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스 왕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 7살에 왕위에 올라 기적적으로 40년 동안 왕으로 치리했습니다. 그의 전반전은생명의 은인이자 멘토인 제사장 여호야다의 가르침과 뜻을 따라 하나님께 정말 잘 쓰임 받았습니다. 그 모습이 끝까지 갔으면 참 좋은데 여호야다가 죽고 나니까 그의 후반전은 완전히 변질되고 타락하는 내리막길을 가게 됩니다. 그게 바로 오늘 말씀 역대기 24장 후반부 말씀입니다.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난 이후 요아스 왕은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며 타락과 변질되어버렸습니다. 이게 참 안타까운 일인 것이 요아스의 가장 중요한 치적 중의 하나가 바로 여호와의 성을 중수하고 재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성전은 그냥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손에 건짐을 받아 그 성전에서 숨겨 지내며 7살까지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아스 왕에게는 하나님의 전이라는 곳은 단순히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곳 뿐만 아니라 건짐과 보호하심을 받은 곳이자, 수많은 추억과 애틋한 감정이 있는 것이 바로 성전이었죠. 그래서 아마 왕이 되고 나서 여호와의 전을 중수하고 재건하는데 그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생 후반전에 중수하고 재건 했던 곳, 신앙의 중심이었던 여호와의 전을 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은혜 가운데 내가 왕이 되었구나…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왕이 되고 시간이 지나니까 착각하며 자신이 뭔가 대단한 줄 알고 자신이 뭔가 해보려고 그러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아세라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변질과 타락을 고착과 시키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아스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선지자를 통해 교정하고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요아스가 들을 귀가 없는 것이죠. 요아스의 안타까움은 변질되고 타락했다는 것도 문제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씀 듣기 거절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문제는 타락과 변질 되며 첫사랑을 자꾸 잊어버린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럴 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돌아오게 하기 위해 여러 선지자들의 경고와 말씀을 들려 주시는데 우리가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이죠. 들을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시려고 보내시는 경고의 말씀, 이것을 듣고 얼른 돌아오면 승산이 있고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되는 겁니다. 말씀을 더 깊이 들어가보면 요아스는 듣지 않고 거절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말도 안 되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자신의 은인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인 스가랴가 와서 지금 경고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거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실 것이다…정신 차리고 얼른 하나님께 돌아 오십시오…생명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들은 요아스의 반응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얼마나 듣기 싫었으면 자기 은인의 아들이자 선지자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여호야다의 은혜를 통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 1살짜리 아기를 건져서 살리고 성전에 숨겨서 키웠는데, 배신의 칼을 꽂은 겁니다. 영적인 쿠테타를 일으켜 아달랴를 죽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7살짜리 왕이 제 구실 할 때까지 모든 수발을 다 들어준 은인이 여호야다 아니겠습니까? 그 여호야다를 기억하고 갚지는 못할 망정 그 은혜의 아들을 이렇게 돌로 쳐 죽인다는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아주 악한 일인 것이죠. 이게 하나님을 떠난 배은망덕한 인간, 악한 인간의 실존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배신하고 배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채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을 하는 이런 존재라는 겁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끝까지 거절하고 충돌하고 부딪치며 결국 예수님을 죽이고 마는 유대인들과 이 요아스 왕의 모습이 똑같습니다. 그 마음이 영적 어둠을 붙들고 하나님의 빛을 거절하고 거부하고 충돌하며 진리를 선포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를 돌로 쳐죽이는 그 안타까운 왕…그래서 요아스 왕의 결말은 굉장히 비극적으로 끝납니다. 전쟁에서도 크게 패하고 침상에서 죽임을 당하는, 그리고 다윗성에 장사 지내지 못하는, 왕으로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며 박한 평가를 받고 끝난 왕이 바로 요아스 왕입니다. 역대기 말씀을 통해서 봐도 전반기와 후반기가 너무나 다른, 용두사미의 왕이 벌써 몇 번째 입니까? 이정도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이정도면 이제 반복하지 말아야 되겠다… 생각하면 좋은데 똑같은 패턴의 똑같이 무너지는 것이 이제는 지겹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반복적 패턴이 과거 이스라엘의 왕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사실 저와 여러분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기도합니다. 한결 같음을 가지고 첫사랑의 그 은혜를 끝까지 붙들고 가는 게 그게 잘 안되는 겁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죠.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그 아들을 죽인, 말씀을 거절한 결과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대표적인 왕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아스 왕의 안타까운 후반전을 보면서 우리도 신앙이 이렇게 정신차리지 않으면 변질되고 무너질 수 있음을 늘 염두하며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기 원합니다. 항상 우리는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음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끝에 가서 어떻게 인생이 끝나는지가 내 인생에 결론임을 잊지 말고 늘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첫사랑을 기억하며 그 신앙을 붙들고 끝까지 가는 것이 목적 되시기 원합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며, 날마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평생의 주님을 붙드는 삶의 고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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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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