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 믿음의 열심이나 정성, 헌신의 깊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과 내용입니다. 내 믿음의 열심이나 정성, 헌신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바른 믿음의 대상과 내용이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점검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신앙생활의 열심과 정성과 바른 태도는 다 이미 주신 주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의 반응일 뿐이지 그게 절대 자격이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신경에서 배웠던 분명한 신앙 고백이었고 우리 믿음의 대상 되신 분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순전한 복음에 대해서 선명히 붙들 것을 강조하고 다른 복음과 유사 복음에 흔들리지 않고 분별하며 살아야 되는 것을 갈라디아 교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 믿음의 대상과 내용은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가 나를 의롭게 만드는 비결, 구원의 선물을 받는 비결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십자가 은혜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게 되는 것 뿐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라는 것은 나를 믿는 삶에서 예수님을 믿는 삶으로 변하는 것이고, 나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하며 오직 예수님에게만 소망을 두는 삶입니다. 스스로 율법을 지켜 구원 받을 만하게 자격을 삼는 자력 구원을 철저히 포기한채 나는 철저히외부로부터 다른 분으로부터 건짐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나를 건져주신 예수님만 붙드는 삶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철저히 내려 놓아야 하는 자력 구원과 예수님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타력구원에 대해 정확하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음을 선언합니다. 모든 인간은 의롭게 되어야 천국에 가고, 죄가 해결돼야 문제가 해결되야 천국에 갑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아닌 영생으로 가는 비결은 나의 죄 문제가 해결돼야 되는데 많은 자력 구원의 종교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킴으로 내가 구원받을 만하게 의로울 만하게 되는 내가 그 단계를 스스로 올라가는 것을 목적으로 추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의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쓸데 없는 것도 아니고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고 내가 나를 의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이 복음의 출발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그 어떤 율법의 행위로도 내가 나를 의롭게 할 수 없고,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내가 구원받을 만하게 의로울 만하게 율법을 지켜서 나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상태 영적 상태는 물에 빠져 익사하기 일보 직전이기에 내가 아무리 허우적대고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점점 물에 빠져들어갈 뿐인 절망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도 자력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나의 영적 상태에 대한 철저한 절망의 상태를 인식하고 자각하여야, 나에게 구원은 외부로부터 건짐을 받아야 되는 상태라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사는 비결입니다. 내 힘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오는 힘을 통해 내가 건짐을 받아야 되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오직 나를 건져 주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임을 믿음으로 영접해 구원의 선물을 얻게 되고 의롭다 함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일방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십자가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구원에 있어 나를 자랑할 게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고 내가 무엇을 이루었고 내 열심이 무언가를 자격과 조건을 만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그를 붙드는 것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믿는 삶을 포기하고 예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며 자력 구원을 철저히 포기하고 타력구원의 은혜를 구하는 겁니다. 우리 율법의 행위로서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붙드는 게 순전한 복음으로 내가 의로워지고 구원을 받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 영접하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스스로 자격과 조건을 얻으려는 내 행위를 철저히 포기한 채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믿음의 대상으로 붙들고 나아가는 삶, 그게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입니다. 그걸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는다, 그분의 보혈의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의롭다고 인정받고 천국 백성이 되는 유일한 길은 율법의 행위로서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갈 수 있는 길임을 고백하는 다른 표현입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복음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내가 선명히 붙들고 예수님만을 믿음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붙들고 그분을 구세주로 구원자로 믿고 고백하며 엎드리는 삶, 그것이 바로 순전한 복음에 정확하게 붙들려 살아가는 주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분명해야 하며 이것이 흔들리지 말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결론 말씀이 무엇입니까? 자꾸 옛날로 돌아가려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자꾸 내가 무언가를 해서 나를 구원받을 만하게 만들고, 구원의 자격과 조건을 만들려는 모든 시도를 다 무너 뜨러야 한다는 겁니다. 내 열심과 정성과 노력 자체가 내가 구원을 위한 조건과 자격이 되려 한다면, 내가 구원받을 만하는 자가 되는 조건이 된다면 그거 다 허물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율법을 지킴으로 내가 의로워지고 구원받을 만하고 구원받을 조건을 이루려 하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 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임을 철저히 믿는, 그 분명한 기초 위에 내 신앙이 서지 않으면, 내 믿음의 열심과 정성은 다 헛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첫 단추를 제대로 잘 껴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의로워지고 내 죄가 어떻게 용서 받았으며, 내가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이걸 분명히 하는 게 믿음 생활입니다. 이게 분명하지 아니하면 저와 여러분들은 옛날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선물을 은혜로 받아서 죄 용서 받고 의롭다 칭함을 받으며 구원받은 겁니다. 그래서 나를 믿는 게 아니라 그 선물 주신 예수님 만을 철저히 믿는 겁니다. 나의 노력을 믿는 게 아니라 나의 열심과 정성을 믿는 게 아니라, 내 믿음의 대상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철저히 믿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내가 유일하게 믿고 붙드는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만 되는 겁니다. 나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하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만 소망을 두는 겁니다. 신앙의 근거를 나에게 두지 않고 예수님을 향한 믿음에 두는 것, 이 땅에 두지 않고 하늘에 두는 것, 행위나 껍데기에 두지 않고 내면의 중심에 두는 것, 이것이 우리 일상 속에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분명한 고백 되기를 원합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순전한 복음에 사로잡혀 구원의 선물이 나의 행위가 아니라 나의 자격이나 조건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은 구원의 선물임을 철저히 믿고 붙들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충분함을 믿으며 나의 믿음의 대상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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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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