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데 그들을 향해 패역한 백성이자 화를 자초하는 백성이라고 경고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 오죽 하나님이 답답하시고 슬프시면 이렇게 말씀하시는지를 새기기 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인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눈에 보이는 강대국인 애굽을 의지하려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계속해서 경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그들이 왜 하나님 대신 자꾸 애굽을 의지하려 하는가? 그건 그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려는 영적 문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교만한 태도에서 나오는 불신앙임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말씀 자체를 듣기 싫어하는 교만한 자식들이라는 겁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묻지도 아니하며 눈에 보이는 바로왕에게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시하고 무시하고 있으며 그들의 교만과 불신앙의 태도가 결국 망하는 길로 질주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심판을 향해 질주하는 그들의 교만과 불신앙의 태도를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을 내가 취사 선택해 듣겠다는 태도입니다.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거짓된 것을 보여도 되니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선지자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우리가 듣고 싶은 것만 취사 선택해 듣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메세지 중에 죄, 심판…이런 듣기 불편한 말씀들은 전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게 진리냐 비 진리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긍정적인 얘기 좋은 얘기만 해 주고, 위로만 해주고 괜찮다는 얘기만 해달라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부드럽게 sugarcoat해서 내 귀에 듣기 좋게 만든 것만 듣겠다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MSG 친 내용이어도, 심지어 거짓도 상관없으니까 우리를 즐겁게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죠. 이게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왜곡과 변질로 만드는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 하는 백성들이 되게 만듭니다. 바른 길을 버리며 말씀에서 돌이키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만드는 겁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경시하는 백성, 말씀을 취사 선택해 듣는 백성은 결국 하나님에게서 도망가는 인생이 되며 바른 길과 진리의 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길 대중이 분위기 따라 가는 길을 선택해서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만인이 가고 대중이 가는 길, 내가 원하는 길을 가니까 그 끝은 심판과 멸망으로 무너지는 것 밖에 남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안타깝게 그들을 향하여 두 가지를 잊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첫 번째는 그들이 도움이 된다고 착각하며 의지하는 애굽이 얼마나 허무하고 무익한지를 알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을 붙들고 있으면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고 유익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도움은 무익하다는 것, 결국 너희를 함께 망하게 만들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애굽으로 피해 도움을 구하고 붙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 끝은 심판과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너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한 결과이며 하나님을 붙들지 않고 애굽을 붙들 때 너희가 직면하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가 될 거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멸시하며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게 된 영적 결과를 직면하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 날이 도적과 같이 임하며 홍수가 나듯 아무런 대비 없이 완전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 모든 말씀은 아무런 대비 없이 홍수 같이 찾아온 심판 앞에 그들이 처참하게 당하게 되는 현실을 증언합니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빗다가 규격 미달, 함양 미달이면 과감하게 던져서 깨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함량 미달의 하나님 백성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사정없이 깨뜨리고 무너뜨리시겠다는 겁니다.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할 정도로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들이 애굽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버린 결과이며, 하나님의 법도와 말씀을 듣지 않고 떠난 영적 결과임을 엄중히 경고하시는 겁니다. 이 문제가 과연 옛날 남유다 백성들만의 문제일까요? 지금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은 이 경고에 과연 무관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이라는 것이 중요하기에 사람들에게 들리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리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 강조될수록 말씀이 물타기 되는 왜곡과 변질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 마음에 너무 부담 안 주려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노력하는가 하면, 듣기 좋은 말, 부드러운 말, 위로해주고 공감하는 말에만 집중하다 보면 말씀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은 점점 흐려지고 하나님 말씀이 왜곡과 변질이 되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 겁니다. 그게 바로 애굽을 의지하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영적 현주소이자, 하나님 대신 자꾸 세상을 의지하려는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현주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말하라…내가 듣고 싶은대로만 말하라….외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말씀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전하는 광야의 예언자와 같은 선지자의 용기는 때로는 미움 받을 용기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부드럽게 심지어 그게 거짓말이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내가 듣기 좋은 얘기, 내가 원하는 얘기만 해달라는 민심의 소리를 넘어 진리와 하나님 말씀에 직면하라 외치는 것은 때로는 미움 받을 각오를 하는 용기입니다. 잠잠히 조용히 있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을 신뢰할 때 그 뜻가운데 조율되어 힘을 얻게 되는 백성이 하나님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원하지 않고 거절할 때, 하나님 대신 세상을 의지할 때,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세상의 말에 휘청거릴 때, 결국 아무 유익도 없는 커다란 애굽을 붙들고 함께 멸망과 심판의 길로 질주하는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과 똑 같은 인생이 된다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 심판에 직면하는 여리고성으로 가는 기차에 앉아 같이 망하는 비참한 인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은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경고를 나와 무관한 이야기로 듣지 말고,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고 나에게 주시는 경고로 알고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취사 선택하지 말고, 내 귀에 듣기 좋은 말씀이 아니라 나를 찌르고 깨우치는 진리와 참된 말씀 앞에 내가 엎드리고 순종하기 원합니다. 참된 말씀 앞에 우리가 굴복하며 그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바른 길을 나아가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기를 열망하십시오. 그럴 때에만 허망하고 무익한 세상을 붙들고 의지하며 심판과 멸망에 직면하는 이 비참한 결과를 피하게 될 줄 믿습니다. 나를 도와주고 건져줄 것 같이 보이는 애굽의 도움, 세상의 도움, 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의 모든 도움들은 결국 헛되고 무익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세상에 인생을 믿고 의지하려는 어리석음에서 건짐을 받고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고 힘 되심을 믿으며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바른 길을 나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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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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