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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빠지고 미혹에 쉽게 넘어가 참 진리는 외면당하고 심지어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라 그리하면 살 거라고 끊임 없이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들을 귀도 들을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산지 너무 오래돼서 참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하는 것을 넘어 그 진리의 말씀에 화를 내고 분노하며 그 진리와 충돌하고 부딪치고 죽이려 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어제 말씀과 오늘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선지자로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참 진리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 때문에 계속해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서는 뚜껑 씌운 웅덩이에 갇혔다가 왕이 꺼내 주어서 왕궁의 뜰 안에 감옥 뜰에 머물렀는데, 오늘 말씀은 다시 진흙 구덩이에 던져지는 예레미야를 보게 됩니다. 어제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사람들에게 특히 고관들에게 얻어맞고 때림을 당했는데 오늘 말씀은 때리는 것을 넘어 죽이라고 소리치는 수많은 백성들의 아우성에 직면해야만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와 충돌하고 부딪히는 사람들은 그 당시에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집안 사람들입니다. 소위 말하는 정권의 실세를 가지고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애국이라는 프레임을 기반으로 해서 그 당시에 모든 것을 쥐락 펴락하는 정치와 권력의 실세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전하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나서 보이는 반응이 무엇입니까? 그 모든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잡아 가지고 왕에게 데려와서 죽여야 된다고 소리치는 겁니다.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냥 기분 나쁘고 화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이 참 진리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죽여야 된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백성들에게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한다는 거예요. 백성들에게 애국을 가르치지 않고 매국을 가르치고 있다는 거에요. 위기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정한 평화는 뭡니까? 너희 괜찮아, 잘될 거야…등을 토닥거리는 이게 아니라 하나님께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 그게 진정한 평화이며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애국이라는 프레임으로 가지고 정치 지도자들은 이 예레미야의 참 진리의 말씀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찌르는 말씀이 되어 백성들에게 평안을 빼앗는 말씀이 된다고 소리치는 겁니다. 바벨론에게 안 망해도 되는데 예레미야 너 때문에 바벨론에게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바벨론에게 자꾸 망한다고 얘기하는 하나님 말씀이 백성들과 군사들의 분위기를 깨고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예레미야를 잡아 죽여야 된다고 말하는 고관들의 논리였습니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풍전 등화와 같은 남유다 백성들이 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순종하면 사는데 그 마지막 카드를 버리고 어떻게 하는 겁니까? 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없애려 하고 죽이려 하는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프레임인 애국을 가지고 참 진리를 박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충돌하고 부딪치는 것을 넘어 결 예수님을 죽여야 된다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로마와 싸워 이겨야 하는 메시야 프레임에 예수님이 들어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벨론을 향하여 결사 항전을 주장하는 게 민심을 얻는 길이며 백성들에게 박수 받는 일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가지고 싸우자…는 이런 외침이 백성들에게 환호를 받는 말입니다. 문제는 나라를 지키는 본질은 말씀으로 돌아오는 회개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데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데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은 바벨론과 끝까지 결사항전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거예요. 그것은 분위기와 사기를 떨어뜨리는 없애야 될 말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고관들이 왕에게 큰 소리로 간청하는 겁니다. 저 예레미야를 죽여 버려야 한다고…. 그렇게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는 외침 가운데 두 사람의 반응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시드기아 왕의 책임회피의 반응이고요. 두 번째는 왕궁의 내시였던 구스인 에벳멜렉의 믿음의 반응입니다. 시드기아 왕은 그렇게 백성들과 고관들이 예레미야를 죽여야 된다고 아우성쳤을 때 왕으로서 책임회피를 하며 결정을 미룹니다. 나는 너희를 거스를 수 없으니까 너네 마음대로 하라는 거예요. 왕이라는 자리가 책임지고 결정하여 백성들을 살리는 위치인데 시드기아는 왕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예수님을 심정적으로는 구해 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그 당시에 민심을 두려워하여 잘못된 결정을 하도록 책임회피한 빌라도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백성을 두려워하고 그 당시에 유력한 자들을 두려워하는데 정작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만 두려워하며 이렇게 책임 회피하여 안타깝게 예레미야를 내어주는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끔찍한 진흙 구덩이에 갇히게 됩니다. 지진이나 자연 재해가 나서 진흙 구덩이에 빠지면 거기서 못 빠져나와 죽게 되는 걸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가 빠진 진흙 구덩이는 가만히 있으면 그냥 죽는 자리에 빠진 겁니다. 잘못된 결정으로 본인도 망하고 백성들도 망하게 하는 잘못된 지도자로 그 자리에 있지 말아야 될 사람인 겁니다. 그런 시드기야 왕의 책임 회피에 경종을 울리는 믿음의 반응이 등장하는데 바로 왕궁의 내시였던 구스인 에벳멜렉입니다. 그는 내시인데 시드기아 왕에게 소위 말하는 목숨을 걸고 진짜 충언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했을 뿐인데 자기들의 프레임에 맞지 않는다고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죽이려고 하는 건 악한 일이라고 간청합니다. 저 사람들이 예레미야에게 행한 것은 악합니다…왕이 그 악한 일에 편승하시면 안 된다고 목숨 걸고 전하는 겁니다. 감사하게도 시드기야 왕은 에벳멜렉의 간청을 듣고 마음을 바꾸게 되어 예레미야를 진흙 구덩이에서 건져 살리도록 명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자들은 결국 끝에 가서는 하나님과 충돌하고 부딪친 것을 넘어 그 말씀을 죽이려 하고 없애려고 합니다. 말씀을 거절하고 없애서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 하는 것, 그게 바로 어두운 시대, 악한 시대, 미혹에 빠지는 시대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어렵고 시대가 어려울수록 참 진리를 말하고 전하는 자들은 예레미야와 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위협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멸시를 당하고 거절을 당하는 것을 넘어 죽이려 하고 없애려 할 때, 시드기아 왕과 같이 책임 회피하며 나는 아무 잘못 없다며 손을 씻는 인생이 될 것인지, 구스사람 에벳멜렉과 같이 목숨 걸고 믿음의 반응을 보이며 그 진리를 건져내며 그 말씀을 다시 소생시키는 자리에 설 건지…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결단해야 될 믿음의 결정임을 잊지 마십시오. 에벳멜렉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는 건짐을 받고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시위대 뜰 때에 머물게 됩니다. 진흙 구덩이에 던져진 예레미야, 진흙 구덩이에 던져진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우리는 시드기아 왕의 길이 아니라 구스 사람 이방인 에벳멜렉의 용기 있는 삶의 자세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과 건져내며 진리를 지키는 놀라운 일에 선명히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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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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