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인생은 나 다움의 삶을 살지 못하고 계속 내 인생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귀가 얇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다른 사람의 말에 내가 미혹 당하고 갈대와 같이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하는 사람들은 참 인생이 힘들고 어렵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 성경에 정확하게 뿌리내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데, 하나님 말씀대신 자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거나, 사람들의 말에 내 믿음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 미혹을 당하고 신앙 생활이 힘들고 어렵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그대로 가감 없이 표출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어리석도다…” 말할 정도로 사도 바울의 안타까운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겁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분명한 십자가 복음, 순전한 복음을 주신 그대로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른 사도 바울, 이방인의 새 생명을 얻기 위해 보냄 받은 메신저로 그는 순전한 복음을 있는 그대로 하나도 빼거나 더하지 그대로 전했고, 그 순전한 복음을 들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성령을 받으며 그 인생이 새롭게 시작하는 놀라운 역사들을 보고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전한 그 복음을 분명히 듣고 믿고 고백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통과하며 모든 것이 변했고, 성령의 충만함 경험했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떠난 지금 미혹의 빠져서 다른 복음과 유사 복음에 사정없이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여전히 눈앞에 밝히 보이는데 거짓 선지자들의 꾀임을 당해 갈지자로 흔들리며 복음의 기초에서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어리석은 미혹에 빠지게 만든 그 다른 복음의 핵심은 뭡니까? 갈라디아서에서 계속 강조하지만, 다른 복음/유사복음은 십자가 복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복음을 인정하긴 인정하는데, 십자가 복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게 유사복음과 다른 복음의 특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고 구원받는 거 맞고 죄 용서 받는 거 맞는데 그 구원이 충분하지 않기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위해 율법을 지키고 할례도 행하고 안식일도 준수해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 십자가만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게 아니다….는 가르침에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다 마음이 흔들려 버리고 사람들의 말에 빠져 어리석음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도 바울은 두 가지의 질문을 그들에게 던집니다. 너희들이 정말 지금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두 가지를 정확하게 스스로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첫번째,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믿음으로서냐? 성령을 받은 것이란 처음으로 그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첫사랑의 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고 죄사함 받은 때, 거듭남의 때를 바로 성령을 받은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 받은 그 모든 은혜가 율법의 행위로냐 아니면, 믿음으로냐…를 묻는 겁니다. 너희가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공로를 쌓고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받은 보상이 구원이냐? 아니면 예수님이 너희 불쌍히 여겨 구원받게 해주고 죄사함 받게 해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느냐?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성도들이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사단의 미혹에 휘둘려서 십자가 복음만 붙드는 것이 충분하다는 것을 우리가 믿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십자가 복음 하나만 붙드는 것은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꾸 갈대와 같이 흔들리게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에게 선명히 주어졌는데 십자가를 붙들지 않고 계속 내 공로나 행위, 할례나 율법을 지킨 것을 가지고 구원받음의 조건이나 자격을 따지려고 하는 것 자체가 벌써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성령 하나님의 권능과 역사를 보여주셨는데, 그게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우리 안에 역사하신 성령 하나님, 그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이 세상에서 나의 힘과 능력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힘과 능력을 붙들고 살고, 내 뜻과 내 계획이 아닌 보내신 그 뜻을 계획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명자로 살아가게 됐는데 그게 다 율법의 행위로서냐, 아니면 믿음으로 받은 거냐…정확하게 자문해보라는 겁니다. 성령의 은사도 성령의 열매도 다 성령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내가 한 열심과 노력의 결과나 보상으로 주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특별한 은사를 받으셨습니까? 그게 여러분들의 열심과 노력의 결과나 보상으로 생각하는 순간 지금 다른 복음에 미혹되어 유사복음에 빠지게 되는 어리석음에 빠진 것입니다. 내가 어떤 공식을 가지고 이렇게 하니까 놀라운 은사를 받았다… 이게 바로 순전한 복음에서 이탈한 다른 복음입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주도의 선물일 뿐입니다. 내가 어떻게 함으로써 일어나는 보상이나 대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한 경고 말씀은 분명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끝내려 하지 말라는 겁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예수 이름을 영접해 죄사함을 받은 놀라운 십자가 복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까딱 잘못하면 그 끝에 남는 건 내 율법만 남고, 내 이름과 행위만 남는 육체로 끝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어리석은 인생이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마치는 안타까운 인생인 겁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값을 치르신 십자가 복음이 이렇게 있는데 왜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마치려 그러느냐…이런 말도 안 된 일이 너의 인생 결론 되게 하지 말라…강력 경고하는 겁니다. 구약의 여러 왕들 역사는 그 왕 개인의 역사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남유다도 북 이스라엘도 여러 왕들의 특징이 뭐냐면 바로 용두사미…입니다. 처음에는 신실하고 좋았는데 나중에 가서 완전히 악하고 무너지는 왕, 전반전에는 너무 좋았는데 후반전에 완전히 무너지는 여러 왕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전반전은 성령으로 시작했다 후반전은 육체로 끝나는 거예요. 그 패턴이 계속 반복되며 이스라엘의 역사는 내리막길로 결국 파멸과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오늘 말씀을 비추면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마치는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 원인인 겁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도 정신 차리지 아니하면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끝나버리는 이런 용두 사미와 같은 그런 어리석은 인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갈라디아 교회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없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초대교회와는 비교되지 않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며 사단의 미혹에 휘둘려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끝내려고 합니다. 예수 십자가를 부인하는 건 아닌데 그거 하나로 충분하지 않다고 계속 다른 것을 같이 붙으며 순전한 복음을 왜곡 변질 시키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성령으로 끝내는 인생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렇기에 내가 어떻게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 되었는가….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분명히 믿음으로 이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고 내가 선행을 해서 내가 얻은 공로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일 뿐이다…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겁니다. 내가 철저하게 하늘의 능력과 은혜만을 붙들고 살아가는 싸움, 나를 끊임없이 내려놓으며 오직 성령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십자가 복음만을 붙드는 싸움을 벌이며 성령으로 시작한 나의 믿음 생활이 성령으로 끝나고 마무리 되도록 그 처절한 싸움을 오늘도 벌이십시오. 이것을 붙들고 오늘도 싸워가는 삶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내 신앙 생활이 성령으로 끝나기를 사모하며, 내 인생 끝에 남는 것은 구속한 주만 보이는 역사, 십자가 복음 하나만 남는 그 귀한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 생활의 결론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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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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