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잿더미 위에 있는 이스라엘 성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주시는데, 하나님이 누구신가 대한 고백과 계시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하나님을 아는 것은 단순히 저 멀리 계신 초월적 절대자가 누군가에 대한 개념적인 정의를 아는 게 아니라 그 저 멀리 계신 거 같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를 고백하게 하는 것이죠. 내 삶을 통과하며 드리는 고백,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어떤 하나님인가를 고백할 때, 나에게 그 하나님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나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 증언되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심, 하나님이 나를 구원/구속하심,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심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이 너를 만드시고 지으셨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 하면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 만드신 분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존재, 만들어진 존재라는 겁니다. 나는 어쩌다가 우연히 이 세상에 던져진 게 아니라 나를 만드신 분을 통해 지음 받아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자 나를 만드신 창조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죠
두 번째로 하나님이 너를 구원/구속하였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구속이란 말은 경찰에 소환되어 잡혀간다는 구속이 아니라, 노예를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값을 치르고 그 노예를 사는 것이 구속인 것과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이 어떻게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신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죽으심으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자유케 하신 게 바로 우리를 구속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죄 값을 다 치르시고 사셨다는 고백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는 선언입니다. 내가 너를 calling… 지적하여 이름을 호명한 겁니다. 성경에 많은 이야기들은 다 사람들을 하나님이 먼저 호명, 부르시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먼저 부르고 찾아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그를 찾아가 부르시는 이야기들이 구약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나님이 이삭을 부르시고 하나님이 야곱과 요셉을 부르시고, 하나님이 모세와 여호수아를 부르시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다는 것이죠. 그 하나님의 호명, 지명하려 부르심에 응답하며 나아가는 게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를 구속하시고 지명하여 부르셨는가? 오늘 우리가 함께 부른 찬양, 아 하나님의 은혜로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이게 찬양 가사 아니겠습니까? 왜 나 같은 사람을 구속해 주셨는지? 왜 나를 만드시고 나를 지명하여 부르셨는지? 나를 고민하고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면 답이 없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이유를 하나님 중심에서 선명해 답해주고 계신데 바로 “너는 내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는 그 선언 외에는 이유도 없고 답이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 선언하시며 나를 창조하시고 만드신 겁니다.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없는 겁니다. 나에게는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만드셨으니 나는 하나님 거라는 선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면 하나님하고 잘 붙어 있어야 되고 하나님 은혜 가운데 있어야 되는데 또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여 떠나고 도망가고 멸망의 길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배신하고 무관하게 살았으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길로 갔으면 그냥 놔두고 끊어 버려야죠. 그런 인간을 뭘 사랑한다고 뭘 하실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뭡니까? 끊임없이 도망가고 배신하고 배반하는 인간을 끊임없이 찾아가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구속해서 값 주고 사셔서 다시 데리고 오시고 우리를 건져주시는 거예요. 거기엔 아무런 조건과 자격도, 아무런 이유가 없죠.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이유는 단 한가지 너는 내 거…라는 하나님의 선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창녀 고멜을 데려와서 부인으로 삼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창녀인 고멜은 데리고 오면 도망가고 데리고 오면 도망가는 거예요. 그런데 계속 도망간 여인을 데리고 오면서 그 결혼 생활을 유지하라고 명하신 거죠. 그 말도 안 되는 결혼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은 끊임없이 도망가는 우리 인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사랑 받을만 해서가 아니라, 자격과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너를 지명하여 불렀던 그 하나님 거라는 선언 밖에 없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탕자, 그 말도 안 되는 아들을 아버지는 끊임없이 기다리고 문밖에서 있습니다. 그 탕자는 사랑받을 이유도 조건도 자격도 하나도 없는데 그 아들을 끝까지 기다리며 돌아오는 아들을 품어 주시는 그 사랑의 배경은 너는 내 거라는 하나님의 선택밖에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너는 내 거라는 지명하여 부르심 밖에 없는 것이죠. 그게 바로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요한복음 13장의 선언인 겁니다. 내가 사랑받을 만하고 내가 잘생기고 내가 잘나고 이쁘고 뭘 할 줄 알고 내가 있던 자격과 공로가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작정하신 겁니다. 그렇기에 내가 사랑받을 만하고 구원받을 만하고 구속 받을 만하고 하나님 안에 있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 은혜를 잃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는 늘 어깨에 힘을 빼고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하며 바짝 엎드리며 저는 주님 은혜 아니면 죽는 존재입니다…고백하며 그의 은혜를 붙드는 것 밖에 없는 겁니다. 지금 이 시간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선포하시는 거예요 너는 내 거야… 그래서 내가 너를 만들었고 그래서 내가 너를 값 주고 사서 구속했고, 그래서 너를 지명하여 부르는 거야… 거기에는 다른 이유도 조건도 자격도 하나도 없어… 이것을 분명히 믿는 것이 십자가 복음을 붙드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신가 대한 지식은 그냥 초월적 절대자에 대한 개념에 머물면 안되고 너는 내 것이라고 선포하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 매어 우리의 고백으로 터져 나오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지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너는 내 것이라 부르시며 나를 만드신 인생이 바로 나구나…나를 내 것이라 부르시며 나는 그 하나님에게 끊임없이 도망가고 떠나고 죄의 길로 방어하는데 그런 나를 피값주고 사셔서 데려 오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구나… 그런 자격도 조건도 없는 나를 호명하여 부르시며 나를 끝까지 사랑한다고 작정하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구나….그 하나님을 분명히 믿었을 때 2절의 고백이 우리에게 고백으로 나오는 거예요. 네가 물 가운데 지나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불 가운데를 지나갈 때 타지 않도록 지키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붙드는 겁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사노라면 깨지고 아픈 세상을 살면 물 가운데 지나가고 불 가운데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근데 그 때에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주님을 바라보는 삶이 살아 있는 신앙 생활인 겁니다. 이 하나님을 분명히 믿는 것이 내 삶을 통과한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고백이자 저와 여러분들에게 소망이고 다시 일어설 힘이 될 줄 믿습니다. 말씀으로 계시된 그 하나님이 이 시간 나의 하나님 되심을 믿음으로 선명히 고백하며 너는 내 것이라 선언하시는 하나님 소유가 된 그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June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