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장이 전체적인 인류의 족보이고 2장이 이스라엘과 아들들에 족보였다면 3장은 다윗의 아들들, 특별히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에 분단된 이후 남유다의 왕들에 대한 족보입니다. 솔로몬은 밧세바를 통해 태어난 아들이자 첫번째 아들도 아니었습니다. 밧세바는 간음을 통해 데려온 여인이고 전남편의 과거가 있는 하나님의 왕실과 언약을 세우기에는 흠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밧세바를 통하여 솔로몬을 태어나게 하셨고 다윗을 이어 왕이 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에 이스라엘의 남유다의 아들들에 대해서 그 왕가의 혈통들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남유다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버티다 버티다 다윗 언약을 지켜내지 못하고 결국 기울어졌고, 영적으로 타락하며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게 남유다가 망하면서 다윗의 가게가 끊어집니다. 왕족이 끊어지며 나라가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고 포로 생활 중에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페르시아에서 특별한 귀한 명령을 내려준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된 사람들이 돌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마음의 고향인 예루살렘 성전을 대거 재건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포로기 가운데 재건 하게 됩니다. 그렇게 공동체 회복을 보장받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려 하지만, 그들에게 왕을 세우는 것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성전을 재건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지 그 무너졌던 남유다 왕국을 재건하도록 허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신분적으로 포로들이었고 여전히 그들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 민족 일 뿐 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오늘 말씀의 족보는 남유다의 왕의 계보가 그들에게도 이어지도록 그 역사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으로 시작된 남유다의 왕의 족보는 16절의 시드기야에서 멈추게 되지요. 시드기야 왕때에 남유다는 끝이 났고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런데 17절에 이어서 포로로 잡혀가는 아들들의 이름을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포로 중에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해 돌아온 사람들의 리더인 스룹바벨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스룹바벨 과 성전 재건을 위해 돌아온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결국 다윗 왕국은 끝났고, 남유다는 망했고, 나라는 세울 수 없고 왕위를 계승할 수 없는데, 페르시아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지금 돌아와 성전을 세우면서 우리의 역사의 뿌리와 신앙의 뿌리가 남유다에게 연결되어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 페르시아 제국에 여전히 속국이고 나라를 세우지 못하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그 남유다에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하고 있다는 정통성을 붙들고 그 족보와 혈통을 통해 이 자리에 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영적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상황은 황무지와 폐허였습니다.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받았지만 나라는 세울 수 없는 식민지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은 끊어진 것이 아니라 남유다의 족보를 통하여 계속 영적인 은혜는 계승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다시 일어서는 소망과 희망을 붙드는 간절함이 이 족보에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룹바벨 과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사람들이 지금 남유다의 왕들 족보에 자신들을 연결 시키면서 우리가 이렇게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는 데 하나님이 주신 다윗 언약을 회복하는 그 꿈을 붙들고 우리가 이 성전을 다시 세우는 것임을 영적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바라본 것이죠. 그래서 이 족보의 이름들이 저희가 발음하기도 어렵고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이어지지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으로 읽음으로, 족보에 녹아져 있는 이 간절한 마음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영적으로 고아같이 느껴지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며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이 하나님의 언약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 족보의 말씀을 보며 우리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시간 서있다는 것을 깨닫기 원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 영적인 계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이 시간 나에게 흘러 들어가 있으며 그 은혜를 붙들고 하나님께서는 다윗 언약을 회복시킨 그 은혜를 동일하게 나같은 주심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언제나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께 교정되어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여전히 현지 형으로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을 이 족보를 통해 발견하고 주님의 은혜에 매달리는 영적인 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 나는 고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족보와 혈통에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주님의 백성이며 그 은혜와 사랑이 이 황무지와 페허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도 여전히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은혜로 우리 가운데 다가옴을 믿으며 이 새로운 영적인 재편의 시대에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다시 한번 일어서며 영적인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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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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