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2장에서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만나게 된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통해, 보아스가 룻에게 은혜를 베푸는 환대를 통해 보이는 은혜가 있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은혜도 부어 주심을 발견합니다. 특별히 보이지 않는 은혜로 우리에게 돌보시고 계심을 말씀을 통해 묵상하기 원합니다. 먼저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보이는 은혜가 있습니다. 떡을 초에 찍어 먹으라고 지극한 환대를 베푸는데, 초를 떡에 찍어 먹는데 무슨 환대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같은데 가면 빵을 올리브 기름에 발사믹이 섞인 것에 찍어서 먹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여기서 초를 찍어 먹으라는 것은 그런 특별한 소스를 기름에 섞은 것을 찍어 먹으라는 것으로, 그 당시에는 아주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방법입니다. 룻의 입장에서는 지금 음식을 얻어먹을 이유도 없고 그냥 떡을 주는 것 만도 감사한데 그 떡 조각의 초를 찍어 먹으라고 제안하는 것은 보아스가 대접할 수 있는 가장 극진한 대접과 환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그냥 곡식이 아닌 볶은 곡식을 주었습니다. 우리 나라 100년 전만 해도 쌀밥에 기름진 반찬을 먹는 게 호강이었을 정도로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이 귀했습니다. 그러니 수천 년 전에 곡식을 기름에 볶아서 준다는 것, 그것도 배부르고 남을 정도로 아주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환대였던 겁니다. 이런 흘러 넘치는 보아스의 지극한 환대와 놀라운 은혜를 통해 우리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도 이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보아스의 은혜는 이런 눈에 보이는 은혜를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은혜였습니다. 보이는 은혜와 함께 이런 보이지 않는 은혜가 룻에게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은혜인지 모르는 이런 보이지 않는 은혜가 보아스를 통해 룻에게 부어진 것입니다. 룻은 알지 못했던, 룻에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아스가 베푼 환대와 은혜를 말씀은 선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룻이 이삭을 주울 때 책망하지 말고 룻을 위하여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라 명령합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그 땅에서 이민자와 같이 살아가면서 이삭 줍기를 할 때 얼마나 텃새가 심했고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그런 일이 없도록 미리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보아스는 아예 룻이 이삭을 줍는 근처에 곡식을 뽑아서 좀 놔두라고 명령합니다. 원래 더 끝내 떨어진 것만 눈치 보며 주워가도 감지 덕지인데 곡식 단 사이에서 줍도록 하라는 겁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은혜는 룻은 까맣게 모르고 있고 알 수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룻의 입장에서는 주어진 이삭 줍기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히 임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곡식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도 발견하고 생각보다 수확이 많았을 것입니다. 룻이 이삭 줍기를 했는데 수확한 양이 보리가 한 에바쯤이었습니다. 한 에바는 13리터 정도라고 하니까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이삭을 그냥 열심히 주어 가지고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양이에요. 룻이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얻을 수 없는 수확량이었습니다. 룻은 자신이 이방 여인으로서 그 곳에서 곡식을 줍는 것이 얼마나 텃새가 심한 일인지 모르고 아무 눈치 안 받고 하루 종일 줍게 되는 것이 은혜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착각에 빠지는가 하면 내가 성실히 일했고 작은 일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렇게 우연히 곡식 단 사이에 많은 이삭들이 떨어져 있었고, 그것을 주워서 인생의 결과가 많이 있었다 고 착각할 수 있죠. 그리고 어떻다 보니까 그 길가에도 막 곡식 더미가 쌓여 있는 행운도 잡게 되었다고 착각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분에 넘치는 수확들이 다 내 열심에 산물이라고 착각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이 그 말도 안되는 양을 이삭 줍기로 가지고 올 때 저것은 룻을 돌본 자, 보이지 않는 은혜 산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노력 이상의 수확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룻에게 열심히 성실히 일해서 곡식을 많이 주운 게 아니라 은혜 주신 분이 계셨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은혜 주시는 주님께서 보이지 않는 은혜로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이삭도 미리 뽑아서 놔두시는 이런 주님의 손길이 주신 은혜, 보이지 않는 은혜가 임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이 깊어지고 성숙해진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이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를 실체로 바라보고 믿는 삶입니다. 내 인생에서 내 열심과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열심과 성실함 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의 열매들을 바라보면서 그 뒤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보이지 않는 은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깨닫는 것이 신앙이 깊어 지고 성숙해지는 비결입니다. 그럴 때 그게 내가 열심히 일하고 성실해서 나온 결과물에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보이지 않는 은혜가 부어 졌음을 아는 게 영적 지혜를 갖는 삶입니다. 열심히 성취하는 자들이 잘 빠지는 게 뭐냐면 내가 누리고 있는 풍성함이 내 성실함과 열심의 결과와 열매라고만 믿는 착각입니다. 내가 열심히 성실히 일하다 보니 우연히 이런 기회들이 찾아오고 우연히 곡식 더미들도 떨어져 있었고, 술술 일들이 잘 풀리고 돈이 잘 벌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갈 때 술술 인생이 잘 풀리고 돈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일 때, 그 열매들이 자신의 성실함과 열심의 결과인 줄로 착각하고 과신 하다가 은혜를 망각하고 교만해 져서 조금 있다가 자빠지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좀 큰 그림과 넓은 영적 시야를 보게 되면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였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보이는 은혜가 있습니다. 누가 봐도 이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라고 알게 되는 보이는 은혜가 있습니다. 룻과 같이 메마른 황무지 같은 인생의 흉년 가운데 쓴 뿌리와 쓴 물이 올라오는 마라 같은 인생에, 예수님께서는 이런 지극한 환대와 사랑으로 넘치도록 채워 주시고 특별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환영하신다는 것입니다. 떡에 초를 찍어 먹듯이, 볶은 곡식을 배부르게 먹게 하시듯이, 아주 귀한 손님 대접하는 특별한 환대를 주시는 그 예수님의 넉넉한 품과 은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보이는 은혜에 감사하고 늘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인생에는 보이지 않는 은혜가 더 크게 부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알지 못하고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보아스가 룻에게 베풀었던 환대와 같이 보호하게 하시고 곡식 단을 일부러 내가 지나가는 곳에 뿌려 놓게 하시는 그런 보이지 않는 손길과 부어주심이 나의 인생 곳곳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 삶에 누리는 열매들이 내가 열심히 성실히 일한 결과 때문이라고만 착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보이지 않는 은혜가 있었다는 것을 고백할 때 우리에게 더 큰 은혜가 부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 인생을 살다 보면 이렇게 내 노력 이상의 수확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가장 압니다. 이건 내 노력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부어 지고 은혜가 부어 지고 재물이 부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게 내 열심과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착각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내가 이 정도 열심히 해서 나온 결과라고 내 자아가 부풀려 지지 않고 나에게 은혜 부어 주시는 분 나를 돌보시는 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보이지 않는 은혜를 부어 주심의 결과라고 진짜 믿으며 살아가십시오. 그 보이지 않는 은혜 부어 주시는 주님께 모든 공로를 드릴 때 여러분들의 인생은 더 크게 더 놀랍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 인생의 나를 날개 덮고 품으시고 나를 돌보시는 분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나에게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를 부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실체로 믿으십시오. 성도로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이라는 것은 내 눈에 보이는 부어지는 은혜에만 감사하는 삶이 아니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부어지는 은혜로 이 자리에 있음을 감사하는 삶입니다. 내 열심과 성실함을 넘어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보이지 않는 은혜가 나를 여기 있게 했음을 믿으며 주님을 신뢰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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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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