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천국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거룩하고 구별된 삶에 대한 실천적인 권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첫번째는 기뻐하는 삶, 두번째는 관용하는 삶입니다. 두 번이나 기뻐하라는 말씀을 강조하면서 신앙생활의 본질은 기쁨임을 강조합니다. 종교나 율법의 행위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과 자발성, 열망이 이끄는 신앙 생활, 복음으로 변화한 속사람이 진심으로 기뻐해서 그리스도에게 나아옴이 우리들의 본질적인 신앙생활의 동력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 생활은 항상 자발성을 동력으로 내 마음이 주님을 구하고 열망하며 기대하는 가운데 하늘에서 부어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항상 기뻐하고 기쁨 충만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뻐하긴 기뻐하는 데 그 기쁨이 지속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인해 기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잠깐 반짝하다 사라지는 기쁨들을 찾아 헤메기에 하루이틀 기뻐하지 결코 지속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고갈 되게 되는 것입니다. 잠깐 기뻐하고 하루이틀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오늘 말씀에서 강조하는 것은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눈에 보이는 겉에 환경의 변화나 사람들을 통하여 잠시/반짝 기쁨을 누리고 삽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성도들의 기쁨이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겁니다.내가 주 안에서 기뻐하게 될 때 누리는 놀라운 신비는 겉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이 나를 기뻐하게 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기뻐하는 겁니다. 겉으로 봐서는 기뻐할 게 없는데 기뻐하는 것이죠. 사도 바울과 같이 억울하게 옥에 갇혔어도 기뻐할 수 있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반짝하고 사라지는 기쁨, 고갈되는 가짜 기쁨, 사람들을 통한 기쁨들을 넘어서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천국 백성으로서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을 라이프스타일로 사는 삶의 비결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기쁨은 능력, 놀라운 영적 능력인 것입니다. 기쁨은 성도인 우리에게 영적인 능력으로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하는 겁니다. 외적인 기쁨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솟아나오는 기쁨,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누리는 삶, 그럴 때 하늘 문이 열리며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나 혼자 기뻐하는 기쁨이 아니라 하늘에서 예수님도 함께 기뻐하시며 예수님 기쁨 내 기쁨 되는 그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 주 안에서 기쁨 누림으로 마음에 풍랑이 잠잠해지는 기쁨을 실체로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어 주시는 기쁨이 내 인생의 풍랑을, 내 마음의 풍랑을 덮어 버리는 겁니다. 예수님이 안에 계시기 때문에….그래서 진짜 기쁨이란 항상 내면적이고 주님 안에서 찾는 기쁨 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며, 예수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며,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함께 기뻐할 때 그 기쁨이 본질적으로 내 삶의 기쁨을 지속시키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주 안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 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관용이라는 말은 넉넉한 마음, 마음이 넉넉하고 관대한 것입니다. 하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마음이 메마르지 않고, 마음이 쪼그라 들지 않고 마음이 넉넉한 삶, 관대한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도전은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만 넉넉한 마음으로 관용 하는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내 주변의 친한 사람 나랑 잘 아는 사람, 몇몇 사람들에게 넉넉하고 넉넉한 마음을 베푸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에게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관용 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실천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넉넉하게 마음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친한 사람이나 특정한 사람에게 관용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의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살도록 권면하는 사도바울의 권면은 그런 의미에서 초자연적 삶이자 기적의 삶입니다. 오늘 말씀은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관용의 삶을 “알게 하라”고 권면하는데, 이 말씀이 수동태 명령형으로 쓰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넉넉한 마음의 가졌다고 스스로 광고하는 게 아니라, 내가 부르는 호칭 대신 내 넉넉한 마음의 삶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알려져, 그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찬 이란 말도 동일한 것이죠. 내가 크리스찬이라고 성도라고 스스로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크리스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스스로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부어지는 힘과 능력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넉넉한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 굳게 서면 하늘의 기쁨이 내게 부어져 덮이기에 내 마음이 넉넉해 지고 풍성해지는 것이고, 그 주님이 주시는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게 되는 것이죠.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의 풍랑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주 안에서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붙들며 풍랑 가운데 잠을 잘 수 있는 놀라운 비결, 그것이 바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영적인 능력을 가진 천국 백성의 삶임을 잊지 마십시오. 항상 기뻐하는 삶도, 모든 사람들에게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삶도 다 영적 능력으로서 기쁨이자 영적 능력으로서의 관대함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 힘을 넘어서는 기쁨이고 내 힘을 넘어서는 관대함입니다. 우리의 본성으로는 할 수 없는 항상 기뻐하는 삶, 우리의 본성으로는 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하는 삶,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한 기쁨이고 관용입니다. 내 이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며 넉넉한 마음으로 그를 타자로 생각하지 않고 나와 관계없는 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으며 그를 향하여 넉넉한 마음을 품는 이 기적의 삶이 저와 여러분들의 거룩하고 구별된 삶일 줄 믿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던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그 기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 기쁨이 내 인생의 풍랑을, 내 마음의 풍랑을 다 덮어버리는 이 기적을 현재형으로 경험하기를 사모하고 기대하며, 하늘을 향해 은혜를 간구하며,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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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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