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율법 아래 머무는 사람들과 복음 아래 있는 사람들을 이스마엘과 이삭의 대조를 통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십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인데 계속해서 율법 아래 남으려 하고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주신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 예수 안에서 참자유를 누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 천국의 상속자로 살아야 되는데 갈라디아 성도들은 안타깝게도 이스마엘과 같이 율법의 종과 같이 사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함 가운데 살아가야 되는데 그들이 약속의 자녀로 살지 못하고 율법 아래 여전히 결박되어 살아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너희의 변화된 신분과 존재가 무엇인지를 잊지 말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씀이 오늘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임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죠. 약속의 자녀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완성하신 언약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참 자유를 주신 약속의 아들 이삭과 같은 자녀라는 겁니다. 그러면 약속의 자녀와 반대의 말은 뭐겠습니까? 이스마엘과 같이 육체를 따라 난 자녀도 되겠고, 율법 아래 종노릇 하는 자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이스마엘 같이 율법의 종과 같이 사는 것이죠.
그러면 갈라디아 성도들은 왜 자꾸 이스마엘과 같은 율법의 종노릇하는 과거로 회귀하며, 율법 아래 머물려 그러는가? 그 이유를 아주 기막히게 재밌는 묘사로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스마엘이 이삭을 학대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창세기에서 보면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인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을 학대하고 놀리고 왕따 시키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부분을 육체를 따라 난 자인 이스마엘이 성령을 따라 난 자인 이삭을 박해하는 것이라고 영적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종의 아들이었던 이스마엘이 주인의 아들이었던 이삭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육체로 난 아들 이스마엘이 자유로 난 아들 이삭을 괴롭히는 겁니다. 이게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자꾸 옛날 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자꾸 핍박해서 예전 모습으로 끌고 가 율법주의에 종노릇을 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이후에 광야에서 방황하고 헤매여 치열하게 싸웠던 40년의 싸움은 뭐냐면 옛날에 있었던 그들의 노예 근성을 벗어버리는 겁니다. 몸은 빠져나왔는데 마음이 빠져나오지 못했죠. 그래서 틈만 나면 그들은 애굽을 그리워하고 애굽의 노예의 삶에 방식에 길들여지고 했습니다. 이미 신분적으로 참 자유함을 누리는 자가 되었고 애굽을 빠져나왔는데 여전히 내 안에 그 종의 아들이었던 종노릇하는 아들이었던 이스마엘과 같은 율법주의가 계속 우리를 끌어당기는 겁니다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그게 익숙해서, 오랫동안 그런 삶을 살아왔다 보니까 익숙한 옛날 방식으로 나를 자꾸 끌어가는 겁니다. 그게 정확하게 오늘 말씀에서 증언하는 우리 안에 치열한 내적 싸움이라는 겁니다. 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계속해서 영향력을 미치는 거예요. 율법주의가 계속해서 나를 핍박하고 박해하며 예전 모습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나를 중심으로 행위를 중심으로 내가 구원의 자격과 조건을 얻어야만 되는 것처럼 만드는 옛날에 종노릇 하던 방식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미혹한다는 겁니다. 내 마음 안에서 참 자유함을 누리는 약속의 아들 이삭이 왕성하게 영적 자녀로 살아가지 못하고 옛날의 율법에 길들어진 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이 계속 걸림돌이 되어 계속 내 삶을 잡아 당기는 것입니다. 이게 갈라디아 성도들의 영적 상황이고 지금 이 시대에도 성도들의 영적 상황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우리 삶에 솔루션이 뭡니까? 그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결론으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종인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으라는 겁니다. 종의 아들이 주인의 아들을 계속 박해하는 이 율법주의를 내쫓으라 겁니다. 지금 너희는 율법에 종노릇 하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약속의 아들 이삭이다. 육체로 따라 난 자들이 하늘로 태어난 자들을 방해하고, 이스마엘이 이삭을 방해하고 종으로 태어난 아들이 주인으로 태어난 아들을 핍박하는 것이 영적 현실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약속의 아들이며 주인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종의 아들과 같이 자유를 잃어버린 채, 이 세상에 결박되고 율법에 결박되어 옛날의 방식을 벗어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는 겁니다. 율법 아래 머물게 하는 그 박해와 핍박에서 벗어나려면, 나를 종노릇하고 만들고 나를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종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 쫓으라는 겁니다.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방해하고 걸림돌 되게 하는 율법주의, 율법 아래 머물게 만드는 이스마엘을 다 내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안에 있는 노예의 근성 애굽을 바라보려는 그 마음 애굽의 그 종노릇 하는 삶의 패턴을 박박 긁어서 씻어내는 것이고 내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이 된 자들이 해야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율법주의를 내 쫓아야 오직 우리는 순전한 복음을 붙들고 자유함 가운데 거하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아들임을 잊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을 붙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의 나의 삶에 대한 분명한 태도입니다.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종의 아들인 이스마엘은 상속자가 아니고 주인인 사라의 아들 이삭만이 상속자라는 겁니다. 하늘나라의 유업을 받는 상속자는 오직 약속의 아들 이삭 뿐이라는 겁니다. 오직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은 약속의 자녀들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함을 누리는 자들만이 상속자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한 이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저와 여러분들도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값을 다 치르시고 우리의 저주를 다 대신 감당하며 하나님에게 버림 받음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자유를 주시기 위함이며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 위함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고, 종의 자녀가 아니라 주인의 자녀임을 잊지 않고, 약속의 자녀로서 나의 존재감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를 통하여 현재 갈라디아 성도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약속의 아들로서 나의 변화된 신분을 정확하게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다른 복음에 미혹되지 않고 참 복음 가운데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율법의 종노릇하는 아들인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 같이 종의 자녀로 결박되어 살아가지 마십시오. 종의 자녀로 결박되게 만드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 마음에서 몰아내고 쫓아내십시오. 오직 약속의 자녀로 언약의 백성이고 천국의 상속자임을 잊지 않으며,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모든 것을 몰아내고 복음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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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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