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른 말로 히브리 사람이라 하는데 히브리…라는 말이 “강을 건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기 전과, 강을 건넌 후의 삶이 분명 달라지고 구별된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강 건너기 전의 삶은 애굽에서 바로 왕의 지배 아래 죄와 세상에 결박되어 종살이하던 노예 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세를 통해 출애굽의 역사를 이끌게 하셨고, 히브리 사람들이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넘으로서 겉으로 봐서는 별로 바뀐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들의 내적 신분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강을 건넘으로 그들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이제 자유인이 되었고, 죄와 세상에 결박에서 풀어져 자유하게 되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출애굽을 통해 이렇게 모든 애굽 노예 생활에서 완전한 자유함을 얻었는데, 그들에게 큰 문제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출애굽 한 후에 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애굽으로 향하는 노예 근성이었습니다. 몸은 홍해를 건너며 애굽을 빠져 나왔는데 마음은 여전히 애굽을 빠져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광야에서 계속 그들은 마음이 애굽을 향하고 옛적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그것 때문에 계속 어려움을 당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노예 근성을 때를 빡빡 밀듯이 계속 훈련시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직면하는 영적 도전과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 출애굽을 하였는데 여전히 애굽으로 향하려 하는 그들의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 홍해를 건넌, 애굽과 출애굽이 분명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때는 (At that time)” 과 “이제는 (from now on)” 이 확연히 구별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 때는” 아직 애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죄와 세상에, 초등학문에 종살이하던 때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애굽의 종살이 같은 삶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과 이방신에 쩔어 종노릇 하며 살던 삶이었습니다. 그런 이방신과 우상에게 결박되어 종살이하며 살았던 삶이 그들에게 애굽의 노예 생활이었습니다. 좀더 이것을 영적으로 확대해 보면 죄와 세상과 사망에 종노릇하며 살았고, 또한 율법과 초등학문에 종노릇 살았던 그들의 강을 건너기 전 삶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그들의 영적 상태였다는 겁니다. 예수님 믿기 전 모든 사람들은 이런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강 홍해를 건너 자유함을 얻은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출애굽한 우리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을 알고 동시에 하나님이 나를 아신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을 넘어 만남을 통해 아는 바로 인격적 관계, 서로가 관계를 통해 알게 되는 앎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성령님이 나와 함께하는구나…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이상 헤맬 필요가 없구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예수님이 아시는 것으로 충분하구나….라는 이 인격적 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얻게 된 자가 바로 영적 출애굽을 한 갈라디아 교회 백성들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더 이상 종살이하고 노예 생활하는 자가 아니라 천국의 상속자 되는 법적 지위를 얻었으며 아들의 영이 부어진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함을 얻는 출애굽한 백성들임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너희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되는 출애굽한 백성임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다시 율법으로, 천박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니까 사도 바울의 속이 터지기 일보직전인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앞으로 쫙 나아가면 되는데 오히려 뒤돌아 가려 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에도 여전히 마음이 애굽으로 향하며 애굽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이 과거 초등학문과 율법을 그리워하며 결박되려 하는 겁니다. 율법 아래 내가 무언가을 이루는 것을 통하여 구원의 자격과 조건을 얻으려는 옛 모습으로 돌아가 율법과 할례에 종 노릇하며 옛날 너희가 섬기던 이방신과 우상에게 다시 종노릇 하려 하는 겁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구원받은 이후에도 다시 애굽을 그리하며 다시 율법주의를 그리워하며 돌아가려 한다는 겁니다.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는 행위를 통해 아브라함 자손이 되려고 하고, 유대교의 안식일과 절기들을 지킴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려고 하는 겁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돼야 된다는 명분 아래 내가 무언가를 해서 구원을 얻겠다는 이 율법과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 결박되려 하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라… 순전한 십자가 복음만을 전하며 교회를 위해 박해를 견디며 살아온 사도 바울의 그 수고가 헛될 두렵다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십자가에서 주신 그 놀라운 복음의 능력과 복음의 자유함이 헛되어 질까 두렵다는 겁니다.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안타깝게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자유로운 인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로 돌아가려는 이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사도 바울의 탄식이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담기기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홍해를 건너 출애굽한 백성임을 분명히 믿으신다면 더 이상 죄와 사망과 세상의 종살이하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홍해를 건너 출애굽한 백성, 그리스도 안에서 결박이 풀어지고 자유를 누리는 백성이 되었다면 다시 되돌아가지 마십시오. 다시 애굽을 그리워하지 말고 애굽을 향한 나의 모든 마음들을 잘라내십시오.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뒤돌아 서지 말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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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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