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하나님 말씀이 소망이 되는 이유의 본질인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광야에 새로운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심을, 하나님은 영원한 말씀을 지키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이심을 배웠습니다. 가변적, 찰라적, 조건적인 이 세상 사람들의 말이나 약속, 내 생각이나 감정에 인생을 걸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불변하고 영원하신 하나님 말씀 안에 내 인생의 기초를 두며, 그 말씀을 이루시며 지키시는 하나님 약속을 붙들고 그 안에서 소망 가운데 살아야 됩니다. 계속해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속성 두 가지를 더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입니다. 왜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모든 것이 무너진 잿더미 위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소망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은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비교대상이 안되는 위대하고 강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구구 절절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게 비교대상 불가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떻다는 겁니까? 비교대상이 되지 못하는 한방울에 물방울 같고 작은 먼지 같다는 겁니다. 이 지구에서 대단하다는 수많은 것들이 사실 우주에서 보면 얼마나 작은 겁니까? 아무리 대단한 것도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먼지만도 못하다는 것을 이제 과학의 발전을 통해 다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구라는 전체도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우리는 우주적 관점에서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구 안에서 나라들이 크고 대단하다 내가 이룬 게 크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건 다 물 한 방울 같고 먼지 같은 겁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영어로는 comfort라고 하는데 com (together)+fort (forte)입니다. 음악 악보에 강하게 할 때 포르테라 하지 않습니까? 그 강하신 (forte) 하나님이 나와 함께 (com) 하시는 게 위로하심 (comfort)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저 내 말 잘 들어 주시고 눈물 닦아 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것에 멈추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그의 강하심이 나와 함께하는 위로라는 겁니다. 그게 세상의 위로와 하나님의 위로가 다른 것이며 하나님의 위로만이 나에게 참 소망이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내 눈높이에 내려오셔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공감하기고 이해하시며, 내 눈물을 분명히 닦아 주십니다. 동시에 그의 강함, 포르테가 나와 함께하심을 믿는 게 바로 주님의 위로하심이 나에게 소망 됨을 분명히 붙드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진짜 알게 되면 그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하심이 우리에게 그렇게 놀라운 힘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을 때, 하나님의 포르테가 나와 함께하심이 하늘의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전지전능, 위대하고 강하신 그 하나님의 속성에 근거한 위로를 구하며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상태 안 좋은 모습으로 오는 건 너무 좋은 일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죄인 된 모습 그대로, 깨진 그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는 건 너무 귀합니다. 그런데 그 안 좋았던 상태 그대로 돌아가면 안되는 겁니다. 올 때는 상태가 안 좋아져서 왔지만 하나님을 대면 한 후 돌아 갈 때는 좋은 모습으로 갈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위대하고 강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위로하심의 역사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우리를 양떼와 같이 먹이시는 목자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입히시고 먹이시는 목자라는 분명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고 강하셔서 모든 것을 무너뜨리며 우리에게 강함을 주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우리를 먹이시고 그 팔로 꼭 안아 주시고 품으시는 선한 목자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잿더미 위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주신 위로 하심은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그 팔로 꼭 안아 주심을 분명히 믿음으로부터 소망을 얻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먹이시고 입히시고 그의 팔로 품으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은 품으신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성도인 저와 여러분들은 내치지 않고 끝까지 품고 가신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인 열두 제자를 향한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 즉 끝까지 너희는 세상에 있는 나의 사람으로 내가 품고 간다… 그게 예수님이 작정하신 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아무 공로 없고 자격 없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품으시는데 끝까지 품으시기로 작정하셨기에 주님의 위로하심이 참 소망되는 겁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며, 하나님이 그 팔로 나를 꼭 품으시며 갈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할 때 참 소망이 있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나를 품으시며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에게 참 소망 됨을 믿고 붙들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잿더미 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결론이 뭡니까? 하나님이 누군지를 선명히 바라보라는 겁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은 “보라”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소망이 사라진 잿더미 위에서 다시 일어서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붙들고 하나님을 앙망하며 바라보는 것 뿐입니다. 내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지 않고 주목하지 않고 살았기에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인 줄 알았고 눈에 보이는 가치가 전부인 줄 알고 살아서 이스라엘은 망했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망한 그 잿더미 위에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체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주목하며 보는 것만이 다시 일어서는 길이고 소망으로 일어서는 길임을 선포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이 놀라운 역사들이 나에게 실제로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사람들의 말과 약속에만 귀 기울이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새로운 길을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포르테가 나와 함께하심을 누릴 수 없으며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품으심을 믿고 소망으로 일어설 수 없는 겁니다. 상황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바라보거나 나를 바라볼 때는 소망이 없는 겁니다. 참 소망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이 어떠함에 주목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떠하심, 즉 하나님의 속성에 내 인생을 주목하며 살았을 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나에게 진정한 하늘의 소망이 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신앙생활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목하는 일에서 시작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시작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 하나님의 속 상하면 묵상할수록 그 하나님의 속성이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내 삶의 실체로 흐르게 되면서, 거기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기도와 예배의 모든 본질은 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고 십자가를 먼저 바라보는 거룩한 습관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시선을 먼저 고정하고 하나님의 하신 일들에 먼저 주목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새로운 길을 내시고 하나님은 영원한 말씀을 지키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위대하고 강하신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끝까지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하고 강하심에 비교하면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물 한방울이나 먼지로 볼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마시고, 모든 것보다 강하시고 모든 것보다 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음으로 그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나와 함께하는 역사를 분명히 믿고 나아가십시오. 바라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그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하심이 나에게 참 소망이 됨을 온 몸으로 경험하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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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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