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반역과 죄에 대해서 계속해서 경고하십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 강조되는 그들의 영적 상태는 하나님을 향한 배역입니다. 배역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뒤로 물러서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영에서도 배영이라는 방법은 누워 가지고 거꾸로 가는 수영 기법입니다. 마찬가지로 배역이라는 말은 앞으로 나아와야 하는데 그 대신 뒤로 물러서고 있는 상태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면 점점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뒤로 미끄러지고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며 떠나가는 것, 그게 배역이라는 겁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예배와 제사를 드리면 드릴수록 하나님을 향해 더 나아가고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을 떠나가고 뒤로 미끄러지며 한 발 두 발 뒤로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예전보다 더 못하게 되고 예전보다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고 마음 상태가 하나님에게서 무관한 사람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들, 그게 바로 배역한 남유다의 영적 상태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의 배역한 상태는 결국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예배해야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음하며 간음하며 무너지는데 있습니다. 약속으로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만 예배하는 믿음에서 뒤돌아 눈에 보이는 세상과 땅에 있는 우상들을 겸하며 섬기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배역으로 자신들을 더럽히고 하나님이 주신 땅을 다 더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을 다 무너뜨리며 하나님 앞에 행음하고 음행하는 백성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렇게 배역하는 남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또한 북 이스라엘의 망하는 전철을 밟고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남유다는 분명히 배역한 북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보았는데, 남유다는 깨어서 정신차리고 돌아오는 대신, 하나님 앞에 똑같이 배역하고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간절히 부르시는 소리도 들었는데 북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남유다 또한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점점 하나님에게 멀어지고 점점 하나님께 등을 돌리며 점점 하나님의 길에서 이탈하는 그 배역의 길을 계속 질주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씀을 계속 전하는 겁니다. 듣고 싶지 않지만 들어야만 사는 말씀을 계속 주시는 겁니다. 듣기 싫어하지만 들어야만 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뭡니까? 하나님에게 돌아오라, 죄를 자복하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하나님이 너희와 아직 결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남편이라는 거예요. 너희가 섬기고 있는 어떤 우상도 그 어떤 세상 신도 너희의 남편이 아니라는 겁니다. 유일한 남편 되시고 신랑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이 땅의 것을 겸하여 섬기며 무너지고 있는 영적 상태를 직시하라는 겁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너희들은 망하고 무너지기 전에 돌이켜 하나님에게 돌아오라는 것이죠. 하나님에게 돌아와 하나님의 그 은혜 가운데 다시 한번 새출발 하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죄를 자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빛에 나를 비추어 내 죄가 민낯과 같이 다 드러나 그 죄를 철저히 자복하는 겁니다. 죄에 대해 철저히 자복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만이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가 사는 비결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눈물과 함께 전하도록 명하신 겁니다. 안타깝게도 남유다 백성들이 귀 담아 듣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백성들이 얼마나 듣기 싫어했는가 하면 충돌라고 부딪히며 심지어 예언자들을 막 죽이려 하고 핍박하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시 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자기의 길로 나아가는 겁니다. 계속 배역의 길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자비의 하나님이시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도 다 받아 주시겠지….착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배역한 남유다 백성들이 스스로 돌이켜 하나님께 나올 능력이 없는 거예요.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 스스로에게 없는 겁니다. 그 죄를 인정하고 주님께 자복해서 나오면 사는데 그럴 능력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대안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을 주님께 돌아오게 할 그 목자들을 보내 준다는 거예요. 그 참 목자, 하나님 마음에 합한 그 목자들이 결국 장차 오실 메시아를 보내 주신다는 약속임을 그림자 같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타까운 부르심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남유다를 향한 회개의 촉구와 배역으로부터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시며 우리를 찾고 계시며 우리를 향하여 내가 너희의 유일한 남편이라 선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실 메시아 그 참 목자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인정해야 될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배역한 인생, 내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이고요. 내가 배역한 것을 알고 내 죄를 자복하지만 내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처절히 인정하며 나의 소망 없음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를 주님께 돌아올 참 목자 예수님을 바라보고 붙들며 그분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 아니겠습니까? 성도의 본질이란 우리의 유일한 신랑 되신, 영원한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돌아오는 겁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에게만 묶여 살아가는 것이 신부인 교회의 역할이고 교회 존재 목적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은혜의 공동체로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도 머리에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 길은 우리의 유일한 신랑 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시는 외침을 마음에 담아 두 손들고 회개하며 나아오는 것입니다. 유일한 소망되신 참 목자 예수님을 붙들고 모시는 인생되어, 돌아오라는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며 새 출발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고백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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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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