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 백성들의 거룩하고 구별된 삶은 바라보는 영적 시각과 시야가 다르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에게 피하고 하나님의 그늘에 달려가는 영적 시야, 눈 앞에 것들만 바라보지 않고, 눈 앞에 펼쳐진 현실과 상황만 바라보지 않는 영적 시각을 갖는 겁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광활한 땅을 눈으로 보는 영적 시야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내가 멀리 보게 만들고 끝을 보게 만듭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 멀리 보고 끝을 볼 수 있는 넓은 영적 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하시고, 믿을 수 없는 부분을 믿게 하시며 볼 수 없는 부분을 보게 하시는 그 은혜가 우리 가운데 담겨야 하는 겁니다. 그 영적 시각은 반드시 하나님을 신뢰할 때만 열리게 되는 신비이며 보이는 것을 주목하는 대신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하게 되는 신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 바로 눈이 바뀌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상황 눈앞에 펼쳐진 일들을 넘어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시야를 갖게 만드는 겁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멀리 바라보고 끝을 바라보게 만드는 영적 시야,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게 만드는 영적 시야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평소에 우리가 시온성을 바라보고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말씀으로 조율된 인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야 갑자기 찾아온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허둥 대지 않고 눈앞에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시온성을 바라보고 예루살렘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온성을 바라보고 예루살렘을 주목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고백을 하게 하십니까? 여호와는 거기 위험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평소에 내가 말씀을 통해 내 눈을 열어 주셔서 현실과 상황을 넘어 나와 함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목하는 영적 시야가 있어야만 가능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늘 말씀을 통해 교정 받으며 시온성을 바라보고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멀리 바라보고 끝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이런 놀라운 고백이 가능한 겁니다. 그럴 때만 이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놓일 때에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붙들 수 있는 겁니다. 평소에 시온성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주목하며 살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상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매몰되고 분주하게 살다가 위기와 어려움이 딱 닥치면 눈앞이 캄캄해져서 하나님이 안 보이는 것이죠. 하나님이 마치 안 계신 것처럼 여겨지며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니까 허둥대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붙들고, 눈에 보이는 강대국 애굽을 붙들고 나를 건져줄 것처럼 착각하고 살다 무너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처한 상황이 왜곡되고 과장되면 내가 싸우는 적이 왜곡되고 과장되어 거기에 압도 당하여 두려움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아닌 세상과 눈에 보이는 세상 힘을 의지하며 살아가려는 모습은 거룩함과 구별됨을 잃어버린 삶이자 그 끝은 심판과 멸망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고하시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의 반복적 경고가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종종 우리 또한 하나님을 망각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매달리고 눈앞에 것들만 바라보고 살아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분주하다는 핑계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계속해서 몰입하고 눈앞에 것들 것 처리하라고 정신이 없어집니다. 그러다가 인생에 큰 어려움과 위기가 다가오면 눈 앞이 캄캄해져서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것을 붙들며 도움을 구하다가 무너지는 겁니다. 세상을 향하여 피하지 않고 세상을 향하여 기대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피하고 기대는 놀라운 역사를 삶에서 경험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야 될 길이라는 것을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실패를 통하여 우리에게 간절하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구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바라보고 믿는가….이게 다른 존재입니다. 불신자들과 똑같이 처한 상황과 환경은 비슷할지 모르고 살아가는 일상은 비슷할지 모르나 그 가운데 영적 질서와 우선순위가 다른 것이죠. 눈앞에 있는 현실만 매몰되어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인생과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넘어 저 광활한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가고 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인생이 다른 겁니다. 나의 일상에서 시온성을 주목하고 내 눈이 하나님을 주목하며 살아가는 게 다른 겁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 나와 함께하심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죠. 그래서 평탄할 때나 위기의 때 내가 붙들고 믿을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고 내가 의지하고 나를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며 하나님에게 달려가고 하나님에게 피하는 겁니다. 주어진 현실과 상황에 내 모든 것을 매몰시켜 것이 아니라 그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넘어 역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바라보는 눈이 나를 살리는 것이죠 여호와는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하실 것이라….이 세상은 내가 스스로 강해져서 내가 스스로를 지키고 위기도 스스로 빠져나와야 된다고 가르치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더 강해져야 되고 내가 더 높아져야 되고 다른 사람을 밟아서라도 스스로 살아 남아야 한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시고,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구하실 것을 믿고 사는 겁니다. 스스로 강해지려는 삶을 내려놓고 주님의 강하심에 내가 묶이며 주님의 공급하심에 내가 묶여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백성이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위험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심을 고백하고 나를 건지시고 구원하심을 고백하는 것이죠. 이사야 선지자 이름의 뜻 기억나십니까? 이사야 이름 자체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구원이 없고 내 스스로 강해지려는 것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나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믿으며 하나님이 나를 건지시고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힘에 내가 묶여 살아가는 삶에만 소망이 있으며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건지심과 구원하심은 완전하며 확실하며 언제나 최고의 것을 주십니다. 이 놀라운 고백, 하나님이 나를 건지시고 구원하심의 고백이 내 삶에 현재형으로 펼쳐지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 되심을 나의 삶에서 현재형으로 고백하는 것이죠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주목하며 살아가십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눈앞에 현실이 전부인 줄 살아가는 이 시대에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사모하십시오. 그것은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는가에 있습니다. 눈 앞에 현실이 중요하고 처한 상황과 환경이 중요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눈앞에 모든 현실에 내 마음을 다 빼앗기지 않고 매몰되지 않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영적 시야가 넓어져서 위를 바라보고 멀리 바라보고 살기 원하며 끝을 바랍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눈앞에 처한 상황과 환경을 넘어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시온성을 주목하여 살아가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이 위험에서 나를 건지시고 구원하실 왕이심을 고백하며 그 고백이 내 삶에서 현재형으로 풀어지기 원합니다. 그렇게 될 때만이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은 상대화 되기 시작하며 나를 힘들게 하는 적들은 왜곡되고 과장되지 않게 됩니다. 그걸 통하여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힘과 능력을 공급받고 살아가는 겁니다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분께 피하며 그분께 기대며 그분을 통하여 힘과 능력을 공급받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거룩하고 구별된 삶의 핵심인 줄 믿습니다. 바라기는 멀리 바라보시며 끝을 바라보시며 하늘을 바라보시며 시온성을 바라보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며 살아가는 거룩하고 구별된 하나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April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