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에베소서 말씀 가운데 가장 핵심에 해당되는 말씀으로 많은 분들이 암송하기도 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원이 무엇인가를 이렇게 명료하게 요약한 성경 말씀이 없을 정도로 귀한 말씀입니다. 먼저 구원의 시작은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직면하는 것이고, 그 이후에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마음에 고백으로 담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백이 이 세 절의 말씀을 내 마음에 담아 입술에 고백으로 선포되는 귀한 역사가 있기 원합니다. 첫번째로 내가 어떤 존재였는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그리스어로는 포이에마…라는 단어를 쓰는데 즉 하나님의 masterpiece, 걸작품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걸작품이다…이게 내 존재의 본질이고 원래 나 다움입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태어났냐 하면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걸작품인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착하고 좋은 일이 아니라 왕이신 예수님이 나에게 맡긴 사명이자 명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며 사는 삶이 선한 일이고, 이런 삶이 실제적인 나다움 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왕의 사람, 이것이 바로 뭐냐면 죄를 짓기 전 우리 원래 창조의 모습이었습니다. 나의 진정한 모습, 진짜 나다움을 발견하는 시작은 내가 원래 하나님께서 걸작품으로 이 세상에서 보내심을 받고 지으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진정한 나 다움을 깨닫지 못하는가? 왜 하나님의 걸작품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어버렸는가? 에베소서 2장 말씀을 통하여 배웠지만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본질상 진노의 자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죄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죠. 내가 내 나 다움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 내가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것을 믿고 누리지 못하는 이유, 작품이 아닌 상품과 같이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신경 쓰며 살아가는 이유, 늘 가면과 껍데기를 쓰고 가짜 인생을 사는 이유, 그 모든 게 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온 죄 문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며 하나님과의 연결이 깨졌기 때문에 우리는 나 다움의 본질을 다 상실하고 잃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나를 기쁘게 한다는 명분으로 실제로는 사람들 눈치 보며 세상 눈치 보며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내가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자라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것이죠. 이렇게 대단한 존재감, 진정한 나 다움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가…그것이 죄 때문이라는 것, 죄가 나를 지배하며 하나님과 모든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구원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아야 될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내가 구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복음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망가진 인간, 모든 것이 끊어지고 단절된 채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을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우리를 향한 구원 계획을 완성해 주신 것, 그것이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나 다움을 잃어버린 채 걸작품으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으심과 보내심을 망각한 채 죄 가운데 헤매는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가? 세 가지 단어를 꼭 마음에 새기시기 원하는데 은혜에 의하여 (by grace), 믿음으로 말미암아 (through faith)…구원받음 (being saved). 나는 은혜에 의하여, 그 하나님 은혜를 향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거예요. 구원은 철저히 나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의 반응과 태도로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선물과 같이 일방적으로 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구원은 내 땀과 노력의 댓가로 얻는 게 아니라, 보상으로 받는게 아니라, 이유 없이 자격 없이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what I done 내가 어떠한가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what Jesus has done 예수님이 어떠하신가를 통해 결정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종교들은 구원에 있어서 자력구원을 추구합니다. 내가 스스로 무엇을 열심히 하고 이루어서 그 대가와 보상으로 얻는 결과가 구원이라는 가르침이죠 . 우리는 그런 자력구원을 굉장히 합리적이라 여기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자력 구원, 내가 스스로 노력한 결과를 내가 얻는 것이 구원이다….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근데 성경은 철저히 자력 구원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타력 구원이란 구원이 나를 넘어서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실존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 익사 직전이기 때문에 스스로 헤엄쳐 나오는 게 아니라 외부로부터 건짐을, 외부로부터 생명 주심을, 회복시켜 주심을 받는 거라는 거예요. 그게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나를 향한 믿음을 강조해요. 나를 믿으라는 겁니다. 내 능력을 믿고, 내 잠재력을 믿으라는 겁니다. 내 능력과 잠재력이 다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것은 언제 유용하냐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입니다. 성도의 신앙 생활이란 나를 믿는게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겁니다. 내 힘과 능력을 믿는게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을 믿는 겁니다. 내가 어떠한가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조건이 없었고 나에게는 원인이 없었고, 전적으로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구원받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를 꼽으라면 저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은혜는 받는 것입니다. 은혜는 선물로 주어지는 겁니다. 은혜는 예수님을 통해 내가 건짐받고 생명을 받고 회복함을 받는 거예요. 자격 없는 나에게 일방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자, 이 은혜를 우리는 내면화하고 현재화 하며 사는게 신앙 생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은혜 잊어버리면 다 끝나는 겁니다. 은혜 잃어버리면 생명이 메마르는 것이고, 복음이 종교가 되는 겁니다. 내가 은혜 받은 존재라는 것을 자주 망각하고 사는데, 매일 아침 하루의 시작을 새벽 기도를 통해 내가 은혜 받은 자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잊지 않고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복된 삶의 시작입니다. 구원은 일방적 선물로 받은 것이기에, 나를 자랑하면서 내 힘과 능력을 자랑하면서 사는 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자랑하며 사랑하는 겁니다. 나는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선물로 받은 자라는 것을 늘 깨닫는 삶이 은혜 받는 삶,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자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작품, 걸작품입니다. 진정한 나 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지으심을 받은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야만, 꼭 붙들어야만 잃어버린 나의 진정한 나 다움, 걸작품 되는 하나님의 형상됨을 회복할 수 있으며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지으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회복하게 됨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없으면 나는 절대로 나 다움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붙드십시오. 예수님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나에게 임할 수 없다는 것을 붙들고 살아가십시오. 나를 구원하신 일방적인 사랑, 나를 넘어서는 사건인 사건, 외부로부터 나를 건져 주시고 생명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그 주님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있게 했음을 잊지 말고 늘 내면화 시키고 현재화 시키십시오. 내 삶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하신가를 붙들며 예수님만 자랑하며 예수님을 드러내는 은혜로 구원 받음의 고백이 선명하고 분명한 성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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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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