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0장 말씀은 나라가 망한 잿더미 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선포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포 말씀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소망인 이유가 무엇인가를 오늘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처한 상황과 환경이 어떠함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하늘의 소망이 우리에게 임함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나라가 멸망한 잿더미 위에서 바라보며 붙들 때 바로 초경험적인 하늘의 위로하심이, 하나님의 위로가 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선명히 증언되는 두가지의 하나님의 속성, 내일 말씀을 통해 선명히 증언 되는 또 다른 두 가지 하나님의 속성을 마음에 새기며 내가 경험하고 직면한 상황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우리에게도 현재형으로 임하기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첫 번째 하나님의 속성은 바로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 분이시라는 선언입니다. 나라 멸망이라는 잿더미 위에서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소망인 이유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길을 내는 분이라는 분명한 고백에 있습니다. 그 당시 나라 멸망을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삶에 고난과 역경이 어려운 이유는 갈길 몰라 방황하는 길이 꽉 막힌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가보시면 알지만 사막은 내가 걸어온 길도 한 30분만 지나면 그 길이 다 없어집니다. 모래 바람이 계속 불기 때문에 내가 걸어온 길조차도 다 사라지는 것이 사막 한 가운데 광야와 같은 우리 인생길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디서부터 왔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지를 알 수 없는 것이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실존이자 삶의 자리입니다. 내 스스로는 길을 낼 수 없는 지경에 꽉 막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내시고 사막의 대로를 내시는 분이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것이 없는 분이시기에 새로운 길을 만드시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시고, 새로운 일을 행하심을 분명히 믿는 고백만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무너진 잿더미 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내는 분이라는 것을 선명히 믿는 것만이 바로 여호와의 위로가 나에게 임하는 비결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내시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실 때 먼저 길을 내시기 전 평탄 작업을 먼저 하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길을 내시기 전 하나님은 먼저 길을 내실 준비를 하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는 건 그 길을 내시 전에 하나님이 평탄 작업을 하시도록 나를 드리는 것, 이게 바로 내 믿음의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길도 하나님이 내시고 평탄 작업도 하나님이 하시는데 그 평탄 작업을 위해 내 마음을 드리며 믿음을 반응하는 것은 오늘 말씀에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한다…말씀합니다. 새로운 길을 낼 때 보면 먼저 길을 평탄하게 하는데 그 평탄 작업을 오늘 말씀에는 골짜기마다 돋우고, 산과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어 험한 곳이 평지가 되게 하신다 증언합니다. 새로운 길 내기 전에 높은 곳은 낮게, 고르지 않은 곳은 고르게 만드는 평탄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우리 인생에 특별히 고난과 역경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밑그림 작업은 대부분이 평탄화 작업입니다. 고르지 않고 딱딱해진 나의 마음을 평탄화 하는 작업은 뭡니까? 고운 가루와 같이 고르게 만드시는 겁니다. 마음이 높아진 교만이라는 산이나 언덕같이 높아진 곳은 깎아 내리셔서 평탄하게 하시는 겁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내 삶에 역사하고 일하시는 것을 막아 버리기 때문에,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길을 낼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로 시작하지만 교만이 시작되면 하나님의 일이 내 일이 되고 사람의 일로 땅의 일로 끝나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하나님의 일로 시작하고 하늘의 일로 시작하지만 교만이 들어가면 그것이 그렇게 무너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경은 반복적으로 경고하십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길을 내시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높아진 마음을 다 평탄하게 다 깎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교만이 처리되어 낮아지고 고르게 되면, 그 위에 하나님의 새로운 길이, 놀라운 길이 열리는 겁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낮추시고 하나님이 고르게 하시는 평탄화 작업을 거절하며 새로운 길이 열리질 않는 겁니다. 그렇게 평탄화 작업을 먼저 하신 후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광야 같은 우리 인생에 새로운 길을 내시고 새로운 가능성을 내시는 분임을 분명히 믿고 붙드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놀라운 신앙 고백입니다. 두번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영원한 말씀을 약속대로 이루시는 분이라는 데 있습니다. 8절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영원한 말씀인 하나님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말씀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고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옛 약속인 구약과 새 약속인 신약이라 하지 않습니까? 말씀으로 주신 약속, 한번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결코 반드시 이루신다는 겁니다. 반대로 사람들의 말이나 사람들의 약속은 다 조건적이고 가변적이고 찰라적인 풀과 같아서 믿을 게 못 됩니다. 사람들의 말과 약속이 풀과 같아서 곧 마르고 시든다는 겁니다. 좀 더 넓게는 우리 인생에 잘되는 거 번성하고 성공하는 것, 다 조금 있다가 마르고 시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외에 하나님 약속 외에 이 땅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과 약속들은 다 시들고 마를 것들이기에 신뢰하면 안되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신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 인생을 사람들에게 두어서도 안되고, 세상에 두어서도 안되고, 내 감정이나 생각에 두어서도 안되는 겁니다. 가변적, 조건적, 찰라적인 것에 인생을 두고 목숨 걸면 망한다는 겁니다. 이런 가변적, 조건적, 찰라적인 사람들의 말과 약속, 세상의 말과 약속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만 소망을 두는 이유이고, 내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 비결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잿더미 위에서도 왜 하나님의 위로가 나에게 소망이 됩니까? 내 상황과 환경의 어떠함이 아닌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붙들 때 하늘의 일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인지 아니면 사람의 일인지, 하늘의 일인지 땅의 일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처음 보는 거로는 알 수 없고요. 시간이 좀 지나면 대부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 일이 한결같이 끝까지 간다 그러면 그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그건 하늘의 일이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한번 반짝했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까 다 변하고 무너진다면 그것은 사람의 일이고 땅에 일이라는 겁니다. 시간이 흘러 보면 아 이건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구나… 이거는 하늘의 일이었구나…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새로운 길을 내시고 놀라운 가능성을 내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주신 약속과 말씀을 끝까지 지키시며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한결같이 그분에게 공급받으며 한결같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고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겁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광야 같은 우리 인생에 새로운 길 놀라운 길을 만드시기 위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길이 뚫리도록 고르게 하시고 낮추시는 평탄 작업들을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며 그 하나님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하나님이 손길을 축복으로 알고 믿음으로 반응하기 원합니다. 새로운 길을 만드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에 내 마음을 열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만드시는 새로운 길과 놀라운 역사가 내 삶에 놀랍게 뚫어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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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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