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 됬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도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나서 남유다는 멸망을 피해간 것을 바라보면서 그런 착각이 더 확고해져서 하나님께 선택 받은 이스라엘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렇게 착각 속에 살고 있던 남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끝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남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보면 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비참하게 모든 것을 준비없이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끝이 있고 나라에도 끝이 있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끝이 있는데 마치 끝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다가 갑자기 찾아온 마지막에 우리는 늘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 왕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이 세운 허수아비 왕입니다. 여호야긴 왕을 백일 천하 만에 끌어내리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간 후바벨론이 허수아비로 세운 왕이 바로 시드기야왕입니다. 그러면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과 좋은 관계 속에 조율을 잘 하면서 후일을 도모 했어야 하는데, 그는 정반대로 또 다시 애굽에 기웃거리게 됩니다. 예레미야 37장을 보게 되면 선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례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 왕에게 남유다가 살 길을 제시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에게 회개하는 심정으로 돌아와 바벨론 왕과 군대에 항복하고 조율하는 것이 남유다가 사는 길이라고 경고했는데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길 거절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하여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대신 애굽 왕인 호르바 사람에게 사자를 보내서 우리를 도와 달라며 말과 군대를 요청합니다. 시드기야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 가운데 왕이 되었는데 정신차리지 못하고 이전 왕들과 같이 하나님 앞에 계속 악을 행하며 불순종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보이는 세상의 힘을 붙들고 계속 줄타기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입장에서는 허수아비 같이 세운 시드기야가 그렇게 반역해서 애굽의 편을 들고 애굽에게 군대를 요청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이 작심하고 이 배신자를 치러 올라오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1년 반 가까이 예루살렘 성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모든 군대를 동원해서 포위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1년 넘게 포위하고 있으니 안에 백성들은 먹을 것이 떨어져 다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기근이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돌아가면서 삶아 가지고 먹는 이런 끔찍하고도 처참한 일이 그 성 안에서 벌어지게 될 정도로 백성들이 그 가운데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결국 1년 반 만에 성문이 뚫리게 되고 성벽이 파괴되게 됩니다. 그때가 언제냐 하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정확하게 143년 지난 후이며, 남유다가 바벨론에 이렇게 처참하게 멸망하는 겁니다. 또한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은 도망가다가 결국 바벨론 군사들에게 잡히고 맙니다. 얼마나 비참하게 되냐하면 그 아들들을 먼저 시드기야 왕 앞에서 하나 하나씩 죽입니다. 끔찍하게 그 아들들이 죽어가는 모습들을 다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창을 통해 시드기야 왕의 눈을 뽑아 버립니다. 그리고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죽입니다. 이게 남유다 마지막 왕의 비극적인 결말이었습니다. 이 비극적 말씀을 통해 우리가 열왕기 상하의 전체적인 큰 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기 원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망하게 되었는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처절하게 무너지게 되었는가? 기억하시겠지만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지 않는 왕인 하나님을 모시는 대신에 다른 나라와 같이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왕이 있어야 다른 나라 같이 그 왕이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고 인도하고 구할 거라고 아우성을 쳤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눈에 보이는 왕을 찾은 그 끝에 결말이 바로 오늘 남유다의 멸망이라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왕은 백성들을 보호하고 인도하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파멸과 멸망으로 이끄는 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의 결말이 이런 패망과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지 않고 눈에 보이는 왕이, 눈에 보이는 힘과 권세가, 재물과 권세가 우리를 보호하고 인도하고 구할 거라고 착각한 하나님의 백성의 결말이 바로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전쟁의 패전으로 남유다가 망하게 된 결과이며 더 나아가 이게 하나님 앞에 불순종의 결과로 남유다가 이렇게 철저하게 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엄중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주시는 이유는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보이는 세상의 힘과 능력을, 눈에 보이는 왕이나 세상 권력이 나를 지켜주고 보호하고 구할 거라고 착각하며 동일하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왕과 권력을 붙들고, 눈에 보이는 돈과 물질을 붙드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드는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삶인 것처럼 착각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고 너무 나약해 보이는 성도의 삶 가운데 끊임없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눈에 보이는 왕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것,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붙들고 있으면 그게 나를 붙들고 지키고 보호할 거라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끝의 결말은 뭐라는 겁니까? 파멸이고 멸망이라는 겁니다.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은 철저한 불순종의 결과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결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들지 아니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시지 아니하면 그 끝의 결말은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는 것입니다. 남유다의 안타까운 마지막 멸망 이야기를 통하여 내 인생에는 끝이 있음을 알고 늘 조심하며 잠시의 삶을 늘 주님께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새벽에 이렇게 나와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면서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동행하는 그 열망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것을 붙들고 눈에 보이는 사람과 힘을 붙들고 살려 하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십자가 앞에 다시 한번 조율되어 내 삶의 진정한 왕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고백하며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우리도 남유다 백성과 같이 결국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뒤로 한 채 눈에 보이는 왕과 세상 힘과 권력과, 물질을 붙들고 그것이 나를 지키고 보호하고 건질 거라 착각하며 멸망과 파멸로 끝나게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눈에 보이는 세상을 왕으로 모실 때, 말씀에 붙들리는 대신 세상에 붙들리며, 결국 시드기야 왕과 같이 사슬에 묶이고 눈이 뽑히며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기 끌려가는 비참한 인생으로 끝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언제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주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명히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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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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