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새벽기도 시간에 룻기를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룻기를 시작하는데 1장 처음이 아닌 가장 마지막 부분을 먼저 살피며 영적 큰 그림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룻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룻, 나오미, 보아스 세 사람의 이야기, 혹은 서정적이고 추수 때에 곡식을 줍는 여인의 모습을 쉽게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룻기를 읽을 때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그냥 읽는 경향이 있는데, 룻기가 부분적으로 가르치긴 하지만 전체 진리가 아닌 두 가지의 착각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룻기는 시어머니를 잘 모시는 효심 많은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시어머니를 남편이 사망 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는 효심 많은 룻의 이야기가 분명히 등장하고 성경이 증언하는 사랑의 고부관계,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진 시어머니 와 며느리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알고 은혜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룻기 전체의 주제가 시어머니를 잘 모시는 효심 많은 며느리 이야기로 끝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두번째로, 룻기는 보아스와 같은 유력하고 좋은 남자 만나 재혼해서 인생을 편 현숙한 여인의 이야기, 로맨스의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보아스라는 유력한 자, 좋은 남자를 만나 현숙한 여인 룻이 회복되는 모습이 등장하지만 그게 룻기 전체 주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룻기가 성경으로서 우리에게 주는 영적 지혜는 좋은 남자 만나 인생을 편 현숙한 여인의 이야기라든지,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룻기의 큰 주제는 무엇일까요? 룻기는 영적 암흑기인 사사 시대에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 다윗 계보가 시작되도록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룻과 나오미의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지금 영적 암흑기, 하나님을 떠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완전히 막장으로 가는 그 소망 없는 시대로 끝나는 것 같지만, 그런 절망의 모습 뒤에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새 역사를 준비하시며 그 사람들을 통하여 새 시대를 이미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말씀이 룻기입니다. 그래서 사사기와 룻기를 한 그림으로 보면서 이 시대가 사사기 같이 완전히 무너지고 자기 소견대로 옳은 대로 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할 수 없는 수많은 부끄러운 일을 하며 완전히 무너져 못 일어날 것 같은데 그렇게 처절하게 무너진 현장 뒤에 하나님께서는 소수의 사람들을 준비 시킴으로써 이미 다음 시대를 준비하고 새 시대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주신다는 이 룻기의 큰 그림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영적 큰 그림을 보기 위해 룻기 맨 마지막 족보 이야기를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룻기 4장 마지막은 다윗 왕의 조상에 대한 족보를 결론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족보가 베레스에서 시작되는데 베레스는 창세기 38장에 유다와 그 며느리 다말이 동침함을 통해 태어나는 아들입니다. 며느리가 변장해 시아버지 유다에 들어가는 그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창세기가 이유는,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통해 태어난 그 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태어날 다윗을 큰 그림으로 준비하셨고, 더 나아가 장차 오실 메시야의 족보를 큰 그림의 경륜으로 준비하셨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레스 이후에 족보가 내려오는데 그 유명한 보아스의 아버지가 살몬입니다. 마 1장 5절을 보면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라고 증언합니다. 즉 보아스의 아버지는 살몬, 어머니는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었던 겁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주었던 이방인의 기생, 여리고 성에서 유일하게 붉은 줄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은 가정….그러니까 보아스는 이스라엘 아버지와 이방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이중 문화 가정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유력한 보아스가 이방 여인, 그것도 전직 창녀였던 라합이었다는 것을 통해, 왜 보아스가 모압여인이었던 이방인 룻에게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이해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방인이었고 기생이었기 때문에, 자기 어머니와 처지가 비슷한 이방 여인이자 과부인 룻에게 특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아스의 특별한 배려를 개인적인 연민이라든지 어떤 끌림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이방인을 향한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다윗 왕가의 족보는 순혈 이스라엘 족속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부끄러운 다말을 사용하셨고, 이방 여인 기생 라합을 쓰셨고 그리고 보아스와 함께 모압 여인 룻을 사용하셔서, 나중에 다윗을 낳는 이 드라마틱한 역사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어둠으로 달려가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다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돌아오도록 새시대를 그렇게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에 사랑의 고부 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아스와 룻의 개인의 로맨스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여인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준비하셨고, 다윗의 조상들을 준비하시는 은혜의 말씀, 그게 룻기의 큰 영적 그림입니다. 눈에 보이는 정치 지도자가 이 세상을 이끄는 것 같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은 이 때에, 광야에 있는 세례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 암흑과 같이 어두운 시대,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 창조적 소수, 진정한 예배자와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 시대를 준비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그 역사의 경륜을 여전히 이루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깨닫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시간 나의 개인의 신앙을 넘어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나의 인생을 통하여 새 시대의 새로운 사람을 통해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데 나를 사용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이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도록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룻기를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영적 진리이며, 이 시대의 광야에서 하나님께 붙들려 보이지 않는 곳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이 은혜를 붙드시고 룻기를 말씀으로 마음에 새기는 새벽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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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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