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5장까지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판과 구원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이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있는 자들은 심판에서 건지시고 구원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다는 것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36장 말씀은 그 약속의 말씀을 받고 현실로 돌아오고 나니까, 내 삶의 자리는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위기 가운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제대로 섬겨 보겠다고 여러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한 종교 개혁을 이루어 낸 왕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서는 왕이 되고자 정말 발버둥치는 의로운 왕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잘 믿겠다고,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겠다고 왕이 그렇게 발버둥치면 하나님이 축복을 좀 주셔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축복은 아니더라도 이런 큰 어려움은 좀 미루어 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신실하게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히스기야 왕과 남유다에게 찾아온 건 뜻밖에 어려움이고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큰 국가적 위기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 편에 서시고, 하나님 은혜 가운데 붙어 사시고 주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십시오…아멘 그리고는 세상으로 나가 현실로 돌아와 보니 내 현실의 아픔과 눈물과 어려움과 위기가 그대로 있는 삶의 현장을 우리는 직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 때에 실제로 있었던 앗수르 군대의 침략이라는 이 위기 상황을 통해 신앙의 삶의 자리와 현실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드는 것이 얼마나 기적적인 일이고 그것은 내 힘을 넘어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가능한 것인지를 선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잘 믿겠다고 발버둥치고 순전한 믿음으로 나아가는데 내 앞에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오는 큰 어려움을 직면하게 되는 이 모순, 그것이 신앙의 선조들이 직면한 삶의 자리였고 지금 많은 성도들이 직면하는 삶의 자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과 남유다가 처한 삶의 자리는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골리앗 앞에 서 있는 국가적 위기 상황입니다. 앗수르는 예루살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남유다 땅을 함락시키고 사신 랍사게를 보내 심리전을 펼치며 두 손 들고 항복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 앗수르 군대와 사신 랍사게는 지금 이 시대에 성도들이 직면하게 되는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그 하수인들입니다.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여기서 중요한 건 앗수르의 랍사게는 남유다 백성들의 믿음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너희가 누구를 믿고 의지하고 무엇에 기대 감히 앗수르라는 세계 최강의 대군과 싸우려고 하느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잘 믿으려 할 때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미혹이 뭐라는 겁니까? 네가 믿는 믿음이 뭐냐….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흔들고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사신 랍사게는 심리전을 펴면서 세 가지의 믿음에 대해서 사정 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흔들고, 애굽을 믿는 믿음을 흔들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믿으려는 것을 흔들고 있습니다. 너희가 너의 힘을 의지해서 앗수르와 싸우려 그러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거다… 너희는 백전백패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 2천마리 줘도 너희는 그 말 탈 용사들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너희는 약하니, 너희 자신을 의지하며 싸우려는 게 얼마나 우매한 일인지 아느냐며 흔드는 겁니다. 두번째로 흔드는 것은 애굽을 믿는 게 얼마나 허망한가 대해서 지적합니다. 앗수르의 공격으로 찾아온 위기 가운데 애굽을 향하여 도움을 청하고 애굽을 향하여 도움을 구하며 거기에 붙어서 무언가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은 도와줄 수도 없고 도와줄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굽 의지하지 말라는 이 조롱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중요한 거는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랍사게의 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경고의 말씀과 비슷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끊임없이 남유다 백성들에게 경고했던 말이 너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의 본질은 그 둘을 의지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앗수르의 랍사게는 결정적으로 끝에 가서 이것을 틀어 버립니다. 자기 자신도 의지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애굽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도 의지하지 말라고 믿음을 흔드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위기 상황에서 너희를 구원할 것 같냐는 것이죠. 너희 예배와 제사를 받으셨는지 모르나 여호와 하나님은 너희 못 구원한다는 것이죠. 이게 공중권세 잡은 자 악한 자들이 성도들을 향하여 하는 끊임없는 미혹이라는 것입니다. 비슷해 보이는데 끝이 완전히 다른 거예요. 내 자신을 의지하면 안 되고 눈에 보이는 애굽을 의지하지 않는 건 맞는데 그리고 결론이 어디로 갑니까? 여호와 하나님도 의지하지 말라는 쪽으로 나가는 겁니다. 모든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유다 방언으로 큰소리로 말하면서 백성들을 두려움과 절망에 압도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우리 가운데 어려움이 찾아올 때 끊임없이 마음속에 찾아오는 생각이 뭡니까? 하나님이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라는 마음이죠. 하나님은 결국 우리를 도와주실 수 없을 거야…이처럼 세상은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을 다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 특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앗수르가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협박했던 내용이고 지금도 공중권세 잡은 자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협박하고 흔드는 전형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바로 심리전으로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흔드는 모습이자 성도들을 이 시간 흔드는 미혹의 목소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제대로 갖고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는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믿음은 흔들고 협박하며 심리전을 펴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바라봐야 합니다. 랍사게가 모욕의 말로 남유다 백성들과 히스기야 왕을 향하여 그들의 믿음을 흔드는 이 말들은 다 우리가 현재형으로 경험하는 치열한 내 마음속 영적 미혹이자 전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기와 여러움 속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만들며 결국은 그 상황에 두려움에 압도 당하여 무너지게 만들려 하는 미혹의 소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정확하게 인지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제대로 믿기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에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미혹의 소리, 끊임 없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의심하게 만드는 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럴 때마다 말씀을 통하여 내 마음에 새겨야 되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세상과 맞서 싸우고 있는가? 처한 상황과 어려움에 관계없이 제일 먼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붙들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기적의 삶이며 그 기적의 삶이 저와 여러분들이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선명하게 붙들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기적의 고백을 통해, 하늘의 은혜가 우리 삶에 풀어지는 놀라운 역사를 현재형으로 경험하는 주의 신실한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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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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