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9장 말씀은 다시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슬퍼도 너무 슬픈 겁니다. 그들이 겉으로 제사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안식일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 드린다고 모여 있는데도 하나님은 슬펐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 아리엘을 바라보며 하나님은 슬퍼하셨는데, 아리엘은 “하나님 제단”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곳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 아리엘이 광의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루살렘이라는 곳은 단순히 남유다의 수도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세워 주신 도성이자, 그들의 영적인 고향,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제사 드리는 중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남유다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예루살렘의 대표 아리엘을 바라보시며 그토록 슬프셨던 것입니다.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긴 하는데 겉으로 예배를 드리기는 하는데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예배, 하나님과 무관한 예배를 계속 드리고 있고, 결국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껍데기만 남은 형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참담한 영적 상태가 되었는데도 애곡하지 않고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ok…이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남유다 백성들의 영적 상태, 심판에 직면하기 일보 직전의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오늘 말씀은 “깊이 잠들게 하는 영에 빠진 마비 상태” 라고 증언합니다. 그렇게 깊이 잠든 것 같은 영적 마비 상태가 되어도 그냥 망하게, 임박한 심판에 직면하도록 두신다는 겁니다.
깊이 잠들어 있는 영적 마비 상태에 빠진 남유다의 세 가지 현상을 오늘 말씀은 증언하는데, 이 세가지는 망하기 일보 직전에 나타나는 전조증상으로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경고이자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서두에도 등장하는 마음이 빠져도 상관 없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예배와 제사를 드리는 마음이 빠져도 아무런 문제 의식도 없고, ok…상관없는 겁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하나님과 상관없이 드리는 예배였고 마음이 빠진 예배였는데도 그들은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ok 였다는 것이 하나님은 너무 슬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바라보시는 건 우리 마음인데, 마음 없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는 겁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 같은데 너희 예배는 마음은 멀리 떠난 입술만 구원받는 예배다…그게 하나님의 엄중한 평가였습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영적 현실은 그들은 그런 위선의 예배로 가득한 심각한 영적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문제 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게 하나님이 너무 슬프신 것입니다. 위선의 예배와 불신앙 둘 다 나쁜데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슬프시면 차라리 불신앙이 위선의 예배보다 더 낫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위선의 신앙은 내가 마음 없이 몸만 와있고 입술로만 고백하는 예배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인지 조차 모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불신앙에 빠져 있으면 적어도 나는 하나님과 무관하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나님 안 믿고 멀리 떠나 있다는 사실은 알기에 돌아올 소망이라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게 바로 깊이 잠든 것 같은 마비 상태에 빠진 남유자의 영적 현주소였던 것입니다. 두번째, 깊이 잠들어 있는 영적 마비 상태에 빠진 남유다의 현상은 하나님 말씀이 그저로 글씨만 보인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모든 계시 말씀이 그저 봉인된 말처럼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모든 계시 말씀…이라는 부분을 영어 성경으로 보니까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비전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숨결 대신 성경이 그저 책에 있는 글씨가 되어버린 겁니다. 성경은 동결 건조 간편식과 비슷해서 그냥 보면 딱딱한 스프들과 같이, 글씨로만 보이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건조 스프를 뜨거운 물에 넣고 끓이면 너무 맛있는 양식이 되듯 마음에 넣고 품고 있으면 그게 생명의 양식 되는 겁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숨결과 마음이 전해지는 하나님의 비전과 계시로 임해 생명의 숨결이 될 때 내 영혼을 깨우고 내 영혼을 채우게 됩니다. 그런데 깊이 잠들게 하는 영에 빠져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읽는데 말씀이 그저 글로만 보이는 겁니다. 다가올 미래의 꿈과 이끄심 대신 그저 눈에 보이는 현실밖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적 마비에 빠져 버린 남유다의 현주소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맹인 정도가 아니라 독주에 취하고 비틀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히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고 성경은 혹독하게 지적합니다. 세 번째는 깊이 잠들어 있는 영적 마비 상태에 빠진 남유다의 현상은 하나님은 안 보이고 사람들만 보이고 강대국들만 보이는 겁니다. 지금 남유다의 처한 상황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험과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험과 어려움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라고 그렇게 외치는데 그들은 뭐만 보이는가 하면, 힘있는 주변 강대국들만 보이는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앞에 두고 힘있는 주변 강대국들만 어디 기댈까…기웃거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거룩하고 구별된 남유다 백성들이 그저 유력한 사람만 보고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만 보이고, 힘있는 강대국들만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내가 어디에다 줄을 대야 할지 고민하고, 어느 나라에 줄을 대야 할지는 고민하는데, 전혀 하나님에게 줄을 댈 생각 하지 못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안보이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보이기 때문에….하나님은 안보이고 주변 강대국들만 보이기 때문에…. 그게 바로 그들이 멸망하기 직전에 그들에게 처한 영적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남유다는 곧 임박한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 날은 지진과 해일이 오듯, 쓰나미가 오듯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나게 될 것임을 경고하는 겁니다. 깊이 잠들어 있는 영적 마비 상태에 빠진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너무 슬프게 했습니다. 마음이 빠진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는 영적 마비상태,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그저 글씨로만 보이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깊은 잠에 빠진 상태, 하나님이 안보이고 사람들만 보이고 처한 환경만 크게 보이는데도 아무 상관 없는 남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은 너무 슬프신 겁니다. 이 말씀의 경고가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분명한 경고가 되기를 원합니다. 너희 상황이 그렇게 위기이고 어렵다고 얘기하는데 여전히 하나님은 안 보이고 사람만 보이더냐? 여전히 사람의 힘만 쫓아다니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은 보이지 않더냐? 마음이 빠진 예배를 그렇게 드리면서 상관없다고 착각하는 너희의 영적 둔감함은 과연 어디서 위기 의식을 찾느냐? 그 하나님의 질책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찌르는 말씀으로 두기 원합니다. 내가 마음이 빠진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문제 의식을 깨닫고 그게 잘못된 줄 깨닫고 경각심이 생기면 소망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그저 글씨로만 보일 때, 그게 잘못된 줄 알고 깨닫고 경각심이 생기면 소망이 있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이 안보이고 사람들만 보이고 처한 환경만 크게 보일 때, 그게 잘못된 줄 깨닫고 경각심이 생기면 소망이 있는 겁니다. 바라기는 마음을 드리는 예배로 돌아가며 계시의 말씀이 회복되며, 하나님이 보이는 신앙생활을 향하여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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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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