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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이는 받아 들이기에 불가능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후 남유다도 망하기 일보 직전인 그때에 앗수르의 사신 랍사게가 와서 심리전을 펴고 있습니다. 싸우지 말고 그냥 항복해… 그러면 목숨 살려주고 먹고 살게는 해 줄게…라고 통첩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 최후통첩에 얘기도 못하고 수치와 모욕은 다 당하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벼랑 끝에 선 상태입니다. 그 국가적인 위기 앞에 히스기야 왕이 보인 놀라운 믿음의 반응을 오늘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벼랑 끝에 서 있는 국가적 위기 앞에 히스기야 왕은 옷은 찢고 베옷을 입고 거룩한 분노를 가졌습니다. 자신의 옷을 찢고 베옷을 입은 이유가 무엇인가…자신과 남유다가 처한 상황이 망하기 일보 직전으로 너무 힘들어서, 우린 죽을 것 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옷을 찢은 게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다 부수적이고 첫번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능욕 당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옷을 찢고 베옷을 입은 겁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이 앗수르에 의해 능욕당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참을 수가 없는 거룩한 분노를 가진 것이죠. 마치 이스라엘 군대가 거인 골리앗 앞에 그저 벌벌 떨고 압도당하여 두려워하고 있을 때 다윗은 할례 받지 않은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을 바라보며 거룩한 분노를 가졌던 것과 똑 같은 겁니다. 우리는 대부분 나의 어떠함에 대해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거나 좋아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분노합니다. 내가 불이익을 당하고, 내가 모욕을 당하고, 내가 손해를 보고 내게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 모든 게 다 나에게 일어나는 어떠한 일 때문이죠. 그런데 히스기야는 본질적으로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을 향한 모욕적인 말과 통첩을 받은 히스기야 왕이 한 첫 번째 반응, 자신의 옷을 찢고 베옷을 입은 겁니다.
두번째, 벼랑 끝에 서 있는 국가적 위기 앞에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에게 나아와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믿음의 반응은 그 국가적 위기의 상황, 망하기 일보직전인 그 때에 사람들에게 나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나아갔다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내 상황의 어려움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을 넘어 그런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는 것이 위대하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이렇게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상황에 압도당해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포기해서 감정에 휩싸인 우매한 결정을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했던 것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는 겁니다. 위기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반응이 그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복과 화라는 것은 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에게 나아가게 만드는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가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내 삶의 형통이 나에게 복이 아니라 화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형통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건 복이 아니라 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삶에 어떤 일이 있던 간에 그것이 내가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게 만드는 복으로 변환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회복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세번째, 벼랑 끝에 서 있는 국가적 위기 앞에 히스기야 왕은 선지자 이사야의 자문을 구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히스기야 왕이 사람들을 보다는 것은 단순히 선지자에게 보낸 것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 이름,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다…를 붙드는 처절한 고백입니다. 벼랑끝에서 망하기 일보직전인 그 때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만이 나를 건져 내시고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반응을 통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대언합니다. 그 주신 말씀은 내 머리와 생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받았는데 이 약속의 말씀을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죠. 지금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게 말이 됩니까? 지금 온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고 앗수르 대군 앞에 몰살 당하기 일보직전인데, 그 벼랑 끝에서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나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믿음의 순종일 뿐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감정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히지 않겠다 두려움이 내 마음에 안방을 차지하지 않도록 놔두지 않겠다…이 고백은 나의 주먹 쥐는 의지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꼭 붙어 있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믿음의 고백 외에는 없는 겁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에게 나아가 믿음을 가지고 채우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앗수르 대군이 그냥 돌아간다는 것과 그 왕은 하나님께서 죽게 만드신다는 약속을 주십니다. 지금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처한 상황에서 이게 가능이나 한 얘기입니까? 앗수르가 모든 나라들을 다 굴복시킨 대군인데, 지금 최후 통첩을 한 상태인데, 그냥 싸우지 않고 돌아간다? 여호와 하나님이 앗수르 왕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 준다는 걸 믿으라? 이 약속은 비현실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내려놓기 쉽고 내 머리와 계산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약속들입니다. 내 머리의 계산으로는 있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약속을 주신 겁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명령의 말씀들이 있는데, 약속을 명령으로 주시는 이유 이유는 내 머리와 계산으로는 수용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명령은 내가 납득해서 지키는 것도 아니고, 내 머리로 계산해서 지키는 것도 아닌, 믿음으로 순종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내 머리에 계산과 생각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지킬 때에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명령형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명령형이 나올 때마다 밑줄을 긋고, 이것은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되는 순종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그 말씀을 취할 때 내 믿음이 단단해지고 신앙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싸움은 하나님의 약속을 내가 믿고 신뢰하느냐 아니냐 믿음의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여러 가지의 어려움과 절박한 상황,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어려움 가운데 상황에 압도당하고 두려움에 압도 당하는 대신, 히스기야와 같은 믿음의 반응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회복되기 원합니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보다 중요한 건 하나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입니다. 신앙이 깊어 진다는 것, 더 깊은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어떠함을 넘어 하나님에게 일어나는 어떠함에 대해 주목하며 그것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어떤 일이 있어나던, 처한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던, 제일 먼저 그것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만드는 그 믿음의 반응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회복되기 원합니다.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에게 나아가게 만들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주목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는 것, 그것이 믿음의 반응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이 말씀, 두려워하지 말라 그 적을 내가 이기게 하고 물러가게 하겠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내 머리가 아니라 믿음으로 취하고 그 약속에 믿음으로 순종하기 원합니다. 주님이 주신 명령을 내 마음에 약속으로 붙들고 그 약속이 내 삶에 놀라운 현실로 펼쳐지는 귀한 역사가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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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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