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남유다와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미 이방인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고 심판에 직면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국가적 위기 가운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땅에 던져 버리고 주변 나라들과 사망으로 맺은 언약을 붙들고 안전할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제사와 예배는 겉으로 드릴지 모르나 하나님을 실제로는 믿지 않고 하나님을 실제로는 의지하지 않고 기대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닌 눈에 보이는 주변 나라들과의 언약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을 보장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헛되고 헛되며 그 끝은 결국 능욕과 수치와 심판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아주 명료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화 있을 진저…”라는 경고로 시작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사랑을 부어주기를 기뻐하시고 축복하기를 즐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아끼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시고 안타까우시면 그의 백성들에게 패역한 자식들이라 부르시며 “화 있을진저” 라고 경고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죠. 패역하다는 것은 사람의 마땅한 도리와 순리를 거스르는 악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구별된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마땅한 도리와 순리를 거스르는 악한 자들이 되어 화를 자초하는 자들이 되어버린 이 슬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 앞에 화를 자초하는 삶 첫 번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지 않은 계교입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 가운데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계획을 하고 고민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통과해야 되는데 하나님을 통과하지 않은 잔꾀를 부리고 거기서만 내 머리를 굴리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순리를 거르스는 패역하고 화를 자초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내 인생의 계획과 결정 모든 것은 하나님을 통과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 열심도 내 헌신도, 내 결정과 계획도 모두 하나님을 통과한 것이 됐을 때 그게 나에게 가치 있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과 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나의 삶을 교만으로 이끌고, 나를 위한 기념비를 만들게 하며, 결국 내 인생을 무너뜨리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 급박한 위기 상황에도 하나님에게 묻지 않는 겁니다. 국가적 위기 상태에 빠졌는데 남유다와 예루살렘은 전혀 하나님께 자문을 구하지 않는 겁니다. 교만하면 다른 사람의 얘기도 하나님의 얘기도 듣지 않고, 하나님께 여쭤 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문을 구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답을 해 주실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이런 식으로 무너지고 있으니 얼마나 애가 타시고 슬프시겠습니까?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패역한 백성들아, 이 화를 자초하는 백성들아….경고하시며 이렇게 슬프게 탄식하시는 겁니다. 그들의 하나님 앞에 화를 자초하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은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땅에 던져 버리고 주변 나라들이 우리를 구해주고 보호해줄 것으로 착각하며 계속 언약을 맺고 조약을 맺는 겁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나라가 풍전등화에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안 보이고 주변의 강대국들만 보이니까 그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구원하시고 지키실지를 전혀 고민하지 않는 겁니다. 영의 눈이 닫힌 채, 육신의 계산에 이끌려 눈에 보이는 힘을 쫓아 강대국 애굽과 강대국과 그냥 언약을 맺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않은 상태로…. 그리고는 우리는 안전할 거야….괜찮을 거야 착각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은 약속들이 우리를 지키고 세우고, 남유다에 피난처가 될 거라고 안심하고 있는 자체가 패역과 화를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 결과 계속해서 죄에 죄를 더하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인생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죄가 죄를 더하고, 회개하지 않는 죄가 계속 쌓이는 인생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패역한 인생, 화를 자초하는 인생이 되어버린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너무나 슬프고 아프신 겁니다. 그들의 하나님 앞에 화를 자초하는 세 번째는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해지려는 발버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와 예루살렘은 스스로 강해지려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함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강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 그분의 강함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백성이 지금 하나님이 아닌 바로의 세력안에 기생하는 겁니다. 세상을 대표하는 애굽의 바로왕 앞에 굽신 거리며 바로의 세력이 돼서 스스로 강해지려고 발버둥치는 겁니다. 우리는 스스로 강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스스로 강하고 싶어서 그렇게 발버둥칠 뿐입니다. 겉으로는 내가 스스로 강한 것처럼 뻐기고 착각하며 살지만, 실제로는 내 안에 그 힘과 능력이 없음을 알기에 또 주변 나라 애굽을 붙들고, 바로왕의 세력 안에서 기생하며 스스로 강한 척, 목에 힘주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애굽의 힘에 기생해 스스로 강한 척 착각하면서 동시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애굽의 그늘에 피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아닌 애굽이 인생에 기대고 의지할 곳, 피할 그늘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피할 그늘과 피난처가 되시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시하고 무시하며, 세상으로 대표하는 애굽의 그늘에 피하고 애굽이라는 피난처에 들어가 안식을 얻으려 하니….이게 하나님을 얼마나 슬프게 하는 일이겠습니까? 이게 바로 패역한 삶, 화를 자초하는 인생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거룩하고 구별되게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 거룩하고 구별됨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젖어 살게 될 때, 세상에 끌려 다니며 살게 될 때 결국 하나님의 순리를 거스르는 패역한 백성이 되고 화를 자초하는 백성이 되어 버림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통과하지 않은 나의 노력과 열심, 하나님을 통과하지 않은 나의 계획과 결정은 나에게 안전과 쉼을 주는 게 아니라 망하게 하는 첩경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않은 언약은 나를 사망에 묶는 멸망의 첩경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아닌 바로 앞에서 기생하며,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공급받는 대신 스스로 강해지려 발버둥 치는 인생은 망하는 첩경입니다. 하나님 대신 애굽의 그늘에 피하고 애굽을 피난처로 삼으려 한다면, 하나님에게 묻지 않는 인생이 된다면 그 끝은 심판과 멸망밖에 남지 않은 화를 자초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유익할 줄 알고 안전할 줄 알고 애굽이 결국 너희에게 수치가 되고 능욕이 될 것이라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주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며, 패역의 길과 화를 자초하는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그늘에 피하며,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는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함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1월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