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9장은 히스기야 왕에 대한 말씀을 증언합니다. 사실 히스기야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유명한 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정도가 아니라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의 이름과 함께 나오며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비슷할 정도로 좋은 평가, 대단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왕입니다. 그런데 놀랍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렇게 위대하고 놀라운 히스기야의 아버지는 가장 악한 왕, 적극적으로 악을 행했던 왕 아하스였다는 것입니다. 좋은 왕이었던 아버지 요담 밑에서 망나니 같은 아들 아하스가 태어난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최악의 왕 아하스 같은 아버지 밑에서 히스기야 왕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사실 좋은 아버지 요담 밑에서 말도 안되는 아들인 아하스가 나오는 것은 좀 설명이 되긴 합니다. 왜냐하면 요담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멀리 했죠. 좋은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멀리하며 무너져 백성들도 악한 길로 행하고 그러니까 결과론적으로 아하스와 같은 망나니 아들, 아주 악한 왕이 태어날 수도 있다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할 정도로 악한 왕이었던 아하스 다음에 이렇게 그 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좋은 왕인 히스기야가 나올 수 있는지…이건 정말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자녀라는 게 부모를 보고 영향 받고 자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보고 따라하는 거 있어요. 자녀들에게 환경의 영향, 부모의 영향이라는 것은 자녀들에게 너무나 큰 영향이 있기에, 심지어 쓴뿌리는 되물림 된다는 말도 쉽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역대기 말씀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런 막강한 부모와 환경의 영향을 넘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이 환경과 부모의 영향을 넘어서는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좋은 사람들, 신앙에 바로 서 있는 사람들이라 해서 내 아들 딸이 자동적으로 좋은 사람/ 신앙에 바로 서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내 부모가 불신자이고 심지어 악한 사람, 소망이 없이 사는 것 같은데 그 다음에 자녀들이 신앙을 붙드는 놀라운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인간적인 방법과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이자 역사하심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내 육신의 부모님이 이렇게 아하스 왕과 같이 나에게 신앙의 모범을 주지 못하며 심지어 내 부모가 부끄러운 분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정말 나에게 나쁜 영향력만 많이 주고 상처와 아픔 투성이의 인생을 만들게 한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하스 왕과 같이 나에게 신앙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상처와 아픔이 훨씬 많이 준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그 상처와 아픔을 되물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이것 가지고 내가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을 넘어 내가 히스기야 같이 기적으로 주님의 보혈이 덮이는 인생, 신앙의 축복의 1세대가 될 수 있음을 믿는게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은 그 부모에게서 받은 그 상처와 아픔을 되물림 하는 게 아니라, 십자가 보혈로 덮여 히스기야 왕과 같은 기적의 영성을 달라고 기도하며 부르짖기 원합니다. 히스기야의 영성이란 무엇입니까? 부모님의 그 적극적으로 악한 삶과 영향력이 나의 신앙을 흔들지 않고 내 삶에 상처와 멍으로 남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보혈로 풍성히 덮히는 영성입니다. 망나니 같은, 적극적으로 악한 왕 아하스로부터 이렇게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히스기야가 태어나 자라게 된 것 같은 그 기적의 역사가 나의 인생 가운데도 경험 될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그게 저와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 간절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부모의 악한 영향력으로부터 그 잘못된 삶으로부터 물들지 않고 상처를 넘어서는 인생, 축복의 1세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부모의 입장으로서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내가 신앙 생활을 잘 한다고 내 자녀가 자동적으로 신앙 생활 잘하고 좋은 자녀 된다고 착각하는 것도 교만한 일이고 그리고 내 자녀가 좋은 자녀 안되고 신앙 적으로 방황하는 것 때문에, 그게 모두 부모의 탓이라고 끌어 안고 죄책감 가운데 살아가는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환경 결정론자에 모든 것들을 부모 책임으로 몰아가고 자책하려 합니다. 너무나 쉽게 인과 관계를 통하여 나와 자녀의 관계를 설정하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늘 자녀를 양육할 때 내 맘대로 키울 수 없음을 믿으며 내가 자녀를 소유한 게 아님을 믿으며 이 시간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신앙 생활을 잘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자동적으로 우리 자녀가 잘 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마시고 간절히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나의 자녀를 붙들어 주셔서 나보다 나은 신앙을 갖도록 나를 뛰어넘는 신앙 생활을 갖도록 우리 자녀를 붙들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위대하고 놀라운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가 그렇게도 악한 아하스였다는 것을 깊이 묵상하기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으로, 눈에 보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너무 쉽게 결정하거나 재단하지 마십시오. 최고의 부모 밑에서 최악의 자녀가 나올 수도 있고, 최악의 부모 밑에서 최고의 자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내 부모님이 이렇게 잘못되고 악하고 무너지고 나를 힘들게 한 부모라면 이 시간 내가 히스기야 같이 부모의 독과 상처가 나에게 되물림 되지 않고 주님의 은혜로 온전히 덮여 놀랍게 변하는 기적이 나에게 경험되게 해달라고, 히스기야의 기적을 달라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반대로 내가 아무리 잘해도 우리 자녀가 안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부모의 책임이라며 자책하지 마시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녀임을 고백하며 주님께 나의 자녀를 맡기며 간절히 간구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내 환경과 상황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을 넘어 놀랍게 쓰시는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히스기야의 기적을 맛보며 우리가 끊임없이 기도하며 나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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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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