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의 큰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자유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생명과 자유가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법에 결박되어 살아가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선포하는 안타까운 서신입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스스로 내가 무언가를 해서 구원받을 만하게 만드는 것을 열망하며, 율법을 지킴을 통해 구원의 자격과 조건을 얻는 유사 복음이 몸에 딱 맞는 옷과 같이 여겨지는 겁니다. 그래서 은혜로 주신 십자가 복음 대신 자꾸 율법을 붙들고 내가 무언가를 해서 얻는 결과나 보상이 구원이라고 착각하는 이것에 자꾸 휘둘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언약이 먼저냐, 율법이 먼저냐…라는 것을 통해 선명한 복음을 제시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두 개를 동시에 붙드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게 있고 상대적으로 중요한 게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한 영적 진리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의 필요가 중요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이기에, 분명한 우선순위와 영적 질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언약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고, 율법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임을 붙드는 우선순위와 영적 질서를 지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절대성을 붙들고, 율법을 보조 도구로 사용하는 정확한 영적 질서와 우선순위를 갖지 아니하면 신앙의 혼란과 왜곡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대성을 갖는지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먼저 얘기합니다. 사람들도 약속하면 약속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약속하면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은 신뢰가 없는 사람이고 그 사람하고는 지속적인 관계가 어렵습니다. 왜냐면 약속을 하면 지키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약속도 그렇게 잘 지키고 당연히 지켜야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 사이에 하신 약속은 얼마나 잘 지켜지겠느냐는 겁니다. 또한 약속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하는데 한쪽에서 약속을 못 지키면 그 약속은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약속은 쌍방이 지켜야만 되는 게 약속이기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언약이 지켜 지려면 양쪽이 다 지켜야 합니다. 문제는 인간은 그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는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킬 능력이 없고 계속 깨며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약속은 당연히 파기되고 깨져야 되는데 하나님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겁니다. 인간의 불신앙과 불순종에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신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이 영원 불변하는 이유이고, 그 본질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값없이 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의 언약이 사랑과 은혜 자체이며,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인 이유는 그의 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조상이 아니라 그의 믿음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심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약속을 깨는 불순종, 기다리지 못하는 불신앙의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약속해 아들 이삭을 주신다는 것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 된 이유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열심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죽이라 명령하신 사건은 누구를 예표하는 것인가 하면 장차 오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보면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하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인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삭의 모리아산 사건은 하나님이 구약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신 언약은 아브라함의 아들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됨을 증언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어쩌다 우연히 오신 게 아니라 아브라함과 맺으신 이 언약을 영원 분별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하여 언약이 성취됐다는 것입니다. 오직 한 사람인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구약은 그림자와 같이 보여주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언약을 기초로 해서, 그 가운데 보조 도구로서 율법이 등장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주신 이 복음의 절대성, 십자가 복음의 절대 가치를 상대적으로 중요하고 보조도구인 율법이 영적 질서와 우선순위를 흔들면 안되는 겁니다. 430년 후에 생긴 율법, 즉 모세가 받은 시내산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을 반찬과 같이 섬기는 보조 도구라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중요한 보조 수단인 겁니다. 그렇기에 율법은 거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에 걸림돌이 되면 안 되고 십자가의 복음에 걸림돌이 되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절대적인 가치인 하나님의 언약과 십자가 사랑을 자꾸 밑으로 내려놓고 익숙하고 편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율법을 절대적 가치로 두려고 했다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중요한 보조도구 율법이 자꾸 위로 올라와 영적 질서가 무너지게 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언약을 막아서는 걸림돌이 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처한 영적 문제이며 이 시대 많은 성도들이 율법주의로 빠지게 되는 영적 문제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유익한 영적 습관들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영적 습관이 그리스도의 언약과 은혜와 사랑을 막아서는 걸림돌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유익한 영적 습관들이 구원의 자격이나 조건을 얻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면 이게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내 소중한 영적 습관이 타인은 사람을 비판하고 정지하는 수단이 되면 십자가 복음에 걸림돌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내 영적 습관들은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보조 도구로서만 되게 하는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그 거룩한 영적 습관들이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 주신 십자가 복음을 은혜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기만을 붙드는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신 구약, 옛 언약이 성취된 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십자가 복음라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언약의 신실하심으로 그 아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예수 십자가 복음으로 언약이 이루어져서 소망이 생기고 구원이 완성된 겁니다. 이 놀라운 구원, 은혜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겠습니다…고백하며 예수님을 영접한 결과로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의 자유이고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복음을 말씀 그대로 수용하고 따르며 받아들이십니까? 우리와 맺은 언약을 영원 불변하도록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과 은혜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값없이 주어져서 그리스도를 통과해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그 놀라운 십자가 복음으로 저와 여러분들은 구원받은 겁니다. 상대적으로 중요한 율법을 하나님의 언약을 아는 보조도구로만 정확하게 한정하여 무조건적인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실하신 은혜를 붙들고 나의 나된 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신뢰하며 따라가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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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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