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45장 전체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우주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선언하시며 그 하나님의 주권을 순종하고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어제 1-7절 말씀은 하나님을 모르는 페르시아 왕인 바사왕 고레스에게 기름 부으심으로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대해서 증언했고 오늘 말씀인 8-13절은 토기장이와 토기의 비유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충돌하고 부딪는 것을 얼마나 하나님이 심각하게 생각하는가를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바벨론이라는 강대국에 의해 멸망 당했습니다. 그들의 멸망은 겉으로 봐서는 군사력이 약했고 강대국 사이에 정치적으로 줄을 제대로 서지 못한 것을 이유와 원인으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들이 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에게 죄짓고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망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고 회복하시는 방법도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하심을 통해 회복하시고 세우시는 방법도 우리가 상상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방법, 전혀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하고 정의하는 옳음이 있고 정의가 있습니다. 내가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의와 선과 공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의와 불의, 선과 악이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선과 의를 행하셔서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게 선이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게 의라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생각하고 정의하는 선과 공의를 바라보며 그건 공의가 아니고 그것은 선이 아니라고 하나님과 충돌하고 부딪히는 겁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늘 상처받았다 그러는 거죠. 왜 하나님은 내 기준으로 내가 생각하는 공의와 선과 옳음을 행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에….그런 질문에 대한 본질적인 불순종이 뭐냐면 그 선과 악, 의와 불의를 누가 판단하겠다는 겁니까? 내가 판단하겠다는 겁니다. 옳고 그름을 내가 판단하겠다는 것 자체가 불순종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에 대해 거부반응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내 경험과 생각으로 만들어진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옳음, 선, 공의에 딱 갇혀 있는 겁니다. 그걸 벗어나거나 넘어서면 다 틀렸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도 내 경험과 생각 안에 들어오셔야 하고, 하나님의 선과 정의, 옳음 또한 내 경험과 생각 안에서만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하고 충돌하고 부딪히는 겁니다. 우리 믿음이 흔들리고 난파하고 신앙에서 계속 이탈하는 자들의 특징은 늘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에 대해서 늘 충돌하고 부딪히는 자들입니다. 내 경험과 생각 안에 들어오는 것만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라는 겁니까?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같이 미물이라는 거예요. 정말 미천하고 작은 존재라는 것이죠. 그런 우리가 토기장이 조물주 하나님에게 충돌하고 부딪히고 다투는 자가 되면 뭐라고요? 9절 말씀을 보면 화 있을 진저….저주를 부르는 인생이 된다는 겁니다. 조물주이자 창조주인 하나님께 다투고 부딪히고 충돌하는 질그릇 조각은 망하는 길로 질주하는 인생이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 왜 내가 생각하고 내가 정의하는 옳음을 안 행하시고 공의를 행하지 않으며 왜 하나님 내 기준에 맞게 일하지 않으세요?...라고 말하며 충돌하고 부딪히면 화를 부르는 인생, 저주를 부르는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런 인생은 자기를 낳아준 부모 엄마 아빠에게 뭐라 그러는 것과 똑같다는 겁니까? 나를 왜 낳았냐는 겁니다. 왜 나를 태어나게 해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이렇게 부모에게 충돌하는 자들이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자, 저주를 부르는 인생인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거기서 조물주인 토기장이 하나님과 충돌하고 부딪히고 내 경험과 생각에 갇혀 내 나름대로 정의한 공의를 가지고 하나님과 화내고 싸우면 화를 부르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맨날 나만 쳐다보고 있기에 내가 힘이 없으면 안 되는 줄 알고 내가 힘이 있으면 되는 줄 알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다 그런 비슷한 고백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힘이 있어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고요, 내가 힘이 없어도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내 힘과 능력이 일이 되고 안되고의 결정적 요소가 아님을 경험할 때가 너무 많은 겁니다. 내 힘과 능력의 유무가 일이 되게 하는 요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 그 주권적인 역사가 일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건 내 기준과 생각으로 정의된 옮음, 선과 공의에 대한 정의를 내려 놓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믿으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언제나 선이고 공의임을 믿으며 하나님의 권위 아래 엎드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내가 판단하고 내 기준으로 옳음과 선과 공의를 행하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불순종이라는 겁니다. 내 머리와 내 생각과 내 기준과 내가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날지 담기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언제나 옳으심을 인정하며 고백으로 엎드리는 겁니다. 미물인 나의 머리에 이해가 안 되고 동의가 안 돼도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내 머리에 담기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공의, 선, 옳음이 있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엎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정의에 담기지 않을 지라도, 심지어 충돌할 지라도, 하나님의 손안에 모든 공의와 선하심과 옳음이 있음을 믿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과 옳으심이 있다는 것을 내가 믿음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피조물의 자세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중심이 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판단자가 되어 내가 선과 악을 옳고 그름을, 선과 악을, 공의와 불의를 판단하는 자가 되지 않는 거예요. 그 판단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하나님 앞에 내가 엎드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게 믿음입니다. 조물주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을 인정하는 데서 믿음이 시작되는 거예요. 내 경험과 생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인정하는 삶입니다. 설명되지 않고 내 이해를 넘어서는 일들을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는 무엇을 고백하게 됩니까? 내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가 경험과 생각으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하시기에 옳고 하나님이 하시기에 선이고 공의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분명함 믿음이 있을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오늘도 일하시고 역사하심을 분명히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것들은 우리 머리에는 담기지 않는 일들인데, 내 시선 밖에서도 내 생각 밖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피조물로서 우리는 질그릇 조각 중 하나일 뿐, 조물주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와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는 영적 질서와 우선순위임을 잊지 마십시오. 내 경험과 생각에 담기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과 충돌하고 부딪히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함에 엎드리며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에 조율되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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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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