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은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축복의 말과 구체적 권면들 입니다. 성경에 가장 근접하고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여기는 초대 교회에도 외부적 핍박 외에도 내적 도전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복음을 왜곡하고 흔들려 해도, 아무리 로마 시민권이 최고 인줄 알고 힘과 권력으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깔려 있어도 여전히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면류관을 기억하며 본질에 충실히 주님 앞에 쓰임 맞는 많은 성도들이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외부에서도 어렵게 하고 안에서도 어렵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십자가 복음 그 본질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주님의 면류관이자 기쁨인 것을 잊지 말라고 권면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본질 가운데 서 있기 위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해야 될 첫 번째가 바로 “주안에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신앙에 바로 서는게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 안에서” 서는 게 중요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기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배 드리는 것도 사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분주하게 뛰어 다니기 전에 주 안에서 예배하고 주 안에서 사역 하는 게 핵심입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 서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의지하여 내가 자리를 사수하고 자리를 지키는 겁니다. 내가 제대로 주님의 군사 답게 서는 겁니다. 성도로서 우리는 성도 답게 서야 될 자리가 있습니다. 성도 답게 지켜야 될 자리가 있고 사수해야 될 자리가 있습니다. 그게 예배 자리일 수도 있고 기도의 자리일 수도 있고 섬김의 자리일 수도 있고 내 세상에서 직장에 자리일 수도 있고 엄마로써 아빠로서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교회 안에서 된 교회 밖에서건 우리가 주 안에서 바로 서는 자리가 되어야 하고 절대 그것을 사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인생에서 신앙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절대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우리가 주 안에서 자리를 지켜서 본질을 붙들고 주님 앞에 조율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권면이자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권면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를 사수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그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사명을 세우는 일임을 잊지 않으며 그 세우는 자리로 저와 여러분들이 나아가기 원합니다. 두번째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권면하는 것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겁니다. 주 안에서 바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 되는 것, 같은 마음을 품는 게 참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그 당시 빌립보 교회의 아주 유명한 여선교회 회장 들이에요. 지금도 보면 교회에는 대체로 여성도들이 많지만 특별히 초대 교회 가운데 빌립보 교회는 여성 지도자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개척 당시에도 루디아라는 여인의 회심을 통해 교회가 개척되었고, 빌립보 교회에는 여성들의 비율 뿐 아니라 교회 안에 헌신된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근데 그들이 헌신하고 열심히 있는 건 참 좋았는데 그들 가운데 하나 되지 못하는 반목이 있었습니다. 봉사와 헌신으로 열심이 뛰는 것을 좋았는데,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일을 하면서 주도권 싸움과 갈등이 있어서 이게 교회 차원에서도 큰 도전과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어지간하면 이런 얘기 안 했을 텐데 성경에 남길 정도로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이런 권면을 했겠습니까? 이 두 여인의 갈등과 반목이 교회 전체를 휘청거리게 하는 큰 일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두 여인 다 교회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헌신된 일꾼이었습니다. 너무 소중한 일꾼이었고 중요하니까 제발 마음을 맞춰서 주 안에서 서로 등 돌리지 않고 주님 보다 앞서지 말고 주님 안에서 한 마음으로 하기를 간절히 권면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갈등하고 반목하는 이 두 여인을 향하여 너희들이 주 안에서 동역자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주 안에서 동역자가 누구입니까? 주 안에서 동역자란 바로 멍에를 같이 지고 자는 자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동역자 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할 때 부담을 같이 메고, 멍에를 같이 메고 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멍에를 메면 불편합니다. 멍에를 매면 자유롭지 않아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사명을 위해 그 명예를 같이 매는 겁니다. 멍에와 부담을 같이 메고 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사명 가운데 선명하게 쓰임 받기 위해 목회자가 하는 것 중에 중요한 사명이 평신도 동역자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함께 멍에를 지고, 함께 부담을 지고, 같이 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 마음과 한 방향이 되어야 멍에를 함께 맨 동역자들을 통해 교회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 열심히 하다가 교회 안에서 등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일한다고 하다가 갈등하고 반목 하면서 주님께 영광 가리는 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이 좀 천천히 가더라도 일이 좀 더디게 가더라도 서로 등 돌리지 않고 마음을 맞춰 하나 되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잘 이끌림을 받고 나아가는 삶, 주님께서 주도하시고 이끄심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대로 서며 그 자리를 지켜 내는 게 바로 그분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복음적 질서로 살아가는 것은 절대 자연적으로 익숙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능력을 하늘로부터 공급 받아야 복음적 질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주 안에서 녹아 지지 아니하면 주님이 중심이 되셔서 일하지 아니하면 내가 주님보다 앞서 가게 되고 착각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 마음을 품지 않고 갈등 구조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함께 멍에를 지는 자, 함께 부담감을 지는 자,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함께 관심과 기도를 집중하는 자, 그 동역자들이 많이 세워져 한 마음과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교회가 왕성히 일어날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주 안에서 함께 부담과 멍에를 지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서명이 쓰임 받는 데 함께 헌신 하시며 복음을 위하여 뛰며 복음을 위하여 함께 힘쓰는 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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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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