읍 주변에서 칼로 찔려 죽고 어떤 사람들은 바람에 흩어지듯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이 처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예루살렘 성이 직면하게 될 현실이라는 걸 그대로 보여 주시며 성이 포위 당하는 날,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면서 통곡의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면할 심판이 이렇게 심각한 것이라는 것을 애곡과 통곡의 마음으로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을 밀면서 이렇게 보여주도록 에스겔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끔찍한 일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들을 선민으로 세운 이유 그들을 특별히 구별한 이유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해 이방인 가운데 두어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중심으로 둘러 있게 하였다는 겁니다. 사실 이스라엘 주변에 있었던 나라들은 다 강대국이었습니다. 애굽도, 앗수르도 바벨론도 그렇고 주변에 강대국이 아닌 나라들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강대국에 둘려 싸여 있는 미약하고 조그만 나라였지만 하나님의 시각에 봤을 때는 모든 게 하나님 백성 중심으로 재편돼 있도록 그들을 두셨다는 겁니다. 이건 마치 뭐랑 똑같은가 하면 신약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임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상의 위정자들과 강대국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 바로 광야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임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우시고 뽑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그 하나님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펼치시기 위해 그들을 가운데 두셨다는 겁니다. 그들을 이방인 가운데 두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심으로 운행되고 움직인다는 걸 보여 주시기 위해 그들을 특별히 구별하여 세웠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들은 그 하나님의 백성됨을 망각하고 그들이 스스로 우월해서 그런 줄 착각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고 반역하고 거스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대신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며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며 헛된 신앙 가운데 빠지고 살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본질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이탈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규례를 거스르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악행이 주변에 주를 모르는 이방 나라들보다 더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냐 하면 설마 예루살렘이 무너지겠어? 우리는 그래도 제사와 예배는 드리는데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데 우리는 괜찮을 거야…라는 이런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은 따르지 않는데 심지어 이방인들보다 더 많이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은 지켜줄 거라는 착각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완악하고 착각에 빠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분명히 말씀하시는 겁니다. 예루살렘은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망한다는 것이죠. 그것도 누구 앞에서 그렇게 망하게 한다는 거예요? 이방인들 앞에서 망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그 환난과 재앙을 너희는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그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 너희들, 역사의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될 백성들이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고 반역하는 너희들, 심지어 이방 나라들보다 더 타락하고 거짓이 만연한 너희들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반드시 결과를 직면할 때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 가운데 중심으로 두고 복의 근원으로 통로로 삼았는데 말씀을 듣지도 붙들지 도 않고 살아가며 악한 행위가 이방인들보다 더하며 그러면서도 망하지 않을 거라 착각하고 있는 그들을 하나님을 결국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말씀을 다양한 방법으로 동원하셔서 전하십니다. 마지막 때는 이렇게 극적인 방법으로라도 전하시며 안타깝게 그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주의 마음이 있습니다. 에스겔이 그의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며 백성들을 향하여 통곡하는 그 눈물의 의미가 우리 마음속에 현재형으로 담기기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 또한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 되게 하시고 우리를 이방 나라들 가운데 두어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며 그 모든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으로 우리를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마치 내가 대단해서 무엇이 있어서 성도가 된 것처럼 착각하고 내가 남들보다 나아서 축복받은 줄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도 말씀의 귀를 기울이지도 않으며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쁘게 살아가고 더 죄악 가운데 헤매고 있다면 이 하나님의 경고 또한 엄중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고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엄중히 그들을 이렇게 치리하실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 구원받은 자 답게 살아야 될 사명이 있으며 지금 하나님 뜻 안에 머무르며 예수 안에 거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갈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 주신 사명과 주의 뜻을 땅에 떨어뜨리지 말고 경시하지 않아 똑같은 착각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순종의 길로 나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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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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