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다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말씀 초반에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심판과 멸망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으로 주셨는데 왜 22장에서 또다시 말씀으로 주시는가… 에 대한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벨론에 대한 멸망과 심판을 다시 한번 반복해 증언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이유입니다. 주변 나라들의 심판과 멸망에 대한 예고를 들으면서 마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과 무관하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을 위한 하나님이라고 착각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을 구원하신다고 착각하고, 주변나라들의 심판과 멸망의 예언을 들으며 자신들은 심판에서 제외 된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되는 이유와 원인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의 바벨론과 차이가 없이 똑같은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그들의 우상숭배는 결국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자신들의 왕으로 모시지 않은 겁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왕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과 무관하게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 눈에 보이는 나라들을 믿으며 그 나라들의 힘을 등에 업고 무언가를 해보려 발버둥 쳤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주변 나라들을 다 의지했는데 결국 너희가 의지한 나라들은 이처럼 다 망하게 될 것이고, 그들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또한 망하게 되 것임을 잊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주변 나라들의 심판과 멸망에 대해 너희 또한 예외 없이 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큰 그림 가운데 있다는 것을, 심판에 직면해 있는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죠.
어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해변 광야라는 모순과 같은 말로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백성 예루살렘과 남유다의 영적 실체를 비슷하게 “환상의 골짜기”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환상의 골짜기라고 부르시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영적 현실을 지적하는 모순과 같은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얼마나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이 바로 환상의 골짜기입니다. 골짜기는 깊어서 멀리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멀리 보려면 골짜기가 아니라 산꼭대기에 올라가야 합니다. 큰 그림을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기 위해서는 골짜기로 내려 가는 게 아니라 산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환상의 골짜기라는 말은 환상을 본다 말하면서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환상을 붙들고 이 땅에서 거룩하고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야 되는 이스라엘이, 환상을 보기 위해 산 위로 올라가는 대신 골짜기로 내려가는 영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실제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이 하늘에서 주시는 환상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갇혀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이 세상에서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 될 이스라엘, 하나님 만을 온전히 왕으로 모시고 주시는 환상을 붙들고 살아야 될 그들이 지금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세상적으로 살아가며, 눈에 보이는 이 땅에 사로잡혀 살아가며 실제로 하나님의 환상을 하나도 못 보고 살아가는 자들, 그게 바로 환상의 골짜기인 이스라엘의 영적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현실, 환상의 골짜기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그 당시 유대인들을 꾸짖으신 영적 맹인이라 말과 거의 비슷한 말입니다. 그들은 깨어 가장 멀리 바라봐야 될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들의 눈은 가리워서 땅만 바라보고 영이 아닌 육으로만 살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대신 사람들만 의식하며 살아가는 영적 소경인 셈입니다. 그게 바로 지금 심판과 멸망 외에는 남은 게 없는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의 영적 현실이었다는 겁니다. 환상의 골짜기와 같고, 영적 소경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에 영적 현실은 여호와를 앙망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에 따라 이루시는 경영하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남을 오늘 말씀은 엄중히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망각하고 무관하게 살아가는 삶, 하나님을 갈망 하지도, 공경하지도 않는 삶, 이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환상의 골짜기가 된 본질적 문제였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처절하게 망하고 심판받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면 그들이 바라봐야 될 분인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앙망하지 않는 삶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때를 준비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심판이나 예루살렘의 심판이나 둘 다 차별 없이 직면해야 될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임박한 심판과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 날을 준비하며 통곡과 애곡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문이 막히는 반응이 무엇입니까? 내일 죽어도 오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소를 잡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파티 하겠다는 겁니다. 어제 말씀에 다가올 그때를 알지 못하고 먹고 마시고 잔치를 베푸는데 모든 정신이 팔렸던 바벨론이나 내일 죽어도 오늘 고기 파티 하고 포도주 먹겠다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똑같은 겁니다. 머지 않아 결박 당하여 끌려가고,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슬픈 현실이 다가오는데 그들은 내일 죽어도 오늘 그냥 먹고 지내겠다는 겁니다. 영적으로 전혀 대비하지 않고, 그 날이 오는 것을 그냥 무감각하게 보고 살아가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드는 대신 그들은 눈에 보이는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하고 등에 업히려, 애굽을 의지하고 나중에는 바벨론을 의지하고 등에 업히려 했습니다. 결국 그 믿었던 나라들에게 다 배신당하고 피눈물을 흘리고 심판과 멸망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방 나라였던 바벨론의 영적 무지함과 전혀 구별됨 없이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바라보시며 하나님은 정말 마음이 아프신 겁니다. 그날이 곧 오기 때문에 생각하면 통곡하고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임박하게 찾아온 하나님 백성의 심판과 멸망에 대한 환상을 본 이사야는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 때문에 슬퍼하고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환상의 골짜기…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평가가 오늘 우리가 직면한 영적 현실이 될 수 있음을 경고의 말씀으로 받기 원합니다. 이 땅을 살아갈 때 바라봐야 될 분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본질적 문제입니다. 불들어야 할 분을 붙들지 않고 의지해야 할 분을 의지하지 않으며, 공경하고 앙망해야 할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적 문제임을 마음에 깊이 깨닫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코 앞에 있는데 먹고 놀다 망한 유다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리는 반면 교사로 삼기 원합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세련되게 살아가는 이런 것들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살아간 하나님의 백성, 그 끝은 심판이자 멸망이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정말 바라볼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곧 있게 될 일이 무엇인가를 안다면 그저 웃고 떠들고 지낼 수는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환상을 보지 못했으며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앙망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처절하게 무관한 삶을 살면서 그때를 대비하지 않고 살다, 결국 처절하게 망하고 무너지게 된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주시는 환상을 바라보기 위해 산 위에 올라가는 것이며, 보아야 할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들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주목하는 실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바라보는 실체를 누리게 되는 겁니다. 보아야 할 하나님을 바라보고,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날을 준비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환상과 비전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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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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