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신다”로 시작되는데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뭐 debate이나 토론을 하신다는 게 아니라 백성들을 심판하시는데 직접적으로 개입 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단어는 일어나시며….서시며….입니다. 하나님께서 좌정하여 앉아 계셨었는데 그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실 정도로 그들은 너무 타락했고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 가고 말았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타락은 물론 왕을 비롯해 지도자들의 타락이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만들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불순종과 영적 타락이 과연 왕과 지도자들만의 문제였는가? 오늘 말씀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유다와 예루살렘의 영적 타락은 왕과 지도자 몇 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백성의 문제라는 겁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탓을 돌리길 참 좋아합니다. 나라가 이렇게 문제 있고 어려운 이유를 늘 지도자 탓으로만 돌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든 문제를 대통령 탓으로 돌리면서 자신들은 깨끗하고 괜찮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타락은 필연적으로 백성들의 타락을 가져오게 되고 한 마음이 되어 왕도 백성들도 불순종과 영적 타락의 길로 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반 백성들이 어떻게 타락하고 있는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등장합니다.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 집에 있도다…. 힘이 좀 있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물건들을 빼앗아 강탈하는 일이 만연한 겁니다. 요즘에 한국에는 많이 없어졌겠지 옛날에는 학교에 가면 조금 힘 있는 애가 힘없는 애들 물건을 자꾸 훔쳐가고 빼앗아 가는 일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인 겁니다.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 하느냐… 소위 말하는 갑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을을의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약한 자들 사이에서도 조금 더 힘이 있는 사람이 조금 더 약한 사람을 짓밟고 얼굴에 매질하며 이익을 강탈하는 일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게 한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왕과 지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유다와 예루살렘 공동체 전체의 문제라는 겁니다. 백성들 중에도 자기보다 좀 만만하거나 힘이 없는 사람들의 물건을 빼앗고 짓밟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굽게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예루살렘의 불순종과 타락의 문제는 지도자도 백성도 모두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런 불순종과 영적 타락이 남자들만의 문제였는가?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들도 똑같이 문제였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증언합니다. 16절부터 24절의 긴 부분이 여자들의 타락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만하여 늘린 목걸이,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내는 모습이 그 당시에 소위 말하면 잘나가는 여인들이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며 다니는 모습을 대표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여인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들이 온몸에 치장한 것들이 다 나오는데 들어보지도 못한 게 많은 정도로 너무 구체적입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갖 보석과 사치품으로 두른 여인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자기 교만과 사치에 취해 있는 그 시대의 여인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남자와 여자를 따질 것 없이 모두 한 마음으로 무너진 공동체의 타락이라는 겁니다. 왕과 백성들이 동시에 타락했고, 백성들 중에도 남자들과 여자들이 동시에 타락한, 타락하고 여자들도 타락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타락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선명히 증언하는 것입니다. 남자들만 타락한 문제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불문하고 모두의 문제였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과 영적 타락으로 갈 때까지 간 하나님의 백성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아니하시고 어떻게 하신다는 겁니까? 일어나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신다는 겁니다. 주께서 여인들이 온몸에 치장한 귀금속들과 사치품들을 다 거두어 가신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그들의 하체가 드러나는 끔찍한 수치를 경험하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들이 마치 내가 일한 결과의 보상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임을 망각하고 내 노력의 산물이라고 치환하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 주신 분인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 눈에 보이는 주신 선물 자체에 매몰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인들의 온 몸에 치장한 귀금속들과 사치품들로 자신을 뽐내고 고개를 뻣뻣이 들고 교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임을 망각하고 선물 자체에 매몰되는 왜곡과 타락의 모습입니다. 그런 자들의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이 제하여 버리시고 거두어 가시겠다는 것이고, 수치와 모욕을 경험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다 거두어 가시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거두어 가십니까? 주신 하나님보다 선물 자체를 더 의지하고 그 선물들이 다 하나님이 주신은 선물이라는 것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주신 선물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지 못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제하시고 거두어 가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들을 다 제하고 거두어 가시면 남는 건 뭐라는 겁니까? 심판 밖에 없고 멸망 밖에 없는 겁니다.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며 굵은 배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정은 칼에 무너지고,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성문은 슬퍼하고 곡하고, 황폐하여 땅에 앉아 통곡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공동체가 타락하고 변질하고 불순종하는 문제는 왕과 지도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온 백성의 문제이며 남자들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자 여자 모두의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지금 이 시간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멸망과 심판을 예루살렘과 유다는 경험했고 우리에게도 이런 동일한 일이 찾아올 수 있음을 계속 경고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길이 참으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으심을 잊지 마십시오. 어느 임계점을 넘어가면 하나님은 일어나시며 서서 직접 개입하실 때가 찾아옵니다. 어느 임계점을 넘어가면 하나님은 은혜로 주신 것들을 다 거두어 가시는 때가 찾아옵니다. 생긴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들며 살아가십시오. 주신 선물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면 주신 선물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결국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그것을 다 거두어 가실 때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도록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말고,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통해 하나님만을 선명히 바라보기 원합니다. 이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우리에게 이 심판과 거두어 가심이 반복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으며 선물주신 분인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12월 2024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