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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전쟁이 다 끝나고 나라는 망하고 예루살렘은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게 무너진 후에 남유다 백성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결과를 엄중히 지적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이방인의 목소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이방인의 입술을 통하여 엄중히 지적하고 동시에 예레미야의 그들과 반대되는 믿음의 선택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방향이 결정되고 가치관이 드러나며 그걸 통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삶의 기준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장수이자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이방인인데 그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채찍과 같이 그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엄중히 지적하십니다. 첫 번째, 남유다가 망하고 무너지고 심판 당하는 이 모든 것의 실체적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말씀을 그대로 행하시며 재난을 선포하셨다는 겁니다. 표면적으로는 바벨론 군대에 남유다가 망하여 무너진 거 같지만 그건 겉보기의 상황인 거고 그 모든 것의 실체적인 주체가 누구라는 겁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이란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이유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자들인데, 남유다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하나님 말씀의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치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군사력과 경제력이 전부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모든 일을 이루시는 실제적인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못하는 잘못된 결정으로 망하고 무너지게 됐다는 겁니다.
두 번째,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했다는 선언입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망하게 된 이유가 근본적으로 무엇이라는 겁니까? 군사력이 부족하고 정치적 힘이 딸려서가 아니라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망한 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듣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결과라는 겁니다. 그들의 잘못된 선택, 계속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죄를 행하는 그 잘못된 선택이 결국 너희에게 심판과 멸망을 가져오게 되었음을 엄중히 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심판을 이루신 것이며 심판과 멸망은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결과였음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이방인 사령관을 통하여 남유다 멸망의 본질적인 문제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바벨론의 사령관을 통해서 남유다의 망한 이유를 이렇게 정확하게 알게 하시는 겁니다. 이방인 사령관을 통한 이런 하나님의 채찍과 같은 엄중한 평가를 듣는 예레미야는 마음이 너무 아팠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 두가지가 본인이 여러 번 반복하여, 끊임없이 전했던 말씀의 핵심인데 결국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는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과 불신앙의 열매를 맺으며 이렇게 처절히 망한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잘못된 선택과 정반대로 예레미야의 믿음의 선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유다가 망해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고 있을 때 선지자 예레미야도 사슬로 결박되어 함께 끌려갈 때에 바벨론 사령관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풀어줍니다. 석방하면서 예레미야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데 첫 번째 선택지는 바벨론으로 같이 가는 선택으로, 바벨론의 환대와 선대가 기다리고 있는 길입니다. 바벨론은 그 당시에 제일 잘 나가는 나라인데 그 나라 왕이 환대와 선대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예레미야는 그 인생의 모든 것이 보장된 인생, 예비된 꽃길을 갈 수 있는 선택입니다. 두번째 선택지는 모든 것이 불타고 망한 여기 예루살렘에 남는 길입니다. 바벨론으로 오는 게 싫으면 여기 남아 있으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바벨론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벨론에 가는 것을 선택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고생 덜하는 꽃길이고 그 인생이 보장된 길이니까…당연히 바벨론의 길을 가는 것이 소위 말하는 나의 인생에 있어서 풀리는 인생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바벨론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문다고 여기 남아 있는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좋아하겠습니까? 단순히 여기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게 경제적으로 상황적으로 힘들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남아 있는 남유다 백성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네가 말한 대로 되니까 기분 좋냐? 그러면서 남유다가 그렇게 멸망한 것을 예레미야가 입바른 소리해서 그런 거라고 그를 얼마나 아니꼬운 눈으로 보겠습니까? 예레미야를 어떤 프레임을 씌웠냐 하면 애국에 반대하는 매국의 프레임을 씌었죠. 저 매국노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잘못 전해서 우리가 이렇게 망했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예레미야를 더 핍박하고 힘들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기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는 그냥 단순히 경제적으로 상황적으로 힘든 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겪고 왔던 고난과 어려움을 계속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처지에 자기를 몰아가는 선택일 수 있는 겁니다. 놀랍게도 예레미야는 이곳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바벨론에 가면 왕이 선대한다고 약속했는데, 그 보장된 꽃길, 인생이 풀리는 길을 내려놓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에 함께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내 인생 하나를 생각하면 편하고 좋은 길, 꽃길을 선택하는게 당연한데,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길을 선택하는 예레미야를 보게 되는 것이죠. 상황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사명으로 결정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고 핍박하고 박해할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이 있기에 백성과 함께하며 그곳에서 머무는 결정을 하는 예레미야, 그것이 남유다 백성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레미야의 영적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성도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결정을 하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내 결정은 나의 인생의 방향성과 길을 결정하며 내 인생의 우선순위와 가치관을 드러냅니다. 안타깝게 남유다와 예루살렘은 잘못된 선택의 연속으로 하나님께 범죄하며 불순종 하며 심판과 멸망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모든 것이 보장된 꽃길 대신 사명이 이끄는 길에 남아 있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며 어떤 결정을 하며 어떤 길로 나아가기를 사모하는가를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결정을 하며 상황이 이끄는 결정이 아닌 사명이 이끄는 결정으로 묵묵히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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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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