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7장을 통하여 요담왕에 대해서 오늘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담 왕은 25살에 왕이 올라 예루살렘에서 16년 동안 왕으로 치리한 남유다의 왕입니다. 그 왕에 대한 평가는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정도를 행 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 졌다고 평가합니다. 전반적으로 요담은 좋은 왕이었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왕이었으며 말씀의 정도를 행하는 왕이었습니다. 정도를 행하며 하나님이 강성하게 하신 증거가 몇 가지 나오는데 벽까지 나오는데 첫 번째는 그가 여호와 성전의 윗문과 망대를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담왕을 통하여 놀라운 승리를 주시는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암몬 자손과 싸워 이기고, 많은 조공을 받게 되는 큰 승리와 강성함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강성 해지고 나서 그 아버지와 같이 교만하며 무너지지 않았고, 후반전이 나빴던 얘기가 등장하지도 않죠. 아버지보다 어떻게 보면 나은 왕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긍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요담왕에 대한 딱 한 부분의 큰 문제를 오늘 말씀에 정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지 않은 겁니다. 왜 요담왕는 여호와의 전에 들어 가지 않았는가? 그 아버지 웃시야 왕이 성전에서 한 큰 실수를 본 겁니다. 후반전에 영적 교만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 이유는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이 해야 될 일을 분별없이 본인이 하면서, 향로를 만지고 막아선 제사장에게 화를 내서 나병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아들인 요담은 아버지가 평생 나병으로 혼자 지내는 것도, 모든 뒷수습을 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요담이 왕이 되고 나니까 완전히 오버하고 정반대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아예 여호와의 성전 자체를 가지 않는 거예요. 물론 그 아버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좋은 다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아버지와 같이 그런 실수를 하는 것이 두려워서 였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에 이유가 됐든 간에 왕으로서 여호와의 성전 자체를 오지 않는 것은 교만 일 뿐 아니라 온 백성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문제였다 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남유다의 왕은 한 개인이 아니라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대표 선수입니다. 그 대표 선수가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 자체를 아예 드리지 않기 시작한 겁니다. 아버지가 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하는 거에 대한 그 오버 리액션을 하면서… 성경은 이것을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죠. 아버지 웃시야 왕은 성전에 자주 와서 제사 드리고 예배 드리다가 바운더리를 잃어버리고 무너진 것이고, 그 아들 요담왕 정반대의 극단에 서서 아예 여호와의 전에 얼굴도 비치지 않은 겁니다. 자기를 보호하고 백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런데 그것이 보호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영적으로 무너뜨리고 백성들을 무너뜨리게 만든 거예요. 아버지와 같이 저렇게 선을 막 넘으면서 무너지는 왕 되지 않겠다…정확하게 바운더리를 지키겠다는 좋은 의도로 성전에 안 왔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왕이 하나님과의 예배에서 멀어진 것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에게서 고스란히 영적 문제로 드러난 것입니다. 요담왕이 성전에 들어가지 않은 영적 결과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방자하게 행하고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악을 행하고 자기 스스로 산당에서 우상 숭배하며 무너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다음 왕은 완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 등장하게 되는 초석을 만들게 된 게 바로 예배를 멀리한 왕 요담왕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긴 코로나의 광야를 2년 째 지나가면서 타인의 건강을 위해서 대면 예배에서 멀어지는 것이, 현장 예배를 자제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됐습니다. 우리가 대면 예배를 못 드릴 수 있는 사항이 있었고, 정말 위험한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지병이 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올 수 없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온라인으로 예배 드릴 수 밖에 없는 분들을 모두 축복하고 온라인 예배 가운데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주님께서 정말 다 아십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 케이스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어쩔 수 없이 내가 예배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인가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는 이 요담 왕과 같이 내 상황과 환경을 정당하며 올 수 있는 상황인데도 여호와의 성전을 들어가지 않고 성전을 멀리 떠나는 것이 고착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다른 이유가 있다면, 나에게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혹시 요담왕과 같이 예배 자체를 멀리하게 되고 떠나게 되는 영적 문제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가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요담 왕은 왕으로서 여러 좋은 평가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약점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안 좋은 영적 해악은 예배를 오지 않는 것이, 예배를 멀리하는 것이 고착화 되는 거예요. 그 영적 결과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이 코로나 가운데 예배에서 멈춰지고 예배에서 멀어지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며 여호와성전에 들어가지도 않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결과적으로 내 영적인 삶도 무뎌지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영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예배와 말씀보다 중요한 게 없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어려워도 예배를 가까이 하고 성전을 가까이하는 이 영적 본질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요담왕을 통하여 반면교사를 삼아 이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더 본질을 붙들고 여호와의 성전에 은혜를 붙들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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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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