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참 사랑했던 빌립보 교회는 기쁨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복음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교회였고 함께 영적으로 교제하는 귀한 교회였기에,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뻐하고 감사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영적으로 지금 큰 도전에 빠져 있었는데 바로 한 마음과 한 뜻을 같이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영적 지도자 아래 한 마음으로 보이지 못하고 교회 안의 갈등과 반목, 주도권 싸움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뿌리에는 로마의 위를 지향하는 문화와 힘과 권력을 절대화 하는 문화에 철저히 젖어들어 교회 안에서도 그런 힘이 충돌하며, 주도권 싸움을 통해 교회에서 기쁨을 잃어버리는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래서 2장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너희가 낮아지고 겸손하며 죽기까지 순종한 주님을 붙들고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율법주의를 벗어나고 넘어서야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풍성해 누린다는 것을 강조하는 실천적인 권면이 바로 3장 말씀입니다. 신앙 생황에서 주 안에서 주시는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는 또 한 가지의 도전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경계하고 멀리하라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할례파들입니다. 할례파는 십자가 복음 하나 만으로 불충분 하다고 생각해서,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회심한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의 전통인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강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 받기 위해서 너희는 외적인 할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복음적 질서 대신 율법적 본능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자, 복음을 흐리고 왜곡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율법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기에 이토록 과격한 말인 “개들을 삼하고 행악자들을 삼가라”고 강조합니다. 그 사람들을 사도 바울은 욕에 가까운 말들—개들, 행악자들—을 하면서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왜 율법주의자들, 할례파들이 개들이며 행악자가 되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음으로 영접하여 그 십자가 하나로 충분한 인생, 그리스도의 보혈로 충분한 인생이 아닌, 자기 의를 구원의 조건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할례 받았다는 자기의 외적인 증거를 가지고 와서 자랑하는 것이고 마치 그게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만 교회 역사를 보면 한동안 세례가 구원의 조건이 인 것처럼 강조하여 세례 받지 아니하면 구원 못 받은 거라고 주장하여 교회를 흔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한동안은 방언 같은 외적 증거를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주장하며 교회를 흔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례가 되었던 할례가 되었건 방언이 되었던, 그런 것들이 우리 영성 생활에 귀하고 좋은 도구인 건 분명하지만 그것이 구원 받는 조건이 된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순전한 복음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 받음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으로 충분하고 그 복음으로 충분한 인생이 되어야지, 거기에 자꾸 외적인 증거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싶은 것, 그게 다 모양은 다르나 똑같은 율법주의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비유의 큰 아들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이 자기 자랑에 공로를 드러내며 할례를 마치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본질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교회 안에 새신자들을 오히려 끌어내리고 망하게 하는 자들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력한 어조로 주 안에서 기쁨을 빼앗아 버리는 율법주의, 할례를 행하면서 몸의 표피를 잘라내는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을 삼가라고 강조합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곧 외적 증거가 아니라 내적 증거를 복음 안에서 정확하게 붙드는 게 참된 할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신앙 생활하면서, 내적 할례 받은 증거로 성령으로 봉사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봉사라는 말이 service인데 바로 예배가 service이지요.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 드리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게 진정한 구원 받음을 확증하는 내적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할례 받음 자체를 해당하는 게 아니라, 나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계시며 역사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만을 끊임없이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게 마음에 할례 받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할례를 행했어도 내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고 정욕이 가득하고 자아 중심성의 악한 죄성이 여전히 꿈틀꿈틀 거리는 것을 철저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본성을 마음 속에서 매일 잘라내며 십자가 은혜에 매여 십자가 앞에 오늘도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이 진짜 할례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물을 타고 왜곡하는 율법 주의자들을 개들이라고 말하고, 행악자라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사도바울의 그 마음을 읽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선명히 고백하며 영접하는 대신, 외적인 어떤 껍데기 것을 가지고 자꾸 구원을 조건으로 만들려고 하는 모든 시도를 사도 바울은 개들, 행악자들 이라고 강력 경고하는 사도바울의 외침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참된 기쁨과 자유가 부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비결은 어떤 행위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철저하게 믿는 것입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 드리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마음에 할례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주의 귀한 성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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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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