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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말씀을 통하여 진리의 말씀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진흙 구덩이에 던져진 예레미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예레미야를 건져 준 사람은 왕이 아니었고 구스 사람인 왕의 내시 에벳멜렉이었습니다. 왕의 내시를 통해 구덩이에서 건짐을 받는 그 모습은 마치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서 죽을 날만 기다리다가 형들 중에 하나인 유다가 이 요셉을 죽이지 말고 노예로 팔자라고 제안하여 요셉을 죽이지 않고 구덩이에서 건져낸 사건을 연상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시드기아 왕은 그때에 책임 회피를 했었습니다. 바른 말을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냥 나는 너희들을 거스를 수 없다며 예레미야가 진흙 구덩이에 빠져 죽도록 거의 방치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는 빌라도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시드기아가 왕으로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독대하며 은밀하게 나누는 대화의 내용들인데 이 또한 빌라도와 예수님이 일대일로 독대하며 그 마지막 밤을 심각하게 보냈던 대화의 내용과 너무나 유사합니다. 예레미야와 나누는 그 은밀한 대화 내용들은 시드기아 왕의 안타까운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며 왜 그가 그렇게 무책임하며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왜 진리 가운데 서지 못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시를 통해 진흙 구덩이에서 건짐 받은 예레미야를 시드기아 왕이 다시 불러냅니다. 그리고 은밀히 비밀스럽게 독대하며 하나님이 뭐라 그러시냐….또 물어 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왜 예레미야를 또 불러서 같은 질문을 물어봅니까?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답을 하나님이 주셨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두 번 정도 정확하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했는데 왜 또 한번 나를 불러내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셨냐고 물으시냐고 왕을 향하여 직언을 합니다. 내가 아무리 반복하여 주신 말씀을 전해도 왕은 듣지 아니할 게 분명한데 또 왜 물어보십니까…라는 겁니다. 혹시나 하고 또 물어보는 시드기아 왕에게 돌아온 답은 역시나…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바벨론과 싸우지 말고 바벨론과 결사 항전하지 말고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이스라엘을 새롭게 재편하시기로 결정하시고 심판의 몽둥이로 바벨론을 쓰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왕과 이 나라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항복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길이라는 겁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목소리에 순종하라. 그래야 생명을 보존하고 복을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옳음이 아니라, 내가 규정한 프레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복받고 하늘에 주시는 생명을 붙들고 살아가는 비결이라는 겁니다. 내 견해와 내 생각과 내 뜻과 충돌할지라도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고 그 말씀에 엎드려야 산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시드기아 왕은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엎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아니하고 결사 항전으로 싸우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지 않는 불순종이며 그 결과 망하는데 처절하게 망한다는 데도 주저하고 있는 겁니다. 왜 자꾸 이렇게 우유 부단하게 결정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가?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처한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 왕이 두려워하는 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고 생각하시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가에 있었습니다. 이 전쟁이 이길 가능성이 없는 전쟁이고 거의 백전 백패라는 것을 시드기아 왕은 이미 감 잡고 있었습니다. 왕으로서 이게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은 이미 머리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뭐를 두려워하는 겁니까? 항복하자니 먼저 항복한 자들에게 조롱받을까 두렵고 무시당하고 수치 당하는 게 두렵다는 겁니다. 시드기아는 바벨론 왕과 결사 항전의지로 싸우지 아니하면 어떤 왕이 되는 겁니까? 매국노와 한 패가 된 왕, 나라를 팔아버리는 왕이 되 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프레임 씌워지는 게 바로 시드기아 왕이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왕의 변명이었고 결국 남유다의 심판을 직면하게 되는 비극이 되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놓으며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시드기아 왕이나, 애국이란 프레임을 하나님의 말씀을 매국으로 몰아가는 많은 고관들과 백성들 모두 결국 남은 게 심판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드기아 왕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던 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하나님과 동일 본체이셨는데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인간이 되셨으며 십자가에서 수많은 수치와 모욕과 저주를 다 감내하셨습니다. 가시관을 쓰시며 채찍에 맞으시며, 수많은 수치와 모욕을 온몸으로 다 당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고 건지시기 위해…시드기야 왕과는 정 반대로 그 처절한 수치와 모욕을 다 겪고 모든 것을 다 온몸으로 감당하시며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기로 결정하신 분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면 빌라도이고 우리가 어떻게 보면 시드기아 왕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혹시나 하고 물어도 역시나 답은 똑같습니다. 내 견해와 내 생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 만이 복된 길이며 사는 길입니다. 내 뜻과 내 견해와 내 프레임에 다 들어맞지 않을지라도 주님의 말씀이 언제나 옳고 언제나 진리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고 엎드릴 때 여러분들은 사는 겁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여전히 내 옳음을 주장하며 내 견해와 내 프레임에 맞는 말씀만 취사 선택하며 나머지는 버리면서 말씀과 충돌하고 부딪힌다면, 시드기아 왕과 같이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이유들을 대며 변명과 핑계 논리로 일관한다면 결국 그것이 자신도 죽이고 백성들도 죽이며 남는 것은 심판밖에 없는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라. 그래야 복을 받고 생명을 보존하리라는 예레미야의 묵직한 말씀을 마음에 새겨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늘의 복받고 생명 얻는 귀한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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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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