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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여 주시고 생생한 환상의 체험을 통하여 말씀의 사람이 되고 주신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하는 자로 사명자로 예언자로 세우셨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 입에 꿀처럼 달았다고 증언합니다.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달았다는 것은 말씀 자체가 좋았고 그 말씀을 전하면 듣는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그 사람들 또한 정말 꿀송이 같이 너무 좋아해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사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이 입에 꿀처럼 달았다는 의미는 그렇게 듣기 좋았고 먹기 좋고 참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말씀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상황에서도 신실하게 그것을 이루신다는 것 때문에 꿀처럼 달았다는 겁니다. 우리 눈에 보기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거나 사람들이 정말 꿀을 먹듯이 그 말씀을 너무 좋아하며 믿음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기에 꿀처럼 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꿀처럼 단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 사람들에게는 꿀처럼 달달한 말씀을 줘서 고맙다는 환대와 믿음의 반응을 보는 대신에 박대를 당하고 외면을 당하는 겁니다. 심지어 우리가 배운 것처럼 가시로 찔림을 당하고 전갈이 와서 무는 거 같이 충돌하고 부딪친 일들이 계속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 주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계속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시면서 내면의 단단함을 가지고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듣든지 안 듣든지 말씀을 전하고 두려워할 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금방 알게 된 겁니다.
오늘 말씀은 그 꿀처럼 단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했을 때의 반응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신 말씀을 힘있게 그렇게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나 다를까 백성들이 시큰둥하고 별로 들을 마음이 없는 겁니다. 말씀을 들을 열망도 없고 말씀을 듣는 법도 모르는 그런 백성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말씀은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는 어떤 착각이 있었는가 하면, 예루살렘은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론이었습니다.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오고 나서 사람들은 두고 온 예루살렘은 늘 좋은 기억만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회개하지도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고 충돌하면서도 그 예루살렘이 언젠가는 회복이 되고 언젠간 나라가 괜찮아져서 우리를 다 포로로부터 부를 날이 있을 거라는 이런 막연한 장밋빛 생각을 가지고 오늘도 그 바벨론 포로 생활을 견디고 있은 것입니다. 에스겔과 함께 잡혀온 많은 포로는 예루살렘이 아직 함락하기 전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입니다. 그니까 바벨론 포로의 상황이 삶의 자리인데 아직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나라는 이미 기울었는데 멸망하기 일보 직전인 그때 많은 예루살렘에 그곳에서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주께 회개하고 돌아오며 주님께 정말 죄를 무릎 쓰고 주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회개하고 나온 대신에 이런 막연한 낙관론을 가지고 살았다는 겁니다. 하나님 백성이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니까 하나님이 지켜 주실 거라는 착각에 빠져 영적 자기 객관화를 완전히 잃어버린 겁니다. 이런 막연한 낙관론과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살고 있었던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정신 차리라고 찬물을 끼얹으시는 겁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입술로 전하는 말씀을 넘어 것을 그들에게 시청각 교육으로 말씀을 더 담대하게 선포하게 명하시는 겁니다. 눈에 보이게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정확하게 보여 주라고 말씀하시면서 세 가지의 징조 즉 시청각 교육을 보여 주십니다. 첫 번째 시청각 교육이 1-3절에 등장하는데 바로 하나님께서는 토판을 가지고 거기에다 예루살렘을 그리라 명하셨습니다. 그 토판의 그림을 보면 아 이거는 예루살렘 이구나…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리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 토판으로 만든 예루살렘 성읍에 사다리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흙으로 언덕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성 주변으로 사다리와 모래 언덕을 쌓으면 성벽에 비탈이 생기니까 군인들이 쉽게 그냥 성벽을 들어올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완전히 에워싸서 도망갈 곳이 없게 되고 군인들은 언덕을 올라가듯이 성벽으로 올라가니까 결국 성벽이 아무런 보호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무슨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 주시는 겁니까? 예루살렘은 곧 이렇게 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너희의 기대와 달리 완전히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지고 다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시청각 교육을 하시는 겁니다. 예루살렘이 건재하니까 우리는 괜찮고 언젠가 우리를 불러올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착각에서 깨어 나라는 겁니다. 차라리 너희가 지금 포로로 나와 있는 게 오히려 복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게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본질적 의미입니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백성들이 특히 좋아한 말씀이 아닙니다.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 시청각 교육을 바라보며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수 있느냐? 항의하고 충돌하고 부딪히는 거죠. 그것은 그들에게 꿀송이처럼 단 말씀이 아니라, 그것은 아픈 말씀이고 찢어지는 말씀이고 마음이 무너지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말씀이 말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선포하게 하심으로 말씀이 꿀처럼 달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신 겁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남유다 백성들은 여전히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다른 것을 의뢰하고 의지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제사 드리고 있으면 예배 드리고 있으면 괜찮다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이 건재하면 자신들도 괜찮을 거라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그들을 구하는 것이 아닌데 마치 예루살렘 성전이 그들을 구하는 것처럼 착각한 그들의 그 우상을 모두 깨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온전한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은 그들의 죄를 직면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 착각을 완전히 무너뜨리심으로서 지금 너희는 하나님께 당장 돌아와야 될 족속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진리이며 하나님의 숨결이자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해야 될 사명이 있기에 에스겔는 순종하며 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백성들을 향해, 그러면서도 막연한 낙관론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너희가 소망을 갖고 있는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완전히 망하게 될 것이다…이 토판과 같이 모든게 사라지게 될 것이라….외치는 그 소리를 오늘 우리 마음으로 담아 듣기 원합니다. 주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주의 길을 가지 않고 죄악을 행하며 주의 뜻을 벗어나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엄중히 지적하시는 주의 말씀 앞에 엎드리기 원합니다. 에스겔의 주의 마음을 담은 그 선포가 이 시대를 향한 주의 선포임을 잊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이 꿀처럼 달다는 진정한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듣기 좋고 먹기 좋고 받아들이기에 너무 기쁜 말씀이어서 꿀처럼 단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 분명하기에 그것이 꿀처럼 달다는 엄중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며 헛된 소망과 헛된 우상을 다 무너뜨리시는 주의 뜻 가운데 엎드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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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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